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트루웨스트> 공연 사진
레드앤블루
블랙코미디가 남긴 묵직한 질문들
연극의 초반에 형제는 엄마의 집이 있는 동네를 두고 이야기하는데, 이때 리가 "지어진 게 아니라 지워진 것"이라는 말을 툭 던진다. 이 대사는 필자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았다. 어쩌면 <트루웨스트>는 지어진 것과 지워진 것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로 정리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스틴은 '지어진 것'을 대변한다. 번듯한 학력과 직업, 안정적인 소득과 가정 등 오스틴은 모범적인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리의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지어지기 위해서는 지워짐이 필요하다. 모범적인 삶을 위해 오스틴이 포기한 것은 모험, 틀을 깨는 자유분방함이다. 이는 곧 리가 대변하는 것인데, 리는 이것들을 지우지 않았기에 지어지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인물이다.
한편 둘은 서로의 것을 갈망한다. 오스틴은 자신은 억눌러왔지만 형은 간직해온 것들을 동경한다. 리를 상징하는 사막에 오스틴이 그토록 가고 싶어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형 역시 오스틴처럼 반듯한 삶을 꿈꾸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실현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깨달은 지 오래다.
지어진 것과 지워진 것의 대비는 문명에 대한 메타포로도 읽힌다. 성공과 실패,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틀로도 접근이 가능하다. <트루웨스트>의 배경은 물질만능주의가 극에 달해있던 20세기 말 미국 사회지만, 오늘날 이곳과도 분명 통하는 지점이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 바를 충실히 이행하느라 피폐해진 인간성, 그렇게 발생하는 균열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한편 연극의 모든 이야기가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가족 내에서 벌어진다는 점도 불편하지만 흥미롭다.
▲연극 <트루웨스트> 공연 사진
레드앤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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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두고 벌어진 형제의 소동... 연극이 남기는 묵직한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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