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프리마 파시> 출연진 포스터충무아트센터 증극장 블랙 벽면에 걸려 있는 출연진 포스터다. 왼쪽부터 이자람, 김신록, 차지연 배우다.
한별
피해자의 이야기
테사의 믿음이 붕괴하는 순간은 가장 무겁고 두려운 장면이지만 동시에 맹목적으로 승소와 무죄에만 매달리던 테사가 변화의 필요성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하다. 테사는 무대를 둘러싼 울타리를 넘어 관객석으로 내려와 그의 진심을 전한다. 무대와 객석의 벽이 깨진다. 그 순간 관객이었던 나는 테사의 동지가 된다.
변호사에게, 검사에게, 피해자에게, 방청객에게 다가가는 법과 제도는 모두 다르다. 작가인 수지 밀러는 인권변호사로서 본인이 느꼈던 것을 연극에 고스란히 담았다. 법정의 가장 기본 원칙인 '무죄추정원칙'이 성범죄 재판에서는 불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꼬집는다. 영국 형사재판의 제도 중 하나인 '브와 디르'도 소개한다. 브와 디르는 형사 공판이 진행되는 도중 판사가 해당 쟁점이 배심원 앞에서 논의되면 곤란하다고 판단할 경우 공판 진행 중이더라도 배심원을 법정 밖으로 내보낸 뒤 진행되는 제도다.
판사의 브와 디르 선언 후 테사는 왜 법과 제도가 바뀌어야 하는지, 본인이 겪은 일이 무엇이었는지 진실되게 말한다. 테사는 이 재판으로 본인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하며 다른 여성들이 같은 일을 겪지 않게 하려고 진술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언젠가 테사가 반대신문을 했던 여성 피해자와 같은 마음으로 그는 증인이 된다. 이때쯤 객석에서 흐르는 훌쩍이는 소리가 관객들이 테사에게 공감하고, 그와 연대하고 있음을 알린다.
현실의 여성들도 계속해서 말한다.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지 말고, 신고 및 진술 과정에서 피해자를 보호해달라고 싸운다. 과연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는 그들의 말을 들었던가? 확실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다. 수사 과정에서 2차 가해를 받고, 재판이라는 부담감과 불편함이 자신을 짓누르는 상황에서도 피해자들은 이를 악물고 나선다.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나와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숨이 턱 막힌다. 성폭력 생존자가 다른 피해자를 위해서 나서야 하는 이 사회에서 법과 제도는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재판에서 테사를 강간한 가해자가 무죄를 선고받고 변호사와 악수한다. 그러나 테사는 좌절하지 않는다. 테사는 넘어져 있던 의자를 세운다. 그리고는 확실하게 말한다. 법과 제도는 변해야 한다고. 확신을 얻은 테사는, 아니 테사를 연기한 배우는 커튼콜 이후 법정의 문을 활짝 열고 나가며 테사의 다짐을 전달한다. 누군가 '법과 제도가 불합리하다'라는 말한다면, 우리는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프리마 파시>는 그 변화의 시작을 관객에게 전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