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그날 그곳에 있었습니다 > 책 표지
이애기장수
- 인터뷰이 찾는 것도 쉬운 건 아니었을 것 같아요.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 아니었나요?
"저희가 가능한 모든 루트를 동원했고요. 일단 작년 계엄 당일부터 시작해서 저희 <추적 60분>이나 아니면 저도 현장에서 한남동의 윤석열씨 농성할 때까지 쭉 촬영했었는데 그때 저희가 현장에서 이름과 주소 받아온 집회 참가자들에게 일일이 다 전화 돌렸었고 가능한 언론 기사들 전부 다 보고 섭외를 쭉 돌려봤고요. 요샌 SNS에 자기 경험담들 많이 올리시잖아요. SNS 리서치도 쭉 했고 전화 안 돌려본 데가 없어요.
예를 들면 저희가 목사님을 인터뷰했어요. 그러면 이런 생각을 하는 거죠. 목사님만 나왔을까죠. 신부님도 나오고 스님도 나왔을 텐데라고 생각해서 영등포와 마포구에 있는 모든 절과 성당에 전화를 돌려보는 거죠. 가까워야 급하게 오실 수 있었을 테니까요. 굉장히 수공업적으로 섭외를 했어요. 저희 메인 작가분이 한 분 계신데 그분에게 저희가 페이 드릴 시스템이 아니라 드리진 않았거든요. 근데 저희 메인 작가분께서 계속 무슨 기사가 날 때마다 저희 단톡방에 계속 이런 기사가 났다고 공유 해 주셔서 그런 것들이 계속 모인 거죠."
- 그럼, 제안했을 때 상대방의 반응이 어땠나요?
"본인들의 기억이 기록된다는 거에 대해 공감해 주시는 분들도 상당수 있었지만 일단 카메라 앞에 앉는 건 부담스러워들 하세요. 특히 시민들 같은 경우죠, 그래서 그런 분들 섭외하는 거는 저희가 전화 두 번 하고 세 번 하고 네 번 했죠."
- 책에 보니까 중간중간에 작은 글씨가 있더라고요. 그건 뭔가요?
"그게 사실 책을 내겠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인터뷰하고 제가 주말에 집에서 정리 했어요. 언젠가부터 인지 기억은 안 나는데 정리 하면서 제 감상을 조금씩 덧붙여 봤어요. 왜냐하면 저도 인터뷰를 진행하는 당사자였으니요. 나중에 책을 내기로 하고 편집자님하고 많은 대화를 할 때 제가 이렇게 정리해 놓은 게 있다고 보여드렸죠. 그랬더니 편집자님께서는 그걸 내레이션처럼 받아들이셨나 봐요. 이런 형식의 글이 많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그걸 조금 추가 하기 시작했죠. 근데 제 일이 많아서 도저히 혼자 정리 못 하겠더라고요. 때문에 저희 프로그램 도와주신 메인 작가인 김희정 작가와 함께 그걸 나눠서 작업한 거죠."
- 기억에 남는 인터뷰가 있을까요?
"저는 다 기억에 남아요. 제가 인터뷰할 때도 있었고 저희 후배들이 인터뷰할 때도 있었는데 후배들이 인터뷰할 때도 가급적이면 가서 보려고 노력은 했죠. 물론 다 보진 못했는데 그래도 제가 가편집본은 항상 들어가서 보고 이런저런 의견 주기 때문에 다 본 건데 한 사람 한 사람 진짜 빼놓을 분이 없더라고요. 근데 그런 건 있죠. 제작자다 보니까 섭외가 너무 어려웠던 분들은 기억에 남죠."
- 누구일까요?
"이원종 배우가 인터뷰하는 걸 되게 부끄러워하셨어요. 왜냐하면 본인이 여의도에 가긴 했지만 가서 자기가 나서거나 한 게 없고 자기는 되게 비겁한 사람이었다는 얘기를 인터뷰 때 하셨어요. 이원종 배우한테 제가 전화를 한 10번 넘게 한 것 같아요.
그리고 끝까지 못 찾은 분도 있어요. 제가 사실 계엄의 밤 현장에 현직 아이돌 걸그룹 멤버 중의 한 명이 나왔었다는 얘기 듣고 수소문했어요. 그래서 그룹과 이름까지 특정하고 여러모로 노력해서 수배 했는데 그분이 지금은 아이돌 일 그만두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는 바람에 전화번호를 못 땄어요. 그렇게 끝까지 전화 못 드린 분도 기억에 남죠."
- PD님의 이야기가 궁금하거든요.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0분 정도에 뭐 하셨어요?
"저도 인터뷰한 분들하고 경험이 진짜 똑같아요. 제가 대학원 다니고 있는데 대학원 강의 마치고 9시 반에서 10시 사이에 집에 들어왔겠죠. 그리고 씻고 나오니까 저희 부부 핸드폰에 불이 난 거죠. 근데 저희가 퇴근한 이후에는 아이들이 어려서 핸드폰 잘 안 하거든요. 그런데 계속 뭔가 진동이 울리니까 저희도 그냥 무심코 열어본 거고 계엄을 처음에는 잘 인지 못 하죠. 그럴 때는 다른 사람들은 유튜브 라이브 많이 켰다고 하던데 그래도 저는 KBS부터 틀게 되더라고요. TV 틀어보니까 KBS 뉴스에 앵커들도 당황해하고 있는 게 보이고 YTN, MBC, SBS 다들 그냥 앵커들도 뭐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들이 그대로 라이브로 나가고 있는 걸 보면서 반사적으로 현장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 현장에 가보니까 어땠나요?
"저희가 국회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국회 봉쇄가 이루어지고 있던 시점이었고 시민들이 모이고 있던 시점이었어요. 그리고 넘어가려고 하는 보좌관, 의원들, 직원들, 시민이 경찰과 실랑이하고 있었고 저희는 편집해야 할 커트들을 빨리 찍어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 위주로 한 두어 시간 정도 찍었던 기억이 있어요."
- 현장에서 계엄 해제 결의안 소식 들었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근데 사실 계엄에 대해 경험이 없다 보니까 절차에 대해 전혀 모르잖아요. 그리고 그날 현장이 핸드폰이 잘 안 터졌어요. 어느 시점인가 누군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됐다고 박수 치며 만세 부르는 거예요. 그래서 계엄이 끝났으니 집에 가도 되나 보다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또 누군가는 윤석열씨가 계엄을 또 할 수도 있다고 해요.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나니까 계엄군이 철수하고 그런 상황들이 정리가 됐어요."
-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그렇게 한 게 어때요?
"제가 계속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사실 대한민국이 참 대단한 나라라는 거예요. 대단한 나라라는 게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 할 일들을 충실히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그날 밤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 할 일들을 되게 충실히들 하셨어요. 사실 국회 전광판 시스템 켜신 분도 각자 할 일을 한 거거든요. 그 국회의원들 어차피 술 먹다가 다 뛰어오잖아요. 그리고 저는 군경의 소극적 저항을 되게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에요. 그분들은 군경의 입장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생각하고 적절하게 판단하신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거기에 온 수많은 시민도 다 다양한 자기 직업들을 갖고 있지만 내가 시민으로서 각자 할 일 한 거지 대단히 소명 의식이 있어서 한 건 아닌 것 같고 저도 마찬가지인 거죠."
- 방송에 안 나온 것 중 얘기할 게 있을까요?
"저희가 지금 유튜브에 공개한 분들은 100명 넘어가는데 10~20명 정도는 저희가 전화 인터뷰 포함해서 인터뷰만 하고 영상으로 공개를 안 한 거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사실 작업을 할 수 있는 저희의 능력치도 있고 그래서 인터뷰만 해놓고 영상 못 만든 분들도 있죠. 이분들의 이야기를 꼭 기억해 놓고 있다가 언젠가는 우리가 다시 좀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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