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 이미지.
㈜쇼박스
이 작품은 실존인물 엄흥도의 이야기를 소재로 했고, 그가 단종 사후에 시신을 수습해줬다는 실제 사실에 기초한다. 그렇지만 주요 두 가지 부분에서 역사적 사실과 궤를 달리한다.
하나는, 단종이 영월군 청령포로 유배되는 과정이다. 이는 당연히 조정의 결정에 의한 것이었지만, 영화는 전혀 다른 상상을 전개한다. 이 작품은 지역발전을 도모하는 호장 엄흥도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상상한다. 작품 속의 엄흥도는 상당히 현대적인 지방행정 마인드를 보유한 인물이다.
양력으로 1900년 5월 11일자 <고종실록>에 따르면, 엄흥도의 후손인 엄주호는 고종에게 제출한 상소문에서 엄흥도와 단종의 첫 만남을 소개했다. 엄주호는 단종이 청령포에 유배된 지 한참 뒤에 이 만남이 이뤄졌다고 상소문에 썼다.
청령포에 유배된 단종은 어느날 사육신을 만나는 꿈을 꾼 직후에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이때 산마루에 있던 엄흥도가 그 소리를 따라가다가 단종과 조우하게 됐다는 것이 엄주호의 설명이다.
이처럼 단종이 유배된 지 상당 시일이 경과한 뒤에 둘의 만남이 우연스럽게 이뤄졌지만,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의 유배지가 결정되는 과정에서부터 엄흥도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는 식으로 상상력을 전개한다.
눈여겨볼 또 하나는 '단종의 최후'에 관한 것이다. 세조 3년 10월 21일자(1457.11.7.) <세조실록>은 단종복위 시도에 연루된 금성대군(단종의 숙부)과 송현수(단종의 장인) 등이 사사형 또는 교수형을 받은 일을 거론하는 대목에서 "노산이 이를 듣고 그 또한 스스로 목을 매어 졸했다"고 기술한다.
그러나 단종이 자결했다는 공식 발표는 세상 사람들의 의심을 초래했다. 세조의 후손인 숙종조차도 전혀 다른 말을 했을 정도다. 숙종 25년 1월 2일자(1699.2.1) <숙종실록>에 따르면, 숙종은 수양대군이 파견한 금부도사가 영월의 단종을 방문한 일을 언급하면서 단종의 사망 원인을 입에 담았다.
이에 따르면, 금부도사는 단종 앞에서 머뭇거리며 제대로 입을 떼지 못했다. 이때 단종의 시중을 들던 공생(貢生) 하나가 "차마 하지 못할 바"를 자신이 하겠다며 자청했노라고 숙종은 말했다. 숙종은 공생의 살해로 인해 단종이 아홉 구멍에서 피를 쏟으며 죽었다고 그 상황을 묘사했다. 숙종은 공생의 신원을 밝혀내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덮어두셔야 합니다"라는 전 우의정 최석정의 진언을 듣고 이를 철회했다.
공생이 단종을 어떻게 죽였는지에 관해서는 설이 나뉜다. 위의 <국학연구논총> 논문은 <송와잡기>·<장릉지>·<병자록>을 근거로 "다소간의 이설이 있으나, 공생이 한 일은 금부도사가 해야 할 사사(賜死) 집행을 대신해서 단종의 목에 줄을 걸어 질식사시켰다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누가 단종을 어떻게 죽였는가와 관련해서도 <왕과 사는 남자>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여기서도 엄흥도의 적극적 행동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쪽으로 가공의 스토리가 전개된다.
<왕과 사는 남자>가 조명한 엄흥도는 조선시대의 대중은 물론이고 수양대군의 후손들로부터도 칭송을 받았다. 그 정도로 수양대군의 내란은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이다. 잔혹하고 몰인정한 정권을 거부하는 민심의 정서는 조선시대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을 터. 그 정서가 엄흥도라는 인물에 투영됐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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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