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기차의 꿈>의 한 장면.
넷플릭스
독일 출신의 미국 작가 데니스 존슨은 생전에 여러 걸작을 남겼는데, 2002년 발표한 소설 <기차의 꿈>은 그중에서도 백미로 꼽힌다.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20년 넘게 최고의 작품으로 회자되어 왔다. 흔히 "긴 분량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라고 말하지만, 이 작품은 오히려 "짧은 분량에 이토록 거대한 세계가 담길 수 있나"라는 감탄을 자아낸다.
소설은 2025년 동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기차의 꿈>으로 재탄생했다. 공개 직후 쏟아진 호평은 원작의 깊이를 영상으로 충실히 옮겨냈다는 평가로 이어졌다. 특히 로버트 역을 맡은 조엘 에저튼의 연기는 그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정점으로 거론되며, 오스카 수상 가능성까지 점쳐진다. 그의 고독은 스크린을 넘어 관객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여기에 빼어난 영상미가 더해진다. 인위적이지 않게 재현된 20세기 초 미국 서부의 풍경은 그 자체로 설득력을 지닌다. 이미 수백 년의 시간을 살아온 숲속 나무들은 존재만으로도 경외감을 자아낸다. 그 나무들이 하나둘, 큰 저항도 없이 쓰러질 때면 묵직한 감정이 따라온다. 느린 호흡으로 흘러가던 영화 속에서 나무가 쓰러질 때와 산불이 번질 때만큼은 빠르고 걷잡을 수 없고, 그 대비가 감정을 크게 흔든다.
잃어버린 것들로 채워진 삶의 풍경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의 백미는 로버트의 평범하고 행복했던 시절보다, 모든 것을 잃고 고독 속에 놓인 이후에 있다. 앞부분은 짧고, 이후의 시간은 길다. 그저 버티듯 살아가는 그의 삶은 위태로우면서도 위대하다. 인간의 삶이란 결국 무언가를 끊임없이 잃으며 지속되는 것임을 이 영화는 담담히 보여준다. 그래서 이 작품은 근본적인 위로를 건넨다.
20세기 초 미국은 숨 가쁘게 변화하던 시기였다. 남북전쟁 이후의 서부 개척, 제2차 산업혁명, 제1차 세계대전, 광란의 시대까지 격변의 연속이었다. 그 와중에도 로버트는 느리게, 담담하게,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간다. 뚜렷한 방향도, 선명한 목표도 없는 무색무취의 삶이다.
생각해 보면, AI로 촉발된 제4차 산업혁명의 한가운데를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 역시 그렇다. 거대한 변화의 담론 속에 있지만, 일상은 점진적으로 바뀐다. 삶이란 원래 그렇게 서서히 변하는 것이 아닐까. 뚜렷한 방향 없이 흘러가면서도, 그 안에서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 로버트는 우리와 동떨어진 인물이 아니라, 우리의 자화상에 가깝다.
끝내 살아가는 존재에 대한 가장 낮고 깊은 위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기차의 꿈>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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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상실이 상존한다고 해서, '상실'을 쉽게 말할 수는 없다. 가장 사랑하는 이를 한순간에 잃은 뒤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 슬픔을 대신해 줄 사람도, 그 고독을 함께 짊어질 존재도 없다.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는 그 숭고함을, 누구도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모든 것이 무의미해 보이고, 더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낄 때 사람은 '끝'을 말한다. 이제 그만하자고, 여기까지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불시에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이들이 살아가고 싶었을 이 세상을 대신 살아내려는 듯이. 머리로는 알면서도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해, 혹시 그들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은 채로.
평범해서 더 절절한 영화 〈기차의 꿈〉. 삶의 동력이 바닥났다고 느낄 때, 끝없이 아래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 때, 혹은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은 고독이 덮쳐올 때, 이 영화를 조용히 마주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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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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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에 아내와 딸 잃은 남자의 '고독한'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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