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늘을 든 소녀>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주)
군수물품을 만드는 방직공장 직원 카롤리네(빅 카르멘 손)는 전쟁에서 실종된 남편을 기다리는 데 지쳐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장 사장 예르겐(요아힘 펠스트룹)의 눈에 띄어 행복한 나날을 보냈지만 원치 않은 임신을 하면서 기구한 삶이 시작된다.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의 갑작스러운 귀환은 카롤리네를 더 깊은 수렁 속으로 안내한다.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 신분 상승을 꿈꿨지만 예르겐 어머니의 반대로 무산된다. 별도 달도 따줄 것 같았지만 카롤리네를 매몰차게 외면해 버린다. 전쟁통에 얼굴 반쪽을 잃어버린 남편까지 찾아오자 삶의 무게는 덧없이 무거워져만 간다. 결국 카롤리네는 공중목욕탕에서 스스로 낙태를 시도하다 이를 알아챈 모녀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한다.
친절한 다그마르(트란 디어홀름)는 아이를 낳으면 찾아오라고 권유한다. 부유층에 아이 입양을 주선해 주는 일을 한다며 안심시킨다. 이를 믿었던 카롤리네는 아이를 낳자마자 다그마르를 찾아가지만 끝내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며 끔찍한 현실과 마주한다.
영화는 덴마크 역사상 가장 뜨거운 논쟁이 된 '다그마르 오베르뷔 영유아 연쇄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다그마르 요한네 아말리에 오베르뷔는 1913년부터 20년까지 7년 동안 본인 아이를 포함해 총 9명에서 25명의 아이를 살해했다.
그는 혼외 아기들을 돌보는 보모로 일하며 끔찍한 일을 벌였다. 가톨릭 사회에서 금기시되어 온 낙태 사각지대에 내몰린 미혼모를 도와 입양 보내는 척했지만 실상은 살해였다. 시신을 하수구에 빠트리거나 벽난로에 태워 화장했으며 땅속에 묻기도 했다. 정확한 숫자가 기록되지 않고 추정인 이유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서다. 다그마르는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이내 감형되어 42세 나이로 교도소에서 사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덴마크의 아동 복지 관련 입법이 변경됐다.
남성의 보호라는 권력 아래 신체의 자기 결정권을 상실한 여성의 심리묘사가 압권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대체 누구를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극심한 빈곤의 늪에 빠진 여성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문제를 들춘다. 가부장제에 희생된 여성, 가난과 허기가 만들어낸 절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카롤리네와 다그마르의 악행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성을 톺아보게 한다. 극한의 상황 앞에 선악의 본질을 되묻는다. 불분명한 선악 구도를 취하며 피해자와 가해자로 단정하지 않는다. 어떠한 인물에게도 연민을 느끼도록 두지 않고 복잡한 마음이 들도록 유도한다. 따라서 이해는 하나 동조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 생긴다.
바늘은 영화의 중요 메타포다. 군수 공장의 연약한 작은 바늘, 태아를 해칠 큰 바늘, 마약을 놓아 정신을 좀먹는 주삿바늘이 등장한다. 바늘은 무언가를 찔러 해를 가할 수도 있지만 무언가를 꿰매 새 생명(희망)을 선사하기도 한다. 시종일관 음울하고 불쾌한 공기를 내뿜던 영화는 마지막에 가서야 작은 따스함을 건네며 마무리된다.
<바늘을 든 소녀>는 오직 극장에서만 누릴 수 있는 시네마틱한 경험을 선사한다. 로맨틱하게 시작했다가 잔혹 동화의 호러틱한 공기로 감싸안아 우울함을 극대화한다. 기괴한 프릭쇼까지 거들며 혼이 빠져나갈 듯 감정을 뒤흔들었지만 종국에는 웃음을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진정한 예술 영화의 정수를 경험하고 싶다면 추천하는 영화다.
▲영화 <바늘을 든 소녀>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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