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약에 우리> 스틸컷
(주)쇼박스
둘은 결국 진심으로 포옹하고 진짜 이별을 한다. 그 순간 흑백 세상이 총천연색 빛을 회복한다. 둘의 관계는 이제 정말로 끝이 났지만, 원망과 미련으로 결박되었던 시간이 비로소 풀리고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이제 둘의 가장 초라했던 시간은 가장 눈부셨던 시간과 어우러져 무지갯빛 기억으로 의식의 한 자리에 단단히 정박할 것이다. 그리고 그 토대 위에서 안정적인 내일이 펼쳐질 것이다.
영화 <만약에 우리>는 헤어진 연인이 10년 뒤 우연히 다시 만나 화해하고 다시 이별하는, 어찌 보면 단순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전형적인 멜로영화가 새해 벽두부터 입소문을 타고 극장가를 강타한 이유가 뭘까. 그만큼 사람과 사람 간에 '좋은 이별'이 부재한 시대의 요구가 반영된 것 아닐까 싶다.
다양한 SNS로 사람과 사람 간의 연결은 더욱 쉽고 촘촘해졌지만, 그 세계엔 냉대와 적대의 언어가 가득하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일터도 마찬가지다. 일명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었지만, 상처받은 이가 온전히 회복했다는 사례도, 잘못한 이가 진정으로 반성했다는 사례도 눈을 씻고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괴롭힘이냐 아니냐,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냐는 식의 흑백논리만 차고 넘친다.
현장에서는 손절, 절연, 끝장, 단절 선언, 분리 조치 등의 살벌한 용어들이 난무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선정적인 선언이나 조치 등은 'end'가 아닌 'and', 즉 마침표가 아니라 조직정치와 편 가르기의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바야흐로 오늘날은 서로가 자신의 피해만을 소리높여 외치며 상대를 몰아세우는 흑백의 세상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영화는 이런 엄혹한 시대에 스며든 '한 뼘 크기의 햇살'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고 지난 인연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늘어놓는 관람평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좋은 영화는 한 세대의 치유에 의도치 않게 기여한다.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 위한 마침표"(배우 문가영)를 찍고, 총천연색 빛깔의 세상을 다시 살아보고 싶은 바람은 누구에게나 있다. 영화가 내준 한 뼘 크기의 햇살에 의지해 용기 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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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노무사. 노동자의 산재와 해고 사건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매일노동뉴스'에 드라마와 영화를 노동의 관점에서 리뷰한 [조영훈의 미디어×노동]을 연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