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의 이름은 마리아> 포스터
찬란
감독은 격정적인 육체 관계 장면을 넘어서는 강간 장면을, 마리아와는 어떠한 상의나 동의도 없이 말론 브란도와만 논의한 채 촬영해 버린 것이다. 마리아는 극심한 굴욕감과 모욕감을 겪는다. 영화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녀 역시 스타덤에 올랐지만, 이후 약물 중독과 자살 시도 등 괴로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배우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기도 전에, 회복하기 어려운 트라우마를 떠안게 된 것이다.
'배우' 마리아를 앞세운다는 명목 아래, 예술이라는 장막으로 '마리아'라는 한 인간을 지워 버린 셈이다. 아무리 1970년대 초, 문화적·성적·정치적 억압을 비판하는 68혁명 직후의 프랑스였다고 해도 지켜야 할 선은 분명히 존재한다. 어찌 예술이 사람보다 앞설 수 있으며, 윤리 위에 설 수 있겠는가. 결국 사람이 먼저다.
'마리아'라는 정체성을 정립하다
마리아는 그 트라우마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약물에 의존하고 자살을 시도하는 등,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한때는 자신을 되찾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녀를 색안경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인물이 나타난다. 과연 마리아는 자신을 되찾을 수 있을까? 다시 '마리아'로 태어날 수 있을까?
누군가의 딸에서 배우라는 정체성을 선택하는 순간 자신을 잃어버린 마리아는, 트라우마를 마주하며 한 번도 온전히 가져 본 적 없는 '진짜 자신'과 직면하려 한다. '마리아'라는 고유한 정체성을 다시 세우려는 것이다.
영화 <나의 이름은 마리아>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를 단순한 통과의례나 성장통이라 부르기에는, 그녀가 겪은 일은 너무도 치명적이었다. 더구나 그 끔찍한 경험의 결과물인 바로 그 영화로 스타가 되었으니, 그 아이러니를 감당하는 일은 더욱 가혹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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