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바타: 불과 재> 장면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이크 설리(샘 워싱턴)는 여전히 이 거대한 세계관의 중심축이다. 인긴에서 나비족이 되었고, 이방인에서 영웅이 되었던 그는 조화와 수용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가족이 늘어나고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지면서, 그의 강철 같던 의지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특히 인간도 나비족도 아닌 양아들 스파이더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는 복잡한 감정이 서려 있다. 이는 마치 현실에서 외국으로 이민 간 가장이, 문화적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자녀를 보며 겪는 딜레마와 겹쳐 보인다.
이번 영화에서 제이크는 유독 약해 보인다. 전작들처럼 앞장서서 적을 쓸어버리는 모습보다는, 아내 네이티리와 갈등하고 쿼리치를 설득하려 애쓰는 등 타협적인 태도를 취한다. 누군가는 이를 답답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이는 제이크가 나이 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진짜 가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녀들의 안전과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나의 신념을 관철하는 것보다 내 아이가 오늘 밤 무사히 잠드는 것이 더 중요한, 중년의 고뇌가 그의 축 처진 어깨와 깊어진 주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쿼리치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부성애를 발견하고 그를 설득하려는 장면이다. 적에게조차 공감과 연민을 느끼는 제이크의 모습은 그가 육체적으로는 약해졌을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훨씬 더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더 이상 전쟁 영웅이 아니라, 상처 입은 가족을 끌어안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는 우리 시대의 모든 아버지들을 대변한다.
재가 된 마음 위에 다시 피어나는 생명
냉정하게 말해 <아바타: 불과 재> 속 캐릭터들의 행동은 완벽하지 않다. 제이크의 가족들은 몇 번이나 인질로 잡히며 위기를 자초하고, 반복되는 구출과 탈출의 구조는 관객들의 속을 터지게 만들기도 한다. 1, 2편에서 봐왔던 서사 구조가 반복된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여전히 호소력을 가지는 이유는, 이 답답한 과정들이 캐릭터들이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도기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는 모든 인물이 각자의 갈림길에서 치열하게 흔들리는, 가장 인간적인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이러한 서사의 빈틈을 꽉 채워주는 것은 역시나 제임스 카메론의 압도적인 연출력과 배우들의 명연기다. 샘 워싱턴은 고뇌하는 가장의 무게를 묵직하게 표현했고, 조 샐다나의 모성애 연기는 스크린을 뚫고 나올 듯 강렬하다. 스티븐 랭과 시고니 위버 역시 대체 불가능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반드시 극장에서, 그것도 3D로 관람해야 한다. 단순히 화려한 볼거리를 넘어서, 재가 흩날리는 공기의 질감과 불길의 뜨거움까지 체험하게 만드는 3D 효과는 관객을 판도라 행성 한복판에 데려다 놓는다.
이전 시리즈에 비해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작품임은 분명하다. 사이다 같은 해결보다는 고구마 같은 갈등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잿더미가 되어야만 비로소 새로운 싹이 틔울 수 있듯, 이 영화는 다음 이야기를 위한 거름이 되기에 충분하다. 화려한 액션 뒤에 숨겨진 인물들의 처절한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들의 찌질함마저 사랑하게 될 것이다.
결국 <아바타: 불과 재>는 상처 입은 관계에 대한 거대한 은유다. 불타버린 숲에서도 생명이 다시 자라나듯, 서로 할퀴고 상처 입힌 마음 위에도 언젠가 이해와 용서라는 꽃이 피어날 것임을 영화는 묵묵히 보여준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잿빛으로 변해버린 당신에게, 이 영화가 전하는 뜨겁고도 서늘한 위로가 닿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아바타: 불과 재> 관람객은 300만이 넘었다. 글로벌 수익은 5천 억이 넘었다. 비록 과거 시리즈보다 뛰어난 수준은 아니지만, 여전히 강한 흥행세를 보이고 있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 또 다시 천만 관객을 넘길 수 있을지는, 연말을 지나면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여러 영화와 시리즈가 담고 있는 감정과 생각을 전달합니다.
브런치 스토리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영화에 대한 생각을 전달하고 있어요.
제가 쓰는 영화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저의 브런치 스토리에서 더 많은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같이 영화가 전달하는 감정과 생각을 나눠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