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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변호하는 법률가, 그를 증오하는 검사... 둘 중 하나만 죽여야 한다면?

[김성호의 씨네만세 1230] Showtime <덱스터> 시즌3

25.12.19 14:05최종업데이트25.12.29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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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만 수천 명, 수천억 원 대 피해를 일으킨 다단계며 유사수신 업체 재판을 지켜본 일이 있다. 평생 모은 재산이며 노후자금까지 털어 넣은 이들의 소송은 그야말로 처절하다. 한순간에 사라진 재산이 가져온 암담함은 문제의 일부일 뿐이다. 다단계 업체의 특성상 적잖은 피해자가 주변을 설득해 또 다른 피해를 낳게 마련.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피해자가 그저 피해자로 남지는 않는다. 다단계 형태의 유사수신 업체는 그 범죄형태를 파악하지 못한 많은 이들을 또 다른 가해자처럼 이용한다. 그렇게 그 삶을 파괴한다. 이런 종류의 범죄 피해자 가운데 아예 생을 포기하는 이들이 종종 발생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비슷한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신사업인 양 홍보하며 돈 놓고 돈 먹기 하는 악질적 유사수신 다단계 업체가 매년 여러 건이 보고된다. 가까이 뜯어보면 처벌 받은 이가 형을 살고 나와 비슷한 범죄를 설계해 저지르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작게는 수백억, 크게는 조 단위 피해를 일으키는 이들 범죄의 주역들이 어떻게 다시 활개를 치고 있는 건지 당혹스런 순간도 있다. 사정을 아는 이들은 혀를 끌끌 차며 이 나라가 사기의 천국이라서 그렇다고 말한다. 법이 사기꾼들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며 말하기를 저기 사기꾼의 변호사와 피해자들이 고용한 변호사의 체급을 보라고 말한다. 나는 그만 납득하고 만다.

대한민국 검찰에서 내로라하던 인물로 통하던 어떤 이가 퇴임 후 확인된 것만 수천억 원 대 유사수신 업체 변호를 맡았던 일이 논란이 된 때가 있었다.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노골적 돌려막기 다단계 사건임에도 사건 수사는 지지부진하고 처벌 또한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변호인이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 출신 거물급 변호사가 아니었다면 그마저 논란조차 되지 않았으리라 말하는 이가 많았다.

덱스터 스틸컷
덱스터스틸컷Showtime

의로운 검사와 연쇄살인마의 만남

비슷한 사례는 끊이지 않는다. 돈 많은 혐의자들이 큰 돈을 써서 소위 전관이라 불리는 법원이며 검찰 출신 유력 변호사를 고용해 유리한 판결을 받는 일이, 피해를 호소하는 돈 없는 이들은 끝내 거리에 내몰려야 하는 상황들이 말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이야기가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들, 전관예우가 힘을 발하는 장면들을 보고 있자면 대체 법과 정의가 어디에 있는 건지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게 된다.

여기 한 검사가 있다. 의롭기로 소문난 열혈 검사는 대중적 인기를 등에 업고 수많은 사건에서 정의를 구현하려 고군분투한다. 그의 이름은 미구엘 프라도(지미 스미츠 분), 미국 마이애미 검찰청의 검사다. 쿠바 이민자들이 영향력을 발하는 마이애미에서 강력한 범죄자를 연달아 기소하며 유명세를 얻은 그는 실제로 법을 어기는 일을 끔찍이 증오하는 정의의 사도 같은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충격적 사건이 하나 생기니 바로 동생인 오스카 프라도가 살해당하는 사건이다. 마약상의 집에서 살해당한 스포츠 코치 오스카의 죽음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이야기, 미국 인기 채널 Showtime의 명작으로 기록된 <덱스터> 세 번째 시즌의 시작이다.

경찰관 아버지에 의해 길러진 사이코패스 살인마 덱스터(마이클 C. 홀 분)는 드라마 역사상 손꼽힐 만큼 독특한 캐릭터다. 어릴 적 목격한 강력범죄 때문일까. 자애로운 아버지에게 입양된 뒤에도 사이코패스적 성향은 결코 멈출 수가 없었다. 덱스터의 문제를 알아본 아버지는 그를 제거하거나 격리하는 대신 특별한 인물로 길렀다. 엄격한 통제 아래서만 폭력성을 분출시키는 살인마가 되는 것, 말하자면 법이 처단하지 못한 강력범죄자를 제거하는 살인마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능한 형사였던 아버지의 규칙을 체화한 덱스터는 정말로 그가 의도한 살인마가 된다.

덱스터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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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변호하는 법률가와 그를 증오하는 검사

보는 이가 살인마를 응원하게 되는, 응원까지는 아닐지라도 납득하고 이해하며 지지하게 되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제에 도전하는 드라마가 <덱스터>다. 통상적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덱스터가 일반인과 섞여 살아가며 조금씩 변화하는 이야기가 또한 이 드라마의 줄기가 될 것인데,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고난과 역경이 드라마가 내보이는 주제로 이어진다. 이 시리즈 세 번째 시즌은 우정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아버지의 죽음 뒤 살인마란 제 정체성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그가 처음으로 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이를 찾은 것이다. 그게 바로 미구엘, 마이애미의 잘 나가는 검사란 것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드라마는 미구엘과 덱스터를 기묘하게 엮어낸다. 미구엘의 동생 오스카가 죽고 난 뒤 경찰의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미구엘이 직접 심판에 나서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마이애미 경찰청 과학수사요원인 덱스터가 역할을 하게 되며 두 사람이 연을 맺는다. 물론 미구엘은 덱스터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채.

드라마가 두 사람을 엮어가는 과정에서 인상적으로 등장하는 건 마이애미의 유력 변호사 엘렌 울프(앤 램지 분)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능란한 법기술자로, 명백한 유죄처럼 보였던 피의자 여럿을 무죄판결로 이끌며 명성을 얻었다. 미구엘이 기소한 이들 중에서도 여럿이 무죄판결을 받고 방면됐다는데, 그중에서 다시 범행을 일으킨 범죄자도 제법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모두에게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엘렌 울프의 철학은 정론이라 할 것이어서, 자꾸 꺾이기만 하는 미구엘은 따로 기댈 곳을 찾지 못한다.

덱스터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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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재 넘어 절차의 가치를 돌아보는

쌓여가는 분노 끝에 미구엘의 선택은 극단적인 지점을 향한다. 악인을 살해하는 덱스터와 법의 수호자인 미구엘의 기묘한 결합이 이 드라마 가운데 이뤄지는 순간은 자못 인상적이다. 아버지가 죽은 뒤 동생, 또 아내와도 공유하지 못했던 비밀을 미구엘에게 조금씩, 결국엔 온전히 털어놓게 되는 것. 그 쉽지 않은 일이 <덱스터> 시즌3의 핵을 이룬다. 첫 번째 시즌에선 연쇄살인마인 주인공을 응원하도록 하고, 두 번째 시즌에선 사이코패스에게 감정이 싹 트는 순간에 집중했던 드라마다. 세 번째 시즌은 그가 드디어 저 아닌 다른 인간과 진짜 관계를 형성하는 순간을 내보이니, 이 드라마는 매 시즌 결코 쉽지 않은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다.

잡는 족족 풀려나는 범인들의 모습은 국경을 넘어 존재하는 현실을 얼마간 반영한다. 막대한 돈을 들여 고용한 실력파 변호사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검사보다 효율적이고 능란하게 법을 활용해 피의자를 구해내는 모습은 정의의 구현이라기보단 악의 득세처럼 느껴질 정도다. 덱스터가 근무하는 일선 경찰청 수사관들과 미구엘이 속한 검찰 관계자, 나아가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박탈감을 안긴다. 그럼에도 앨렌 울프는 모든 사람에겐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변호를 받을 권리 또한 마찬가지라고 답할 뿐이다.

지난 시즌에서 사적 제재의 위험을 경고한 드라마가 곧이어 허울 뿐인 절차적 정의의 위험 또한 돌아보게 한다는 건 자못 인상적이다. 일시적으로 정의와 가까운 듯 보이는 사적 제재보다도 절차적 정의를 지키는 일이 사회에 더 이로운 것인가를 시청자는 스스로 되묻게 된다. 세 번째 시즌 미구엘과 덱스터 앞에 놓여진 선택지와 그에 따른 결과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드라마의 답변이 될 테다.

덱스터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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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밋거리를 넘어 철학에 다가설 때

전관예우를 비롯해 법을 잘 아는 이들이 법치국가의 신뢰를 해하는 일이 부단히 발생하는 오늘이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법언은 어느새 순진한 이들만이 믿는 어리석은 경구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지난해 개봉한 <베테랑2>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자백의 대가>, 그밖에 최근 꾸준히 제작되고 있는 여러 영상 콘텐츠가 사적 제재를 얼마간 통쾌하게 그리는 것은 한국사회의 법이 더는 충분히 신뢰받지 못하는 현실을 확인케 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공동체의 질서를 돌아보게 되는 것은 신뢰받는 제도가 무질서 속에 개별적으로 이뤄지는 심판보다 장기적으로 더 낫다는 믿음 때문이다. 덱스터가 철저히 지키는 규율들과 그 규율에 답답함을 느끼는 미구엘의 모습에서 드라마는 거듭 제도와 질서가 지켜내는 것들이 존재함을 알도록 한다.

마찬가지로 <덱스터> 속 마이애미 경찰청 여러 형사들의 모습에서, 또 그 속에서 엿보이는 정의구현에 대한 헌신이며 공익에의 기여로부터 사적 제재에 대응하는 효과적 방도가 무엇인지도 확인할 수 있다. 형사사법의 공정성이며 시민 법 감정이 반영된 법 제정과 집행이야말로 법에 대한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정도란 이야기다. 좀처럼 이 같은 본질에 다가서지 못한 채 사적 제재란 소재를 흥밋거리로 소진하는 한국 작품들 사이에서 깊은 고민을 품은 명작을 되새기는 데는 바로 이런 까닭이 있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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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