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스트링어>의 한 장면.
넷플릭스
의외의 인물 호스트 파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났기에 본인한테 들을 수는 없었다. 살아생전, 특히 1972년 6월 당시 그는 AP의 전설적인 사진기사였다. 이미 베트남전쟁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거니와, 탁월한 심미안과 카리스마 어린 판단력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리더였다.
그러나 그가 굳이 닉 웃을 픽한 건 의외로 인정주의적인 이유가 있었다. 닉 웃의 형도 AP에서 사진기사로 일하며 호스트한테 인정받았는데 베트남전쟁을 취재하는 도중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에 호스트는 그의 동생인 닉 웃에게 큰 걸 베풀고자 했고 역사에 길이남을 사진의 주인 자리를 내준 것이었다고.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지만 일리는 있어 보인다. 호스트라는 사람이 상당히 복잡다단한 인물이었다고 하니 어느 정도 수긍이 가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그 사진을, 역사적인 사진을 찍고 아무것도 받지도 누리지도 못했을 그 스트링어에겐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게 아닌가?
스트링어 웅우옌 탄 응에, 그리고 저작의 윤리
마지막으로 <전쟁의 공포>, 일명 '네이팜 소녀'를 찍은 당사자, 스트링어 웅우옌 탄 응에의 이야기를 들어볼 시간이다. 스트링어는 신문사의 비상근 기자, 즉 프리랜서 기자를 가리킨다. 응에도 당시 수많은 스트링어 중 한 명으로, 20달러를 받고 사진을 넘겼다고 한다. 생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이 작품은 게리 나이트가 웅우옌 탄 응에를 찾아 나선 여정을 표면적 이야기로 다룬다. 50년 전의 이야기를, 증거나 증인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닉 웃이 <전쟁의 공포>를 찍지 않았다는 걸 밝히는 한편 <전쟁의 공포>를 찍는 스트링어를 밝혀야 하니 어려움은 배가 될 것이었다.
당대 관련자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과학적으로까지 밝혀낸 바, 닉 웃은 물리적으로 <전쟁의 공포>를 찍을 수 없었다. 하지만 AP는 완벽하게 결정적인 증거가 아니라고 반박했고 닉 웃 또한 일련의 의혹에 반박했다. 응에를 찾지 않았다면 이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라 본다.
<전쟁의 공포>의 상징성과 위대함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베트남전쟁의 유해함을 전 세계 만방에 알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작품을 정녕 누가 찍었는가를 밝히는 건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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