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장면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윌라(체이스 인피니티)는 밥의 과잉보호 속에서 자란다. 그녀는 자유를 갈망하지만, 아버지는 늘 '세상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 말은 사랑이자 억압이다. 밥은 딸을 지키려 하지만, 그 방식이 너무 절박해서 오히려 딸을 질식시킨다. 윌라는 아버지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벗어나고 싶다. 사랑은 언제나 양날의 검이다. 보호는 곧 구속이 되고, 애정은 곧 부담이 된다. 윌라에게 아빠는 귀찮은 사람이고, 약에 찌든 골칫덩이였다. 아빠의 못난 행동 속에서 딸에 대한 온전한 사랑을 찾기는 사실 어려웠다.
영화는 윌라가 납치되어 끔찍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그녀가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록조의 세계는 냉혹하고, 그녀가 믿어온 '자유'의 세상은 생각보다 잔인하다. 그 속에서 윌라는 자신이 어릴 적 외면했던 아버지의 고통을 본다. 진짜 혁명은 총 대신 딸을 품는 일이었음을, 사랑은 단지 감정이 아니라 생존의 의지였음을 깨닫는다. 약에 찌든 아빠였지만 그건 아빠가 가지고 있던 큰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에 펼쳐지는 도로 추격신이다. 구불구불한 길 위, 한 차량이 그녀를 따라온다. 윌라는 앞으로 나아가지만, 오르막을 갔다 다시 내려간다. 누가 따라오는 건지,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 가운데, 따라오는 존재가 도로의 모양에 따라 보였다가 보이지 않는다. 모든 추격이 끝나고 아빠와 다시 재회하는 그 순간, 그녀는 진짜 혁명을 만난다. 그렇게 진짜 사랑을 확인한다. 그 뒤에 그녀의 얼굴에 떠오르는 건 두려움이 아니라 확신이다. 자신을 쫓는 게 누구든, 이제는 도망치지 않겠다는 결심. 그 순간 윌라는 아버지의 불씨를 이어받는다. 그녀의 사랑은 더 이상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세대를 잇는 혁명의 또 다른 형태다.
가장 오락적인 사회 비판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폴 토마스 앤더슨이 지금까지 보여준 어떤 영화보다도 오락적이고 직관적이다. 동시에 가장 사회적이고 철학적인 영화다. 그는 이 작품에서 혁명과 가족, 욕망과 보호, 이상과 현실의 경계를 한데 엮는다. 영화는 거대한 정치 서사로 출발하지만, 결국엔 사랑과 상실이라는 인간적 이야기로 귀결된다.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된 영상은 압도적이다. 거대한 스크린 위에서 폭발의 순간마다 관객의 심장은 실제로 진동한다. 음악은 그 감정을 섬세히 따라간다. 피아노의 단조 리듬은 긴장감을 조율하고, 관객의 심박수를 스토리와 함께 흔든다. 그 사운드는 혁명의 북소리이자 인간 심장의 리듬이다.
연기 면에서는 디카프리오의 절제된 불안이 인상적이다. 그는 고통을 외치지 않는다. 대신 작은 눈빛과 주름 속에서 상실의 무게를 전달한다. 미완의 인간처럼 때론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지만, 그의 진심은 변하지 않는다. 숀 펜은 그와 정반대다. 록조는 폭발적인 욕망의 화신이고, 숀 펜은 그 불안을 거의 광기에 가까운 리얼리즘으로 표현한다. 두 배우의 대비는 영화 전체의 긴장을 유지시킨다. 그리고 체이스 인피니티의 윌라는 그 둘의 중간 지점에서 완벽히 성장한다. 그녀는 상처와 사랑을 동시에 체화한, 새로운 세대의 얼굴이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 상영관을 많이 확보하지 못한 건 안타깝다. 오락성과 철학성을 동시에 가진 작품이 흔치 않은데, 이 영화는 그 균형을 기적처럼 이뤄냈다. 단순한 정치 영화도, 단순한 가족 드라마도 아니다. 그것은 '삶이란 연속된 투쟁의 역사'라는 명제를 스크린 위에 시각화한 대서사다.
결국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우리에게 질문을 남긴다. "당신은 지금 어떤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가?". 누군가의 혁명이 실패로 끝났다면, 그 불씨는 당신의 삶에서 어떻게 다시 피어날 것인가. 삶은 한 번의 승리가 아니라, 이름 모를 수많은 전투들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전투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단 하나의 것은, 결국 '사랑'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여러 영화와 시리즈가 담고 있는 감정과 생각을 전달합니다.
브런치 스토리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영화에 대한 생각을 전달하고 있어요.
제가 쓰는 영화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저의 레빗구미 영화이야기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더 많은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같이 영화가 전달하는 감정과 생각을 나눠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