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은애하는 도적님아> 관련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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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조는 이 결혼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기울어진 집안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수락한다. 그는 가족들이 염려할까봐 자기가 누구의 첩이 되는지를 숨긴다. 가족들은 그가 임사형 아들의 첩이 되겠거니 하고 생각한다. 그는 결혼 직전에야 어머니에게 진실을 알린다. 그와 그 어머니의 법적 주인인 홍민직은 이런 사실도 모른 채, 딸의 결혼 직전에 일거리를 찾아 먼 지방으로 떠난다.
홍은조가 시집가는 장면은 제4회 후반부에 묘사됐다. 소나기 내리는 날 연지·곤지 찍고 가마에 올라탄 그는 시집 대문에 들어서는 순간 곡소리를 듣는다. 남편이 될 이가 하필 그때 세상을 하직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시집가는 날에 청상과부가 된다.
그러나 모든 서얼 자녀가 동일한 처지의 서얼 자녀와 기계적으로 혼인한 것은 당연히 아니다. 첩의 자식이지만 '무기'가 있는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얼녀에서 실세로
문정왕후와 더불어 명종시대(1545~1567)의 정치적 실세 그룹을 형성한 정난정은 얼녀였다. 그의 아버지는 고위 무관이지만 어머니는 노비였다. 그렇게 태어난 그는 중종시대(1506~1544)의 외척인 윤원형(문정왕후의 남동생)의 첩이 됐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그 집 정실부인을 몰아내고 안방을 차지했다.
그는 얼녀의 피를 물려받은 자기 자녀들을 다른 가문의 적자녀들과 결혼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 가능해진 것은 그가 정실부인이 되기 전이었다.
1573년에 편찬된 문인 어숙권의 <패관잡기>에 따르면, 명종시대의 조정 관료들은 정난정의 자녀들이 얼녀·얼자라는 점을 개의치 않았다. 그의 자녀들을 천첩 자식들로 대하지 않고 권력자의 자식으로만 대했다. 실학자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 인용된 <패관잡기>는 "조정 사대부들 중에 권세와 이익을 탐하는 자들은 (윤원형의) 첩자녀와 혼인을 하였다"고 말한다.
<패관잡기>는 정난정의 신분이 정실부인으로 바뀌기 2년 전인 1549년에 명종 임금이 윤원형의 공로를 치하하며 "그 첩의 자녀들을 적자녀와 통혼할 수 있게 한다"라는 왕명을 내렸다고 알려준다. 1549년이면 15세 된 명종이 어머니이자 대왕대비인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을 받던 때다. 그래서 이 왕명은 실제로는 문정왕후의 명령이다. 임금이나 다름없던 시절의 문정왕후가 남동생의 얼자녀들을 위해 특례를 인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난정의 사례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대부분의 경우에 서자녀나 얼자녀로 태어난 사람들은 자기 집안과 비슷한 수준의 가문에 사는 서자녀나 얼자녀와 결혼했다. 이들 대부분은 첩의 자식이라는 꼬리표를 평생 달고 살아야 했다. 이런 이들의 운명은 자손들에게도 대대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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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