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이름 없는 약속들로부터> 출연 배우지난 12일 뮤지컬 <이름 없는 약속들로부터> 공연 종료 후 질의응답을 마친 배우들이 인사하고 있다. 황두현(왼쪽부터), 장보람, 나재엽, 이선우 배우다.
한별
변하지 않는 세상에서 변하는 사람들
실제 사건을 다루는 만큼 참신한 플롯을 사용하기보다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극은 흘러간다. 약 120분의 공연에서 서사의 중심인물은 우현에서 인경으로, 인경에서 윤섭으로 넘어간다. 세 사람은 한국전쟁 때 살아남았으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학살 피해를 알고 이를 밝히려는 사람, 학살의 가해자로서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을 표현한다. 이들은 시대로부터 상처 입은 사람들로 각자의 불행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인물의 대비 역시 뚜렷하다. 과거의 일은 지나간 일이니 잊고 살아가야 한다는 주희와 과거를 기억하고 다신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함을 알리려는 인경의 대립이 짧다고 느껴질 만큼 좋았다. 우현과 윤섭도 형제지만 다른 길을 걷는다. 우현은 과거를 알아가며 변화하지만, 윤섭은 이미 변화한 상태로 과거를 지우지 못한다.
이 공연을 보면서 든 감정 중 하나는 좌절감이었다. 사건의 성질은 다소 다르지만 '세월호 얘기는 이제 지겹다', '놀러 가다 죽은 이태원 참사를 왜 애도해야 하냐'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더욱이 윤섭과 주희가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을 하는 부분에서는 세상은 도돌이표라서,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회의감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에게 인경과 우현의 삶을 전하는 까닭은, 세상은 그대로일지라도 사람들이 변하기 때문일 것이다. 공연 후반부 우현은 복역 중인 인경 대신 구술 채록을 다니며 학살의 공간을 기록한다. 인경 역시 출소 후 다시 새로운 길을 떠난다. 세상에 불행한 일은 계속 벌어지지만, 그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변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변하지 않는 세상에 한탄하기보다 각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국가 폭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세월호도 이태원도, 이름 붙여지지 못한 숱한 사고들도, 참사는 계속 일어난다. 이 공연에 등장한 잊힌 역사 속의 사건들까지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국가는 왜 이렇게 폭력적인 것인가, 그 폭력에 맞서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름 없는 약속들로부터>는 그 질문을 던진다. 답은 정해주지 않았지만 분명한 건, 관객들에게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극 중 인경처럼, 우현처럼 불행을 마주하고 변화를 향해 나아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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