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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뉴욕을 뒤흔든 기사... '존 도우' 사기극의 전말

[안지훈의 뮤지컬 읽기] 뮤지컬 <존 도우>

26.01.04 09:11최종업데이트26.01.04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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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으로 인해 전례 없는 대규모 실업 사태가 발생한 1929년 뉴욕. 기자 '앤'도 혼란을 피하지 못했다. 졸지에 정리 해고를 당한 앤은 마지막 기사를 신문에 싣는다. '존 도우'라는 인물로부터 성탄절에 시청 옥상에서 뛰어내리겠다는 편지를 받았다는 기사다. 하지만 이는 거짓으로, 일자리를 잃은 데 분노한 앤이 지어낸 이야기다.

존 도우의 편지는 뉴욕을 뒤흔든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름없는 존 도우의 항거 메시지에 지지를 보내고, 이곳저곳에서 존 도우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한다. 홧김에 쓴 거짓 기사가 생각보다 큰 파장을 불러오자 앤과 언론사는 당황한다. 고민 끝에 찾아낸 방법은 누군가를 존 도우의 대역으로 삼는 것이다.

전직 야구 선수이자 어깨 부상으로 일자리를 잃고 거리를 전전하는 '윌러비'가 존 도우의 대역으로 발탁된다. 윌러비는 존 도우를 연기하고, 앤은 존 도우의 이야기를 꾸며내 기사를 연재한다. 뮤지컬 <존 도우>는 냉철히 말하자면 앤과 윌러비의 사기극,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평범한 목소리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뮤지컬 <존 도우> 공연 사진
뮤지컬 <존 도우> 공연 사진HJ컬쳐(주)

뉴욕의 수많은 '존 도우'

사람들은 왜 존 도우에게 열광했을까? 일자리를 잃고 하루하루 생계 걱정을 하는 자신들과 존 도우가 유사한 처지에 있지만, 존 도우는 용기를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스스로를 자책하는 사람들에게 책임 있는 사람들을 질타해야 한다는 항거의 메시지를 남겼다. 무기력한 사람들은 존 도우에게 자신을 투영해 사회에 맞섰다.

평범한 사람들은 "우리가 존 도우"라고 외쳤다. 한탄을 나누고 위로를 주고받으며 사회를 질타하는 존 도우 클럽이 문을 열었고, 일각에서는 '존 도우 운동'도 펼쳐졌다. 존 도우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새로운 이름이 된 셈이다. 라디오 연설에 나선 존 도우, 정확히는 그의 대역 윌러비는 라디오 연설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가치를 재발견한다. 다리의 나사를 조이고 벽돌을 쌓고 석탄을 캐는 사람들이 도시를 만들고 빛나게 했다고 역설한다.

"이 세상은 이름 없는 존 도우들이 이뤄낸 기적이죠. 우리들이 해냈죠."

최근 정치학에서 주목하는 주제는 다름 아닌 '감정'이다. 감정은 그 자체로 정치적 영향력을 갖는 기제로 여겨진다. <존 도우>에서도 마찬가지다. 상실감에 빠져있던 사람들은 존 도우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다시 확인하고, 무력했던 개별적 목소리는 하나로 응집되어 큰 외침이 된다.

존 도우의 가짜 연극은 단순한 사기극이 아니다. 비탄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조직적인 힘이 사회 변화를 추동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힘을 어디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다. 어두운 사회에 빛을 비출 수도 있지만, 잘못 사용할 경우 어둠을 더 짙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뮤지컬 <존 도우> 공연 사진
뮤지컬 <존 도우> 공연 사진HJ컬쳐

우리 모두에겐 이름이 있다

뮤지컬 <존 도우>에 등장하는 정치 지도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사회 참여를 자신들의 정치적 야망을 실현할 기회로 생각한다. 뉴욕시장이 그렇고, 앤이 속한 언론사 사장이 그렇다. 이를 계기로 뮤지컬은 또 하나의 새로운 서사 국면을 맞이한다.

처음에는 다른 의도에서 존 도우의 이야기를 꾸며냈지만 점차 존 도우를 통해 사람들과 희망을 나누고자 하는 앤과 윌러비, 가짜 연극을 이용하려 하는 정치인들 간의 두뇌 싸움이 펼쳐진다. 치열한 공방은 자칫 밋밋할 수 있는 이야기에 입체감과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동시에 평범한 사람들의 조직적인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운다.

앤과 윌러비, 그리고 정치인 간의 가장 큰 차이는 '이름 없는 사람들을 어떤 지위에 두느냐'다.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정치인은 이름 없는 사람들을 계속 그 상태, 즉 이름 없는 상태에 내버려둔다. 사람들의 목소리를 변화를 요구하고 이끄는 원동력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야망을 실현할 수단으로만 생각한다.

반면, 앤과 윌러비는 이름 없는 사람들에게 꾸준히 이름을 부여해 왔다. 그렇게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며 앞으로 나선다. 그리고 끝내 존 도우라는 이름 뒤에 있는 윌러비를 호명한다. 앤에서 시작해 윌러비를 거쳐 고유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가짜 연극은 비로소 진짜 연극이 된다.

한편, 윌러비의 옛 직업이자 앤과의 공감대인 '야구'는 하나의 메타포로 기능한다. 한 명의 영웅보다 팀원 간의 조화와 협력이 중요한 팀 스포츠 야구를 통해 수많은 존 도우들이 함께 외치는 목소리의 힘을 조명한다.

7년 만에 다시 돌아온 뮤지컬 <존 도우>는 3월 1일까지 서울 종로구 NOL 서경스퀘어 스콘 1관에서 공연된다. '앤' 역에 최수진·최연우·정우연, '윌러비' 역에 정동화·최호승·황민수가 출연한다.

 뮤지컬 <존 도우> 공연 사진
뮤지컬 <존 도우> 공연 사진HJ컬쳐(주)
공연 뮤지컬 존도우 NOL서경스퀘어스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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