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팬레터> 공연 사진
라이브(주)
히카루가 보낸 팬레터의 비밀
동경에서 유학 중인 세훈은 우리말로 글을 쓰고자 하지만,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배경과 일본 동경이라는 공간적 배경은 세훈의 꿈을 가로막는다. 꿈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세훈은 '히카루'라는 필명으로 글을 쓴다. 동시에 자신이 동경하는 작가 해진에게 존경심을 담아 편지를 쓰고, 이때도 히카루를 발신인으로 적는다.
히카루의 편지는 해진에게 남다르게 다가온다.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여러 이유로 그 말을 모두 하지는 못한다. 해진 역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히카루(의 이름을 빌린 세훈)는 해진의 글에 담긴 진심을 알아본다. 해진은 자신의 진심을 알아봐준 히카루에게 감동하고, 나아가 사랑의 마음을 품게 된다.
한편 뮤지컬의 중심에는 '칠인회'라는 문인들의 모임이 있다. 칠인회는 실제 존재했던 구인회에서 영감을 얻어 각색된 형태로 뮤지컬에 등장한다. 우리 땅으로 넘어온 세훈은 칠인회의 작가들을 보조하고, 작가들은 천재 소설가 해진을 칠인회의 멤버로 영입한다. 그렇게 작가 지망생 세훈과 세훈이 그토록 동경해온 해진이 만난다.
해진은 히카루를 향한 사랑을 드러내고, 세훈은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불편해한다. 히카루를 실존하는 여성이라고 믿으며 뮤즈처럼 여기는 해진 앞에서 세훈은 차마 진실을 고백하지 못한다. 이제 히카루의 역할은 변화한다. 글을 쓰기 위해 만든 필명에 불과했던 히카루는 해진의 기대에 의해 구성되는 입체적인 인물로 변한다.
처음에는 세훈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였지만, 세훈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로 변하고, 나아가 세훈이 통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이는 사회적 기대에 따라 개인의 자아가 구성되고, 연기를 지속하며 사회적 자아가 강화되는 모습으로 읽힌다. 히카루를 통해 해진의 기대를 충족시키면 해진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히카루가 실존하는 것처럼 연기를 이어가며 사랑을 받는 상호작용의 순환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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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인물의 관계성, 그리고 히카루의 의미
뮤지컬에서 초반에는 수동적으로 그려졌던 히카루가 점점 주체성을 갖게 되는 과정도 눈여겨볼 만하다. 네 명의 배우가 히카루를 연기하는 만큼 배우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다. 세훈과 해진 역에도 여러 배우가 출연하는 만큼 배우들의 조합에 따라 조금씩 다른 관계성이 구현된다는 것이 창작진과 배우들이 전한 작품의 매력이다. 세 인물 간 관계성을 표현하는 안무와 조명 역시 인상적이다.
히카루가 주체적인 인물로 변하면서 세훈은 히카루에게 종속되는 모습도 보인다. 이유가 어쨌든 타인을 속인 데 이어 자신마저 속이게 된다. 한편 히카루는 세훈의 비도덕적 욕망을 대신 수행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칠인회로 인해 자신의 거짓말이 들킬 위기에 처한 세훈의 마음에는 칠인회를 와해하고자 하는 생각이 꿈틀거리고, 세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히카루가 와해를 위한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팬레터>가 마냥 행복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비극이라고 할 수도 없다. 세훈은 히카루로 인해 자기 파괴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해진 역시 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하지만 히카루는 해진과 세훈, 두 작가가 글을 쓸 수 있게 해준 존재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훗날 세훈으로 하여금 창작 활동을 이어가게 하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히카루'가 '빛'을 뜻하는 일본어라는 점은 기억해둘 만하다. 10주년을 기념하는 창작 뮤지컬 <팬레터>는 2월 22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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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레터'의 발신인을 사랑하게 된 천재 소설가, 가슴 아픈 사랑에 숨은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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