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임은 며느리에게 "너희 행복을 왜 나에게 묻냐"고 일침한다.
TV조선
아이는 다행히도 수시모집 전형에서 원하는 곳에 합격을 했다. 기쁘고 대견한 마음이 컸지만, 기쁨 뒤엔 또 다른 감정이 밀려왔다. 바로 '허전함'이었다. 품에 있던 아이가 성인이 되어 나를 떠나려 한다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엄마로서 자잘하게 챙겨주던 것들을 내려놓을 때가 됐구나 하는 다짐을 하면서 울컥해지기도 했다.
이런 기분에 휩싸인 채 나는 TV조선 드라마 <다음생은 없으니까>를 시청했다. 그러다 다음 장면을 만났다. 손주를 오래 돌봐주던 순임(차미경)은 자신을 존중해주지 않는 아들 부부에게 더 이상 아이를 봐주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러자 며느리는 "솔직히 저희가 잘 살아야 어머니도 행복하신 거잖아요"라며 다시 돌아와 달라고 설득한다. 그때 순임은 이렇게 말한다.
"너 뭔가 단단히 착각하는 모양인데 너희가 행복해야 내가 행복한 거라고 누가 그러대? (…) 왜 너희 행복을 나보고 책임지래?" (7회)
이 말에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지금까지 나는 아이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라고 살아왔던 건 아닐까 돌아보게 됐고, 아무리 부모-자녀 관계라고 해도 서로를 독립된 사람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여러 심리학 이론들이 떠올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해 자신이 하고 싶은 길을 가게 된 아이는 이제 스스로 자신의 행복을 찾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엄마로서의 나도 마음을 전환할 때였다. 그동안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게 내 전부였던 시기도, 아이의 성취와 좌절에 매몰되었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아이가 아이만의 행복을 찾아가려 하듯, 나도 나의 행복에 좀 더 집중할 시기가 된 것이었다.
이를 깨닫고 나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가 보였다. 이제 '고3 엄마'로서의 정체감은 내려놓고 조금은 뒤로 밀려났던 상담자와 작가로서의 정체감을 되살리고, 아이에게 집중했던 시선을 주변으로 넓혀가며 살아갈 차례였다. <다음생은 없으니까>에서 순임이 손주 돌보기를 그만두고 친구들과 신나게 여행을 떠나자 딸 나정(김희선)은 그런 엄마를 보고 무척이나 행복해 한다. 이 장면은 내가 나의 행복을 스스로 찾을 때, 아이 역시 더 행복해지리라는 확신을 주었다.
"나는 요즘 막 수시 결과 나오는 거 보면서 이제 내 차례구나 싶어서 소화도 잘 안되는 것 같아."
내 아이보다 한 학년 어린 아이를 키우는 한 친구가 얼마 전 이렇게 호소해왔다. 지난해 이 무렵 나 역시 비슷한 느낌이었기에 이 마음이 너무나 잘 이해가 됐다. 내년에 고3이 되는 아이를 둔 다른 엄마들도 지금쯤 한층 강도 높은 불안과 긴장이 시작되고 있을 것이다.
불안과 긴장, 그리고 애틋함과 허전함이 공존하는 고3이라는 시기. 내게 도움을 줬던 드라마의 말들이 2026년의 '고3 엄마'들, 아니 한국의 많은 수험생 부모에게 가 닿았으면 좋겠다. '아직 모르는 오늘'에 집중하면서, 아이에겐 '빠꾸'할 수 있는 자리가 되어주고, 아이와 나의 '행복'을 분리하면서 그렇게 한 걸음 또 나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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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