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들 무렵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말기암 아버지 간병 떠맡은 단역배우의 고충
철택에게도 기댈 곳이 아예 없지는 않다. 철택의 딸인 정미가 하루아침에 그를 간병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저 말고는 손 벌릴 곳이 마뜩찮은 아버지를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때문이다. 그러나 저라고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 정미는 벌써 수년 째 단역만을 전전하는 무명 배우인 것이다. 돈이 없기로는 철택이나 정미나 거기서 거기라서, 둘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여기저기 돈을 꾸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일찌감치 철택과 갈라서 혼자가 된 현숙이지만 그녀라고 마음이 편하지 않다. 엄마 옥남의 구순잔치에 즈음하여 오빠와 누나들이 모두 현숙에게 옥남을 맡으라 떠미는 때문이다. 요양원은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못하다며 혼자 살 바에 엄마와 함께 지내면 오죽 좋으냔 게 형제들의 주장이다. 혼자 사는 삶에도 고충이며 계획이 있지만, 미리 입을 맞춘 듯이 몰아치는 형제들에겐 당해낼 재간이 없다. 어찌저찌 구순 잔치 준비를 전담하는 것으로 그를 갈음해보려 하지만 현숙의 상황 또한 제 마음과는 영 달리 돌아간다.
여기에 더하여 옥남의 이야기가 깊이를 더한다. 모두가 이제는 떠맡아야 할 짐짝처럼 여기는 노인의 삶이야말로 다른 누구보다 치열하고 버거운 것이었음을 알도록 한다. 일제강점기의 배고픔과 강제노역, 학살과 군부독재, 그에 맞서는 민주화운동의 파고가 옥남의 목소리로 차분하게 풀려 나온다. 어느 자식도 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여기저기 밀어만 대는 현실이지만, 그녀야 말로 온 힘을 다해서 제 삶과 맞서 살아온 인물이란 걸 관객은 알게 된다. 그녀의 아들딸, 사위와 외손녀가 각자의 어려움에 휩쓸리며 살아가듯이, 옥남 또한 그와 같은 여정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걸을 것이다.
▲철들 무렵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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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게 무엇인지를 누가 안다 말할까
정승오 감독은 간병과 돌봄, 또 가족행사라는 계기를 통하여 파편화 된 작은 가족을 대가족 집단으로 복원해낸다. 대가족의 구도 안에서 좀처럼 드러날 일 없던 서로 다른 세대와 자본계급의 충돌, 또 어우러짐이 빚어진다. 인간의 본래적이며 본질적인 욕구와 고난 또한 표면 위로 떠오른다. 나이는 먹었으나 여전히 누구도 제 삶을 제대로 안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 영화 속 인물 뿐 아니라, 영화 밖 관객 또한 마찬가지일 테다. 평생을 한 길만 보고 내달린 인생에서 잘못 살았구나 후회하는 이가 수두룩 빽빽이다.
잘 살고 못 사는 일이 어디서 어떻게 갈라지는지 정의내리기는 어렵다. 서로 다른 나이와 처지의 여러 인물이 제각기 제 인생과 마주하는 동안, 관객은 '인간이란 끝끝내 철이 들지 않는 건 아닐까'를 의심하게 된다. 철이 든다는 것, 삶을 제대로 살아간다는 건 무얼 말함인가. 우리는 우리의 삶을 잘 살아내고 있는 것일까.
<철들 무렵>은 개인적 과업을 풀어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각자가 마주한 고난은 모두 한국사회의 문제와 얼마쯤 닿아 있는 때문이다. 간병과 돌봄에 대한 부담을 마치 러시안 룰렛처럼 탄창을 돌려 정하는 일이 한국사회엔 대체 얼마나 많은가. 그저 운이 있고 없다는 이유로 누구는 삶이 파탄에 이르고, 다른 누구는 안온함을 누린다. 그 부조리함 가운데서 사회적 책임이, 또 공동체와 가족의 역할이 분명히 있을 것인데도, 우리는 그를 표면 위로 끌어올려 솔직한 고충을 나누는 일이 드물다. 영화 속 인물들이 하나 같이 그러하듯.
▲부산국제영화제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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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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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국제 2관왕 '철들 무렵', 모두가 칭찬하는 이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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