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 살인사건스틸컷
씨즈온
영화는 소설의 틀을 거의 그대로 따르는 듯 보인다. 영화의 시작점, 한 여성이 한적한 계곡에서 칼에 찔린 주검으로 발견된다. 소설에선 주간지 기자였던 이가 방송국 PD로 등장하여 살인사건을 역으로 추적해 나아간다. 빼어난 미모의 피해자의 회사 입사동기로 사건 이후 종적을 감춘 미키(이노우에 마오 분)를 그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다.
소설이 그러했듯, 영화 또한 사건을 추적하는 유지(아야노 고 분)가 만나는 이들의 모습을 이어가며 전개된다. 죽은 노리코와 미키를 모두 아는 회사 동료들부터, 미키의 학창시절을 기억하는 이들, 그 친구와 부모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인터뷰의 대상이 된다. 유지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제 취재내용을 트위터에 그대로 공개하는데, 자극적 내용이 그대로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다.
소설은 크게 세 가지 승부수를 가졌다. 하나는 기자의 말 없이 오롯이 인터뷰이들의 답변 만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에 있다. 주변인 여럿에 이어 마침내 당사자인 시로노 미키의 이야기가 풀려나오고서야 독자는 살인사건을 둘러싼 진상을 이해하게 된다. 두 번째는 살인사건의 진범이 검거된 사실이 공개된 뒤에 나온다. 줄글로 풀어진 소설이 어느순간 부록이란 이름으로 트위터 트윗과 같은 형식의 일본형 커뮤니티 게시글로 이어진다. 사건을 추적한 기자가 직접 올린 글과 그에 대한 반응들이 꼭 그 양식대로 이어지는 가운데, 앞서 질문조차 등장하지 않았던 그의 인간성과 취재방식이 독자에게 충격을 던진다.
마지막은 이 소설의 가장 주된 장치가 된다. 작중 화자이자 이야기를 매조지하는 듯 보인 시로노 미키의 증언조차 왜곡되고 불완전 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시로노 미키가 불만을 드러내는 제 대학교 동창의 이야기와 그 의도는 그녀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다른 누구보다 시로노 미키를 위하여 증언한 이가 정작 그녀에겐 시기심 많은 못된 친구쯤으로 표현된다. 이를 가만히 짚어보자면 소설은 정말이지 모두가 불완전한 채로 타인을 쉽게 재단한다는 사실을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를 감안하자면 죽은 노리코조차 누명을 벗은 주인공 시로노 미키의 생각과는 다른 이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를 알고 나면 소설은 전혀 다른 작품으로 읽힌다.
같은 줄거리, 전혀 다른 작품
겉으로 보면 같은 줄거리의 영화지만 <백설공주 살인사건>은 소설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감독 나카무라 요시히로의 철저한 구상에 따른 것이다. 소설과 달리 영화는 그 매체적 특성상 취재하는 PD의 모습을 감추기가 쉽지 않다. 응답하는 이의 답변만으로 모든 신을 구성한대도, 소설의 두 번째 승부수가 되는 기자의 커뮤니티 게시글을 영상화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리하여 영화는 처음부터 PD의 존재를 감추지 않는다. 그의 천박한 성향부터, 취재를 진행하는 방식까지를 하나하나 그대로 내보인다.
세 번째 승부수인 모두가 거짓말을 한다는, 심지어 당사자인 시로노 미키조차 거짓을 전한다는 설정 또한 거부한다. 대신 시로노 미키와 그녀의 초등학교 동창 간의 우정을 강조하여 원작에 없던 결말을 추가한다. 그녀와 동창이 어린 시절 멀리 떨어진 두 집 제 방에서 각기 촛불을 켜고 보내던 신호를 모든 일이 해소된 뒤 재현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를 통하여 원작 소설에선 끝끝내 무엇도 확신할 수 없던 것이 우정의 복원과 신뢰의 회복이란 명확한 주제의식으로 뒤바뀌는 것이다. 심지어 시로노 미키가 제 고향을 찾은 PD와 우연히 마주치는 장면까지 삽입하여 천박한 언론과 그에 의해 위기에 빠졌던 선한 피해자의 구도를 확인케 한다. 일종의 권선징악적 효과를 거두는 장치다.
한편으로 영화 <백설공주 살인사건>은 저널리즘이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되짚게 한다. 계약직 PD의 자극적 취재와 그를 보도한 프로그램의 성의 없는 사과, 심지어 당사자를 마주하고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마지막 장면은 언론이 얼마만큼 저열해질 수 있는지 그 양상과 정도를 내보인다. PD가 제가 진행한 취재와 맞지 않는 보도를 거리낌 없이 내어놓고, 제 기사와 그것이 미치는 파급을 저열하게 즐기며, 어떠한 책임도 회피하는 모습은 아무리 너그럽게 보아도 저널리즘에 입각한 것이 못된다. 한편으로 사실을 검증하지 않고 자극적인 내용만을 부각해 보도하는 언론사는 어쩌면 PD 개인보다도 비겁하고 못됐다. 일본 뿐 아니라 한국 언론현실 가운데서도 이와 같은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는 건 오늘 한국의 관객에게 영화가 소구력을 발하는 이유가 된다.
<백설공주 살인사건>은 그 줄거리에 있어 소설과 영화가 대체로 같은 모양을 가졌으나, 결정적 승부수가 극명히 대비되는 별개의 작품이다. 감독은 소설과 영화의 매체적 차이를 고려해 독자의 사고를 적극 의도한 열린 결말을 두 인물의 우정을 강조하고 저널리즘의 폐해를 지적하는 선명한 작품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를 통해 원작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형식적으로는 전혀 다른 영화가 되었단 점을 주목할 만하다. 요컨대 소설과 영화 모두 그 작가들은 진정 작가라 불릴만한 이라는 걸 확인케 한다. 같은 이야기로도 다른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같은 메시지라도 다른 승부수를 가질 수 있다. 원작과 미디어믹스된 결과물을 함께 접하는 건 그를 알아보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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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