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캐빈> 공연 사진
이모셔널씨어터
미궁에 빠지는 미스터리, 진실은 무엇인가
오두막에서 탈출한 방법을 궁리해보지만 묘책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진실이 알려지면 탈출이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데이와 마이클은 제약회사의 불법을 폭로하는 인터뷰를 오두막에서 진행하기도 한다. 당장 기사화되지 못하더라도 지금의 기록이 언젠가 알려질 것이고, 이것이 자신들을 가둔 제약회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라는 판단이다.
둘의 대화 주제는 제약회사의 불법뿐만이 아니다. 둘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둘에게서 의심스러운 정황이 발견된다. 마이클은 오두막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데이는 새를 과할 정도로 경계한다. 경계하다 못해 두려워하고 몸부림칠 정도다. 데이는 마이클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는 상황, 마이클은 데이가 두려워하는 새에 대해 끈질기게 캐묻는다.
이제부터 작품의 초기 설정, 범죄 드라마와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의 색채가 옅어지기 시작한다. 지금까지의 과정은 진실을 길어내고 직면하기 위한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데이라는 이름도, 마이클이라는 이름도 실존하는 것이 아니다. 데이의 원래 이름은 잭으로, 조류 충돌로 추락한 항공기 사고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다.
데이는 재난 이후 잭이 겪는 정신 착란에서 비롯된 가상의 인물이고, 마이클과 제약회사의 불법 역시 잭의 상상이다. 마이클의 원래 이름은 행크, 정신의학과 의사이다. 오두막인 줄 알았던 무대는 사실 행크의 병원이다. 사이코드라마, 일종의 상황극을 통해 고통스러운 과거와 직면하게 하는 작업이 시작된다. 오두막(cabin)은 진실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항공기 선실(cabin)이 되기도 한다.
▲뮤지컬 <캐빈> 공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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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이후를 조명하는 뮤지컬
사이코드라마는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정답을 찾기 위해 부단히 고민해야 한다. 당사자를 고통 없는 환상에 머물게 할 것인지, 고통스럽더라도 현실을 직시하게 할 것인지. 괴로워하는 잭을 바라보는 행크도 이 딜레마에 빠져있다. 뮤지컬 <캐빈>이 공연되는 극장의 무대는 실제 무대이기도 한 동시에 잭의 재난 이후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사이코드라마의 무대이기도 하다.
"그날로부터 온전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여긴 남겨진 우리를 위한 무대야."
잭(데이)과 행크(마이클)의 관계성은 치밀하고 섬세하다. 관계성 속에서 재난의 유일한 생존자 잭뿐만 아니라 행크도 치유되어야 하는 인물임이 드러난다. 사이코드라마의 무대는 우선적으로 잭의 것이지만, 점차 행크도 이 무대를 공유하며 '우리'의 것이 된다. 둘은 재난의 트라우마를 지닌 당사자인 동시에 서로의 트라우마를 치유해주는 동반자이자 조력자다.
우리는 재난 그 자체를 기억한다. 재난 그 자체를 조명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재난 그 자체만큼이나 중요한 재난 이후의 과정을 그동안 얼마나 살펴왔는가. 재난 당사자를 비롯해 재난과 직·간접적으로 얽혀있는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존중해왔는가. 뮤지컬 <캐빈>은 어쩌면 우리가 그동안 외면해왔을 수 있는 재난 이후의 과정을 다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뿐만 아니라 회복 과정에서 겪는 현실적인 딜레마, 당사자가 겪는 고통도 놓치지 않고 포착해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잭과 행크의 회복은 마무리된 것이 아닌 진행형이다. 둘은 사이코드라마의 무대에서 내려와 현실 세계에 발을 내딛는다. 무대가 이들의 회복이 시작된 공간이라면, 무대 밖은 무너진 삶을 재건해야 하는 공간이다.
한편 뮤지컬 <캐빈>은 2026년 3월 1일까지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et theatre 1에서 공연된다. 마이클 역에 박호산·하도권·윤석원, 데이 역에 정동화·유승현·홍성원이 각각 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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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에 갇힌 두 남자를 둘러싼 진실, 그 재난이 남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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