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지랄염병으로 예술에 이르겠단 무모한 도전
영화는 이쯤에서 끝나지 않는다. 본 줄기가 되는 앞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한편으로, 자신이 영화감독이라 말하는 한 사내가 AI 기술을 적극 활용해 드라큘라에 얽힌 온갖 이야기를 십여 장으로 구분해 풀어낸다. 원치 않게 내연녀를 제가 모는 차 안에서 살해하는 어느 남자의 이야기가 있고, 직원들의 노동을 의미 없게 만들고 마침내 그 모두를 학살하는 악덕 사용자의 사례가 있으며, 어느 외딴 마을의 귀족 여성을 음모로부터 지켜내는 어느 학자의 모험도 있다. 하나하나가 드라큘라의 신화적, 또 전설적인 상징들을 새롭게 재조립해 빚어낸 것들로, 그 성격과 형식 모두가 제각각 파격적이고 실험적이다. 도널드 트럼프와 기술 독재, 블라디미르 푸틴과 전쟁, 영화예술과 문학의 고전과 현재적 지위, 대중문화적 소재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마치 드라큘라가 루마니아에 실재하는 인물과 역사로부터 출발했으나 그 활용은 서구 작가며 산업에 의해 제멋대로 활용되듯이, 라두 주데의 영화 속 수많은 이야기 또한 드라큘라가 어디까지 가지를 뻗어나갈 수 있는지 실험하는 장처럼 활용된다. 이빨을 박고 남의 피를 빨아들이는 건 자본주의 체제 아래 사용자와 노동자의 상징이 될 수 있을까. 자본을 넘어서 성별이라거나 계급, 심지어는 도덕과 가치의 이야기로까지 전환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라두 주데는 이를 그저 문학적 상징으로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전쟁과 과학 등 세계사적으로 실재하는 주제들을 전 지구적으로, 또 루마니아와 지역 문화권에 한정해서까지 적극적으로 비유하고 또 허물어간다.
다분히 유쾌하고 가벼운 이 영화는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세계사와 문화사, 또 문화예술의 견지에선 더없이 진지한 작품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수많은 죽음과 폭력, 심지어 남성과 여성의 성기며 성행위까지 적나라하게, 또 어처구니없이 등장하는 순간들이 혹자에겐 불쾌감이며 불편함을 자아낼 수도 있을 테다. 그러나 정형화된 예술, 재미며 아름다움 등 미학적 덕목을 추구하는 일련의 작품만이 영화가 이를 수 있는 유효한 표현법은 아니다.
라두 주데는 장난스러우면서도 진지하고, 코믹하면서도 뼈를 강타하는 영화를 찍어냈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려 170분에 이르는 긴 러닝타임을 서로 직접 관계하지 않는 수많은 곁가지와 본줄기의 교차적 결합으로 다루었으며, 그 표현법에서도 관객을 부정적으로 자극하고 도발하기를 피하지 않는다.
▲부산국제영화제포스터
부산국제영화제
무엇이 중한가를 되묻게 된다
이 영화의 출발은 다분히 우연적이었다 해도 좋겠다. 루마니아 국립영화센터(CNC)에서 연달아 제작지원에 떨어진 라두 주데가 루마니아에선 결코 무시되지 않는 '드라큘라 영화도 있는데'라고 허풍을 떤 것이다. 장난에서 시작한 작업이 진지한 프로젝트로 이어지고, 그 사이 그의 또 다른 작품들은 루마니아, 동유럽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가 그의 이름을 영화예술 가장 앞단에 적게 할 만큼의 성취를 가져왔던 일이다. 그렇게 드라큘라는 거장의 숙명적 작업이란 기대를 받았고, 또 그것이 완전히 틀린 평가도 아니어서 관객은 마치 퇴근 길 숭악한 뱀파이어를 마주하듯 경악하여 극장 좌석을 박차고 일어났다 앉기를 반복하고 만다.
라두 주데는 정말 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묻는다. 잔인하고 불쾌하며 외설스럽고 폭력적인 드라큘라 소동극들 가운데서 분명히 두드러지는 건 괴물의 만행이 아니다. 점잖은 인류가 동시대 지구에서 벌이고 있는 범죄극이다. 또한 인류를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기술문명이다. 이를 알면서도 엔터테인먼트처럼 소비하기만 하는 대중들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제도로 기능하는 구분과 압제, 착취들이다. 그 모두를 보고도 고작 남녀의 교합이나 드라큘라의 흡혈쯤은 불쾌하다 하는 이가 있는가, 라두 주데가 묻고자 하는 것이 이러한 물음이라고 믿는다.
이토록 전위적이며 혁신적이고 유효한 영화를 한국인이 끝끝내 볼 수 없으리란 건 참담하기까지 하다. 올해 부국제에서 수입배급이 확정된 일군의 영화들과 라두 주데와 같은 작가의 작품 사이엔 간극이 너무나도 뚜렷하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동시대성 있는 이야기가 없는 듯 취급되는 현실에 대해 한국 관객들은 보다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텃밭을 탓하지 않는 농부의 자세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빈곤을 오늘의 영화예술계가 현격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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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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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의 비극, 인류의 오늘과 꼭 닮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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