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얌섬스틸컷
필름다빈
서로 다른 이해관계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사람이 세 명이면 나름대로 사회를 이루는 것, 서로에 대해 묻고 알아가며 세 사람은 동질감 있는 한 무리를 이룬다. 나무를 잘라 엮어 가짓배를 만들고, 먹을 것이나 마실 물을 찾고, 섬을 탐색하며 필요한 일을 해결해나가는 이들이다. 영화는 이들의 일상을 뒤따르며 조금씩 섬에서의 삶에 일어나는 균열을 포착한다.
시작은 다분히 한국적인 무엇이다. 모닥불에 앉아 발톱을 자르던 꺽쇠에게 몽휘가 자른 발톱은 모래밭이 아니라 모닥불에 넣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을 그 오래된 전래동화, 발톱을 먹고 제 흉내를 내는 쥐에 대한 이야기다. 놀랍게도 꺽쇠는 그로부터 둘이 되었다가 셋이 되고, 섬에서의 이야기도 제멋대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바얌섬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이 괴이하기 짝이 없다. 뼈만 남은 여인의 시신과 그 곁에서 발견된 머리 붙은 아이의 두개골은 무엇을 말함인가. 나타난 꺽쇠의 분신들과 그들의 행각, 또 발견된 술단지며 어디선지 불려온 기생들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벌어지는 일과 그 끝의 운명을 보고 있자면 어쩌면 바얌섬은 처음부터 탈출이 가능한 이 세계의 섬이 아닐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이 영화를 특별하게 보는 이유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욘 포세의 작품 가운데 <아침 그리고 저녁>이란 작품이 있다. 이 소설의 두 번째 장은 어느 날 아침 일어난 늙은 어부 요한네스의 한 나절을 그린다. 평소와 다름없이 잠에서 깬 요한네스가 집을 나서 친구 페테르를 만나고, 대화하고, 낚시를 하고, 그러다 오래 전 애정 담긴 편지를 건넸던 첫사랑 여자와 마주치고 그런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요한네스의 앞에 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에르나가 나타나고, 도무지 이 세계에선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빚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현실과 현실 너머의 세계를 겹쳐 보이는 가운데 비로소 드러나는 것들이 있다. 때로 어떤 세계는 우리의 이해로 닿지 않는다. 그건 낯선 공간, 표류하다 마주한 섬일 수도 있고 완전히 문화가 다른 먼 외국일 수도 있다. 그 환상적 공간 위에서 대화와 행동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의식이 작품을 특별하게 여기도록 한다. <아침 그리고 저녁>이 그렇고, <바얌섬> 또한 그러하다. 두 작품은 서로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이지만 통하는 바가 없지 않다. 바다 속에 바다가 있다는 이야기, 빠져 죽은 이가 한없이 가라앉고 있으리란 이야기가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소설 가운데 또 다른 방식으로 등장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존재다. <라이프 오브 파이> 속 섬과 표류하는 이야기가 하나같이 그러하고, <아침 그리고 저녁>의 요한네스가 어느날 마주한 마을에서의 이야기 또한 그렇다. <바얌섬>을 나는 이들 작품에 댈 수 있는 한국적 응답이라 여긴다. 새로우나 또 어떤 각도에서 보면 새롭지도 않은 것이, 우리 모두가 꿈과 환상, 현실과 공상,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앎과 모름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고 있는 때문이겠다. 나는 그 또한 영화가 뛰노는 장이라고 여긴다. <바얌섬>이 그러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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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