▲<몬테크리스토 백작> 스틸
찬란
복잡한 배경과 함의를 가진 원수들을 향한 응징은 다양한 수단을 총망라하지만, 사회 시스템이 법과 제도로 정의와 진실을 보호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자력구제', 즉 사적 해결 형태를 취한다. 그 방법은 근대 이전 시대의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고대에는 절대적 존재, 즉 신이나 군주의 가호나 혜안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었던 게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시대엔 좀 더 현실적이고 복잡한 양상으로 확장된다. 그러나 딱 잘라 과거와 단절하고 확 새롭기만 할 순 없다. 그냥 초인적 능력치로 속 시원하게 복수를 실행하는 것으로만 보였던 주인공의 행위 역시 복합적인 면모를 보이며 이야기는 절정으로 향할수록 심화일로다.
우선 지옥에 추락했다가 이 악물고 돌아온 개인의 원한과 증오다. 한 인간으로서 주인공은 출세와 미래를 송두리째 잃는다. 사랑하던 연인과 결혼식장에서 생이별을 당하고, 원수의 아내가 된 꼴을 두 눈 뜨고 봐야 한다. 자식만 바라보던 아버지는 곡기를 끊고 굶어 죽었다. 반역자로 낙인이 찍혀 존재 자체가 지워졌다. 그야말로 인생과 명예, 사랑 전부 빼앗긴 셈이다. 그는 자신이 상실한 것을 적들 각자에게 고스란히 갚는다. 당글라르는 굶주림과 재산 몰수를, 페르낭은 연인과 가족을, 빌포르는 명예와 체면을 잃게 하는 복수다. 오랜 응보의 감정,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그러나 고도의 지성과 인격을 갖춘 주인공은 함무라비 시대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사적 복수가 신이 정한 정의를 수행함에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의 개인적 응징은 곧 사회적 정의 실현으로 연계된다. 부도덕한 투기꾼은 제 꾀에 넘어가 파산하고, 배신을 일삼던 군인은 위선이 폭로되며 가까운 이들에게 외면 당한다. 도덕과 질서의 화신 같던 법관은 지탄 받아 마땅한 가해자로 판명된다.
그들의 죄악은 유럽이 세계로 뻗어가던 시대답게 스케일도 과거랑은 비교 불가다. 국경선을 넘나드는 주식 투기, 외세가 개입한 국제 분쟁과 민족 독립 운동, 새로 접한 신세계에 대한 과학적 관심이 폭넓게 교차한다.
하지만 결국 복수극은 개인의 윤리적 고뇌로 돌아온다. 분노와 증오에서 출발해 신과 사회가 보증하는 정의를 확신하던 주인공은 그의 정당한 응징이 초래한 거듭된 비극 앞에서 회의에 빠지기 시작한다. 무고한 이들의 희생을 겪고, 복수 끝에 과연 남는 게 뭘까 고민에 빠진 것. 그가 복수의 조력자로 정한 이들이 선택한 각자의 방법이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길에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스틸
찬란
원작의 위대함을 더하고 뺀 영화의 실체
새롭게 돌아온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원작이 구축한 장르 쾌감, 즉 초월적 존재의 현신처럼 만능인 주인공이 천벌 받아 마땅한 죄인을 처단하는 짜릿함과 호화로운 배경 가운데 후자의 매혹을 극대화한다. 누구나 시대극을 볼 때 기대하는 장엄한 시대 고증은 충분히 보장된다. 19세기 유럽 시대상과 오리엔탈리즘 재현은 충분히 눈 요기로 손색 없다.
하지만 감히 대적할 상대가 없어 보이던 전능자 주인공은 21세기에 걸맞게 우리와 별 다를 바 없는 실존적인 면모로 탈바꿈했다. 불굴의 의지로 지옥에서 탈출한 존재만이 할 수 있는 말,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는 원작 문구는 본 작품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복수극의 오랜 숙제, 자신을 지탱해준 불길이 꺼지면 무엇이 남는가와 그런 결말로 과연 모든 게 정화되고 해소될 수 있는지가 정답이 아니라 선택의 차원으로 돌아온다.
짧지 않은 분량에도 워낙 장대한 원작을 한 편으로 축약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은 남는다. 이건 애초 불가능한 작전이긴 하다. 하지만 영화는 시대 변화에 맞춰 주인공과 복수 동지들의 다면성을 강화하고 짜릿한 응보 대신 용서와 화해의 가치를 부각한다. 피해자가 어떻게 상처를 딛고 삶을 계속할 수 있는가에 관한 고민이 깊숙하게 추가된 셈이다. 그런 측면을 원작과 비교하며 감상한다면 위대한 소설에 대한 경외와 함께 흥미진진한 변주를 만끽할 채비는 마친 셈이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포스터
찬란
<작품정보>
몬테크리스토 백작
The Count of Monte Cristo
2024 프랑스 액션/어드벤처/시대극
2026.02.13. 개봉 178분 12세 관람가
감독 마티유 델라포르트, 알렉상드르 드 라 파텔리에르
출연 피에르 니네이, 바스티앵 부이용, 아나이스 드무스티에,
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이, 로랑 라피트
수입/배급 찬란
공동배급 ㈜버킷스튜디오
공동제공 소지섭, 51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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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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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잡고 만든 대작, 복수극 좋아하면 참기 힘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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