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궁스틸컷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지키지 못한 것인가, 뒤떨어진 것일까
소리가 맞이한 초라한 현실은 그저 일제강점기와 우리 문화를 장려하지 못한 독재정권의 잘못만이 아니다. 대중들이 더는 소리를 소비하지 않는 때문이기도 하다. 그저 소비하지 않는 것만은 아닐 테다. 기억하지 않고 돌아보지 않으며 여전한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그를 대하는 때문이겠다. 낡은 것, 지루한 것으로 소리를 바라보는 자세가 소리를 정말 그러한 것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무대에 서는 이들이 대부분 고령의 노인들이란 것, 더는 젊고 유망한 이들이 뛰어들지 않는 듯 보이는 것이 우리의 무관심이며 무지와 관련이 없지는 않아 보인다.
토종쌀이 맞은 운명을 쉽게 맛이 떨어져서, 생산량이 부족해서라 보는 시각은 어리석고 폭력적이다. 그 안에는 토종쌀이 감내한 가혹한 운명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토종쌀을 소중히 여겼다면, 그를 발전케 할 기회를 줄 수 있는 힘과 지성, 그리고 의지가 있었다면 그 운명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었으리라. 그리고 어쩌면 소리의 운명 또한 그와 같지 않았을까.
<수궁>은 끝내 지켜지지 못한 채 스러져 가는 옛 것에 대한 책임을 일깨운다. 그 초라한 운명이 그저 그 자신의 경쟁력 없음 때문이 아니란 것을 내보인다. 한때는 젊고 재주 있는 이들이 소리를 하던 때가 있었다. 그저 험한 세상에서 먹고 살기 위함이었겠으나 그 본연의 매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장인처럼 제 길을 닦고 발전시킨 이들이 명창으로 거듭나 그를 아끼는 이들의 선택을 받았다.
일본은 전통을 존중하는데 한국은 어째서?
그러나 오늘 소리는 더는 그만한 존중을 받지 못한다.
일본의 대응할 만한 문화, 가부키며 게이샤 같은 업종조차 상당한 존중을 받으며 꾸준히 그를 전승할 후계가 탄생하는 모습과 대비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둘의 차이가 그저 소리의 경쟁력에 있다고만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도 미처 인지하지 못한 채 우리 밥상에서, 우리 무대에서 우리의 것을 잃어간다. 그 자리를 다른 무엇이 빠르게 채우겠으나, 어쩌면 복구할 수 없는 시간이 흐른 뒤 우리가 잃은 것이 그렇게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고 후회할 날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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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