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을 누리던 강태풍은 자신의 이름을 딴 아버지의 회사가 투자 실패와 거래처의 어음 부도로 큰 위기에 빠지게 된다.
tvN
<태풍상사>는 몸도, 마음도, 지갑도 얼어붙은 1997년 IMF 시대에 직원도, 돈도, 팔 것도 없는 무역회사의 사장이 된 초보 상사맨의 고군분투 성공기를 그린 드라마다. 보이그룹 2PM 출신의 이준호가 IMF 사태로 망해버린 회사를 남기고 돌아가신 아버지(성동일 분)의 뒤를 이어 태풍상사의 대표가 된 강태풍을 연기한다.
중견기업 태풍상사 설립자 강진영의 외아들 강태풍은 평생 회사를 위해 온 몸을 바친 아버지와 달리 대학에서 원예학을 전공하고 꽃을 연구하는 열정적인 젊은이다. 하지만 남들이 보면 태풍은 유복한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자라 명품 옷을 입고 클럽에서 열리는 댄스대회에 출전하고 친구에게 주먹을 휘둘러 경찰서나 드나드는 부모 잘 만나 걱정 없이 살아가는 '철없는 X세대'다.
그렇게 젊음을 누리던 태풍은 자신의 이름을 딴 아버지의 회사가 투자 실패와 거래처의 어음 부도로 큰 위기에 빠지게 된다. 충격에 쓰러진 아버지를 간호하던 태풍은 잠시 외출했다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고 그 순간 병원 로비의 TV에는 한국의 IMF 구제금융 신청 뉴스가 흘러 나왔다. 수장을 잃은 태풍상사는 순식간에 난파선이 됐고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은 태풍은 아버지의 유산을 지키기로 결심한다.
<태풍상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절망으로 기억되고 있는 IMF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무겁거나 심각한 드라마는 아니다. 실제로 1회 초반 연출은 유쾌했다. 강진영 사장의 사망과 아버지의 메모를 읽은 태풍의 오열 장면을 제외하면 내용도 경쾌하다. 1990년대의 인기 드라마 제목을 붙인 회차 별 부제도 신선하게 느껴진다.
경쾌한 진행과 이준호, 김민하를 비롯한 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조화된 <태풍상사>는 시작도 나쁘지 않다. 첫 방송에서 5.9%의 시청률로 출발한 <태풍상사>는 2회에 시청률이 6.8%로 상승했다(닐슨코리아 시청률 기준). 하지만 나는 <태풍상사>를 다른 오피스 드라마처럼 마냥 즐겁게 시청하긴 힘들었다. <태풍상사>의 배경이 되는 1997년 IMF 시대의 나는 드라마 속 강태풍 이상으로 철이 없었기 때문이다.
철없던 나의 스무 살을 지켜주셨던 아버지
▲IMF 외환위기가 닥친 1997년, 갓 스무 살이었던 나는 아버지께서 얼마나 애쓰시는 줄도 모르고 가수 리아의 팬클럽 활동에 매진했다.
양형석
한국이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던 1997년, 나는 어렵게 대학에 들어갔다. 하지만 실력을 과대평가한 나는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한 학기 만에 학교를 휴학하고 다시 수능을 준비한 '반수생'이었다. 1997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1월 19일에 열렸으니 한국이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을 때 나는 경제가 위기에 빠졌다는 걱정보다 '수능도 끝났으니 점수가 발표될 때까지 실컷 놀아야 겠다'는 해방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물론 뉴스와 신문에서는 매일매일 경제와 관련한 부정적인 소식들이 보도됐지만 당시 아버지께서는 "나라 걱정은 높은 사람들이, 집안 걱정은 아버지가 할 테니 너는 학생 본분에만 신경 써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수능이 끝난 기쁨을 만끽하며 철 없이 놀기만 했다(1997년엔 지금은 조국혁신당의 국회의원이 된 김재원 의원(전 가수 리아)이 가수로 활동했는데 당시 나는 김재원 의원의 PC통신 팬클럽 회장이었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번 힘들게 대학에 들어가고 1년 동안 학교를 다니다가 군 입대를 위해 휴학을 했다. 하지만 그 시절 IMF 외환위기의 여파로 입대를 신청한 20대 초반의 또래 남자들이 급격히 늘어났고 결국 나는 새 천 년을 한 달 앞둔 1999년 12월에야 입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휴학과 입대 사이 1년의 시간 동안 아버지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시는 줄도 모르고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며 젊음을 만끽했다.
나는 미취학 아동 시절이던 1982년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강서구에 거주하다가 1997년6월 마포구로 이사 왔다. 당시만 해도 태어나 처음으로 아파트에서 살게 됐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지만 사실 IMF 사태 여파로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평생 피땀 흘려 일하셔서 마련한 강서구의 집을 매각하고 전세로 이사온 것이었다. 또한 동대문으로 넓혔던 가게들도 차례로 문을 닫아야 했다.
남대문에서 핸드백 도매업을 하신 아버지는 IMF 외환위기로 인해 우리 가게로 가방을 납품하던 공장들이 대거 문을 닫으면서 제품 수급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아버지께서는 1990년대 후반 맨 몸으로 인건비가 싸다는 중국 광저우로 떠나 말도 통하지 않는 현지에서 직접 공장을 섭외하러 다니셨다. 물론 그 때의 철없던 나는 이것이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려는 소상공인의 몸부림인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강태풍처럼 후회하기 전, 아버지와의 추억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혹시 숨겨 놓은 재산이 없을까 사무실을 뒤지던 강태풍은 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으로 남긴 통장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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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상사>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혹시 숨겨 놓은 재산이 없을까 사무실을 뒤지던 태풍은 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으로 남긴 통장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속에는 '보내는 사람' 이름으로 써 놓은 아버지의 숨은 편지가 있었다. 편지를 발견하고 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뒤늦게 깨달은 태풍은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그리움과 후회, 반성이 뒤섞인 눈물을 쏟아냈다.
'IMF 사태'로 인한 회사 부도로 충격을 받고 세상을 떠난 <태풍상사>의 강태풍 아버지와 달리 우리 아버지는 다행히 IMF 외환위기를 잘 극복하시고 여든에 가까운 연세가 되신 현재까지도 중국 출장을 다니실 정도로 건강을 잘 유지하고 계시다. 가끔은 30대 초반에 뇌출혈이라는 질병이 찾아와 15년 넘게 고생하고 있는 나보다 더 건강해 보일 정도라 아들 된 입장에서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어느덧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나는 IMF시대를 겪으신 그 때의 아버지 나이와 비슷해졌다.그 시절 아버지는 국가적인 외환위기에도 사업체를 지켜내신 강한 어른이었지만 2025년의 나는 1997년과 비교해 크게 성숙하지 못했다. <태풍상사>를 보고 난 후 강태풍처럼 아버지가 떠나신 후 뒤늦게 후회하기 전에 아버지와 최대한 좋은 시간들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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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에 찾아온 IMF, 결국 아버지는 동대문 가게를 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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