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은 마리아> 스틸
찬란
예상치보다 훨씬 건조하게 그날의 사건을 재연한 다음, 이야기는 마리아가 경험한 고통의 시간을 묘사하는 데 할애된다. 자신만 버려둔 채 챙길 것 다 챙겨 숨어버린 감독과 상대역 대신에 집중포화를 당하는 처지를 감당할 수 없던 그녀의 방황과 중독이 절절하게 그려진다.
그렇게 망가진 마리아에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건 삼촌 '미셸', 그리고 인터뷰로 만난 연하의 동성 파트너 '누르'다. 같은 해 칸영화제에서 공개된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로 기억에 남은 셀레스트 브룬켈이 강렬한 마리아의 연기와 대등하게 합을 맞춰 깊은 인상을 준다. 그렇게 가족의 정으로 마리아를 감싸는 삼촌과 사촌 언니의 고통을 지켜본 어린 조카, 금단현상으로 몸부림치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연인 덕분에 기나긴 후유증을 간신히 돌파한 마리아는 비록 예전과 같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아닐지언정, 주체적인 여성 연기자로 활동할 수 있었다. 영화는 마리아의 불운을 기록하되, 비운의 여배우로 고착화하는 선입견을 깨고자 명확한 좌표를 택한다.
즉, 이 영화는 마리아 슈나이더의 불운한 삶을 가련하게 그리던 관행과 확고하게 선을 긋는 대신, 시공간을 초월해 후대 여성들에게 각오와 다짐을 전하려는 의지의 표명이다. 사촌 언니의 고통을 지켜본 조카가 원작을 집필했다는 점, 원작명인 '너의 이름은 마리아'를 주체적 관점으로 살짝 비튼 제목이 주는 의도, 영화판 남성 위계와 담합에 맞서 주인공 편에 선 누르로 표상되는 '동지' 여성의 존재감이 선명하다.
1930년대, <오즈의 마법사>로만 기억되는 주디 갈란드가 할리우드 시스템 아래에서 산업화 시절 봉제공장 여공처럼 희생당했다면, 1970년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때문에 평생 고통을 당한 마리아 슈나이더는 예술이란 목적에 착취당한 존재다. 지금도 영화계 성적 위계 논란은 현재형이다. 프랑스 영화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한쪽에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위시한 여성 서사가 빛을 발하지만, 반대편엔 성 추문 논란 고참 감독에 공로상을 수여하는 권위있는 영화상 시상식이 있다.
50여 년 전 사건과 현재를 연결하는 영화의 의도는 선명하다. 과잉 또는 일방적이란 항변도 나올 수 있겠지만, 여전히 마리아 슈나이더란 배우 이름 대신 저주받은 영화 캐릭터로만 기억되는 주인공에게 이름을 찾아주기 위한 결기에 누가 함부로 돌을 던지랴.
<나의 이름은 마리아>는 과거 일이라고 그저 이해하거나 묻어둘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로 깃발을 세우려는 영화다. 참, 이젠 믿고 보는 신뢰의 아이콘 '소지섭' 제공이다.
<작품정보>
나의 이름은 마리아
Being Maria
2024 프랑스 드라마
2025.11.26. 개봉 103분 15세 관람가
감독 제시카 팔뤼
각본 제시카 팔뤼, 로레트 폴망스
출연 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이, 맷 딜런, 주세페 마지오, 셀레스트 브룬켈
원작 바네사 슈나이더 '너의 이름은 마리아'
수입/배급 찬란
공동제공 소지섭, 51k
2024 77회 칸영화제 칸 프리미머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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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