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러 넘버 3>의 한 장면.
M&M 인터내셔널
제목 <미러 넘버 3>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인상주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 거울 모음곡 M.43 > 중 세 번째 곡 '바다 위의 작은 배'를 가리킨다. 라우라가 극 중 직접 연주하며,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도 울려 퍼졌던 바로 그 음악이다. 잔잔한 수면을 헤치던 작은 보트가 어느 순간 갑작스러운 파도에 휩쓸린다는, 페촐트는 이 음악을 인물의 심리와 영화의 리듬에 그대로 투영한다.
라우라는 상실을 거부한다. 남자친구와의 인연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 것'이라며 감정적 거리를 둔다. 눈앞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고도 그녀가 평온해 보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애도할 마음 자체를 차단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슬픔을 느끼지 않음으로써 살아남았고, 그렇게 무감각해진 자신이 또다시 누군가에게 '대체품'이 되는 상황에까지 밀려온다.
베티는 정반대다. 그녀는 죽은 딸 옐레나를 잊지 못한다. 질문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상실 앞에서 영원히 멈춰 있다. 그녀에게 라우라는 '딸의 부재를 견디기 위해 필요한 존재'에 가깝다. 이름이 무엇이든, 어디에서 왔든 상관 없이 라우라는 그저 '옐레나와 비슷한 누군가'일 뿐이다.
페촐트는 이 둘을 억지로 충돌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상실을 견디는 두 사람이 한 집안에서 조용히 스쳐 지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라우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고, 베티는 보이지 않는 딸을 라우라에게 투영한다. 여기서 '거울'이라는 개념이 형상화된다. 상실의 그림자가 서로를 비추며 일그러지는 것이다.
가장 조용한 순간에 드러나는 '모순의 얼굴'
▲영화 <미러 넘버 3>의 한 장면.
M&M 인터내셔널
< 미러 넘버 3 >는 복잡한 플롯이나 격렬한 드라마를 통해 감정을 폭발시키는 영화가 아니다. 대신 '상실을 견디는 방식의 모순'을 집요하게 응시한다. 누군가는 울부짖고, 누군가는 잊으려 하고, 누군가는 부정하며 대체자를 찾을 것이다. 영화는 이들 중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슬픔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사람을 뒤틀고 때로는 다른 누군가의 삶까지 침범하게 만드는지 조용히 보여줄 뿐이다.
베티의 행동은 어쩌면 최악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페촐트는 그녀를 악인으로 그리지 않는다. 단지 슬픔을 감당하지 못한 인간의 실루엣으로 남겨둔다. 라우라는 베티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작은 흔들림을 경험하며 조금씩 자신을 돌아본다. '나는 누구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결국 < 미러 넘버 3 >는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사실은 우리 삶의 균형을 조용히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바람은 비어 있지만,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때로는 천지를 뒤흔들 만큼 강한 흔적을 남긴다. 페촐트는 그 흔적을, 음악과 공간과 얼굴과 침묵을 통해 천천히, 그러나 깊이 쌓아 올린다. 그렇게 관객은 어느새 라우라가 느끼는 바람의 결을 함께 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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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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