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리와 버드> 스틸사진
찬란
베일리가 처한 환경은 전통적인 가족 제도의 붕괴와 사회 안전망의 부족을 동시에 고발한다. 아버지 쪽의 베일리를 포함한 남매 외에, 폭력적인 남자와 동거하는 어머니 쪽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특정되지 않는 어린 동생들이 줄줄이 존재하는 기막힌 상황에서, 베일리는 어른스럽게 사태를 헤쳐 나간다. 자신이 제대로 받지 못한 돌봄을 동생들에게 되돌려주려는 대리 양육자의 일을 떠안는 모습은 대견하지만 안타깝기만 하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적인 연대와 가족애를 지키려는 베일리의 아름다운 노력이 가상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소외에 직면한 아동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냉혹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셈이다. 사회적 돌봄과 권위의 공백은 베일리의 오빠 헌터가 친구들과 함께 일종의 소년 자경단처럼 행동하는 모습에서도 확인된다. 이들의 자경단 활동은 어른의 보호가 부재한, 기댈 것 없는 환경에서 청소년 스스로 질서를 확립하거나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려는 미숙하지만 나름대로 정당한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감독은 이러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개인의 노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깊은 질문을 던지면서도 그럼에도 노력하는 개인들을 보여준다.
이러한 살벌한 리얼리즘을 통과하면서도 영화는 베일리의 개인적인 성장에 초점을 맞춘 뚜렷한 성장 영화의 궤적을 그린다. 초경을 경험하며 겪는 몸과 마음의 변화는 그녀가 어쩔 수 없이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알린다. 아빠와 겉으로 대립하는 듯하지만, 두세 명이 겨우 설 수 있는 전동 킥보드와 같은 이동수단에 함께 오르는 순간들은 부녀 간의 애정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아빠의 재혼 예식에 결국 아빠가 원하는 옷을 입고 참석하는 베일리의 모습은, 불안정한 관계 속에서도 아빠의 행복을 인정하고 자신의 복잡한 감정을 절제하려는 성숙한 노력의 표현이다. 사회가 미성숙의 길로 떨어지고 있지만 소녀는 성숙한다. 베일리가 외적인 상황과 별개로 내면의 성장을 통해 스스로 다독이며 어른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어른스럽지 못한 사회에서 빨리 어른이 돼야 하는 아이의 모습은 성장영화이며, 그 전형적이지 않은 성장통은 사회고발이 된다. 베일리 역을 맡은 니키야 애덤스는 연기 경험이 전무한 베일리 또래 학생이다. 반항적이면서도 섬세한 12살 소녀의 복잡한 내면을 순수한 에너지로 생생하게 표현했다.
<베일리와 버드>는 사회고발과 소녀의 성장을 넘어, 삶의 균열 속에서 잠시나마 얻게 되는 마법 같은 위안과 비상에 관한 영화다.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따뜻한 눈물을 글썽이며 찾을 수 있는 위안 같은 게 있을 법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베일리와 버드의 대사가 핵심 전언이다. 이 대사가 관객에 따라 찡하게 다가올 수도, 공허하게 울릴 수도 있다.
"정말 아름답지 않니?"
"뭐가요?"
"오늘"
10월 29일 개봉.
안치용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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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영화 등 예술을 평론하고, 다음 세상을 사유한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세계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나이 들어 신학을 공부했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ESG연구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영화평론가협회/국제영화비평가연맹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