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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보다 앞선 예술? '나의 이름은 마리아'가 남긴 질문

[리뷰] 영화 <나의 이름은 마리아>

25.12.31 10:40최종업데이트25.12.3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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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딸'에서 벗어나다

16살 소녀 마리아 슈나이더는 프랑스의 유명 배우를 아버지로 두고 있지만, 모델이었던 어머니와의 불륜으로 태어난 사생아다. 어머니의 성을 물려받아 어머니의 손에 자랐지만, 아버지의 촬영장을 드나들며 배우로서의 꿈을 키워 나간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그녀가 계속 촬영장에 나가자 결국 집에서 쫓아낸다.

<나의 이름은 마리아>는 마리아 슈나이더의 삶을 전기 영화의 형식으로 그려낸다. 영화는 그녀가 아직 '누군가의 딸'에 불과했던 시절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녀는 아버지와 어머니, 두 사람의 딸로 동시에 존재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딸이든, 어머니의 딸이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것이다. 마리아는 배우의 길을 택하고, 그 선택의 대가로 어머니와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럼에도 그녀는 말한다. 비록 어머니에게 쫓겨나 삼촌 집에서 지내고 있지만, '근본만은 잃지 않았다'고. 그녀가 말하는 근본은 아버지가 아니라, '슈나이더'라는 성을 물려준 어머니에게 있었다. 그 사실을 인정했다는 것은 곧 다음 단계로 나아가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렇게 마리아는 '누군가의 딸'이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난다.

이 과정은 마리아에게는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통과의례였을지 모르지만, 어머니에게는 치명적인 상처였을 것이다. 평생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홀로 딸을 키워 왔는데, 다 큰 딸이 결국 핏줄을 부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아버지를 찾아간 셈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감정적으로 쫓겨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필연적인 독립의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배우'로 성장해 나가다

19살의 마리아는 차곡차곡 쌓아 온 조연 경력을 바탕으로 주연으로 도약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탈리아 출신의 신예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할리우드의 대스타 말론 브란도를 캐스팅해, 격정적인 육체 관계를 매개로 고통과 사랑, 섹스를 탐구하는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준비 중이었다. 그리고 그 작품의 주연으로 마리아를 점찍는다.

마리아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수위가 매우 높고 외설적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감독은 이를 '예술적으로' 찍겠다고 약속했고, 그녀는 그 말을 믿고 촬영에 임한다. 최선을 다해 연기에 몰입하며 배우로서 성장해 나가던 마리아는, 그러나 촬영 막바지에 배우 인생은 물론 삶 전체를 송두리째 흔드는 사건과 마주하게 된다. 그 사건은 영화사에서 가장 불미스럽고 치욕적인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된다.

 영화 <나의 이름은 마리아> 포스터
영화 <나의 이름은 마리아> 포스터찬란

감독은 격정적인 육체 관계 장면을 넘어서는 강간 장면을, 마리아와는 어떠한 상의나 동의도 없이 말론 브란도와만 논의한 채 촬영해 버린 것이다. 마리아는 극심한 굴욕감과 모욕감을 겪는다. 영화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녀 역시 스타덤에 올랐지만, 이후 약물 중독과 자살 시도 등 괴로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배우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기도 전에, 회복하기 어려운 트라우마를 떠안게 된 것이다.

'배우' 마리아를 앞세운다는 명목 아래, 예술이라는 장막으로 '마리아'라는 한 인간을 지워 버린 셈이다. 아무리 1970년대 초, 문화적·성적·정치적 억압을 비판하는 68혁명 직후의 프랑스였다고 해도 지켜야 할 선은 분명히 존재한다. 어찌 예술이 사람보다 앞설 수 있으며, 윤리 위에 설 수 있겠는가. 결국 사람이 먼저다.

'마리아'라는 정체성을 정립하다

마리아는 그 트라우마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약물에 의존하고 자살을 시도하는 등,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한때는 자신을 되찾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녀를 색안경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인물이 나타난다. 과연 마리아는 자신을 되찾을 수 있을까? 다시 '마리아'로 태어날 수 있을까?

누군가의 딸에서 배우라는 정체성을 선택하는 순간 자신을 잃어버린 마리아는, 트라우마를 마주하며 한 번도 온전히 가져 본 적 없는 '진짜 자신'과 직면하려 한다. '마리아'라는 고유한 정체성을 다시 세우려는 것이다.

영화 <나의 이름은 마리아>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를 단순한 통과의례나 성장통이라 부르기에는, 그녀가 겪은 일은 너무도 치명적이었다. 더구나 그 끔찍한 경험의 결과물인 바로 그 영화로 스타가 되었으니, 그 아이러니를 감당하는 일은 더욱 가혹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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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