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식에서 수상하는 이철희 연출가
코너스톤
〈그, 윷놀이〉가 품고 있는 질문은 단순하다. 그러나 동시에 너무 커서, 우리는 일상 속에서 쉽게 잊고 사는 질문들이다.
"연극은 질문합니다. 넌 어떻게 살고 있어? 사는 건 무엇인 것 같아? 지금 어디로 가고 있어? 너는 누구야? 우린 결국 죽는데… 이 연극은 빠르게 발전하느라 주체성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에 대한 일종의 의심입니다. 이 질문은 원초적인 거죠. 그런데 우리는 이 원초적인 것을 잊고 살아요."
그는 '통증'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꺼냈다. 연령, 성별, 지역을 막론하고, 우리 모두 각자의 삶에서 어떤 통증을 안고 살아간다. 이 연극은 그 통증을 삶 전체의 맥락 속에 놓고 다시 바라보게 한다.
"연령, 성별, 인종을 넘어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 속에서 통증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연극의 마지막 장면처럼, 결국 우리 모두는 다 죽게 되죠. 그 사실을 직시할 때, 비로소 '그럼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이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저는 그 질문을 관객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나아갈 길,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표지판'
이번 수상은 극단 코너스톤에게도, 연출가 개인에게도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그러나 그는 '상을 받았으니 이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느냐'는 질문에 쉽게 단정적인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
"예술가는 시류에 따르기보다, 예술가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수상은 그런 생각에 확신을 더해준 계기였어요. 그건 제가 연극을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어떤 방향의 연극을 실험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솔직히 말해 아직도 어렵습니다. 다만 한 가지,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놓지 않고, 코너스톤만의 시선으로 코너스톤만의 연극을 만드는 것, 그게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상은 연출가 이철희에게 어떤 의미일까. 잠시 생각을 고른 뒤, 그는 이렇게 적어 보냈다.
"이번 수상은 저를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삶과 인간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요. 그렇게 생각해 보면, 이 상은 한 인간으로서 더 성숙해지기 위한 표지판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는 "몇 년 전, 성경을 모티브로 썼던 작품을 다시 해 보고 싶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예전에 성경을 모티브로 쓰고 연출했던 작품이 있는데, 그 작품을 지금 다시 해보고 싶습니다. 인간의 속성을 낱낱이 드러내는 작품이라, 지금 이 시점의 제가 그 작품을 어떻게 바라볼지, 그게 저 자신에게도 무척 궁금합니다."
"봄이 아닌 날은 없으니, 일상을 귀히 여기시길"
마지막으로, 3월 대학로 공연을 이미 본 관객과 앞으로 다시 만나게 될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공연의 마지막 이미지 하나를 꺼내 놓았다.
"작품의 마지막에 윷을 놀던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조명은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는 글씨를 비춥니다. 유한한 삶을 사는 우리에게 봄이 아닌 날이 없다는 뜻이겠지요. 좋은 친구 많이 사귀시고, 각자의 일상을 귀하게 여기시길 바랍니다."
그리고는 한 줄을 또렷하게 덧붙였다. 삶은 죽음 곁에 잠시 머무르는 것이라고.
요란한 메시지 대신, 오래 묵혀 둔 문장이 조용히 객석 쪽으로 흘러온다. 한 판의 윷놀이가 끝난 자리, 우리는 여전히 각자의 말판 위를 걷고 있다. 도냐, 개냐, 걸이냐, 윷이냐, 모냐를 두고 일희일비하면서도, 어쩌면 그 모든 수가 결국 같은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은 말한다. 오늘도 윷가락을 한 번 던져 보자고. 요새는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그 윷놀이를, 우리 각자의 삶 안에서 다시 시작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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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쓰고 있다. 문화예술 시사 월간지에서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에서 객원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과 전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만나고 있다. 현재는 '서울문화투데이' '더프리뷰' 등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