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마귀> 스틸컷
넷플릭스
최선을 다한 패배와 존중
독고가 선택한 최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MK Ent.의 개국공신이었으나, 민규에게 품은 열등감을 이기지 못해 결투를 신청했다가 패배한 뒤 은퇴한 베테랑 킬러 독고. 민규의 사후 MK Ent.를 장악한 그는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하려 한다. 실력이 너무나도 뛰어난 사마귀와 벤자민의 후원을 받아 새 기획사를 차린 재이를 모두 죽이려는 것. 이에 세 주인공은 한데 얽혀 칼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때도 한울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처음에는 독고와의 개인적인 인연을 핑계 삼아 적당히 힘을 빼고 결투에 임한다. 재이가 위기에 처한 결투 중반부터는 아껴둔 힘을 꺼내지만, 최선을 다하지는 않는다. 독고가 무력해질 수준까지만 그를 제압한 뒤, 일전에 민규가 독고에게 제안했듯이 다시 한번 은퇴를 권유한다. 독고가 은퇴 제안을 거부하자 그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겠다면서 넌더리를 내기도 한다.
재이는 다르다. 그녀는 거침없이 독고의 배에 칼을 꽂는다. 목숨을 건 결투에서 킬러답게, 명예롭게 죽을 기회를 준다. 독고는 그녀에게 화를 내거나, 그녀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재이가 준 기회를 떳떳하게, 의연하게, 또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생을 마감한다. 승자의 여유와 어설픈 배려가 오히려 인격적인 굴욕과 모욕이라는 사실을 독고와 재이는 알았기에 가능한 최후다.
바로 이 지점에서 스핀오프 작품으로서 <사마귀>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제2의 차민규, 길복순, 사마귀를 꿈꾸지만, 그들처럼 되지 못한 킬러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며 세계관에 폭을 넓혔으니까. 이에 더해 필연적으로 패자일 수밖에 없는 킬러들을 통해 1%의 천재가 아닌 99%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 것도 인상적이다. 특정 능력의 유무에 따른 양극화가 극심한 현대 사회의 현황을 짚어내며 시리즈에 깊이를 더했기 때문이다.
왜 칼이 있는데 쓰지를 못하니
문제는 <사마귀>의 구조다. 확실한 특장점이 있는데도 이를 활용하지 못한다. 영화가 의도한 메시지는 명확하다. 전작이 회사에 소속된 샐러리맨으로서 킬러의 비애를 다뤘다면, 스핀오프는 청년 세대의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취업이나 창업도 어렵고, 무엇 하나 확실한 게 없는 혼란스러운 환경에서 막 사회에 발 내딛는 이들이 방황하고 상처받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목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한울과 재이의 관계를 발전시켜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주제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확장하는 구조를 짜야 한다. 그런데 <사마귀>의 구조는 정반대다. 주인공들의 처지를 파악하거나 공감하기도 전에 그들이 취업과 창업의 갈림길에서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있는지를 늘어놓는다. 그러다 보니 한울과 재이의 서사는 중요성에 비해 밋밋하다. 시의적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캐릭터 설정만 보더라도 칼이 있어도 쓰지를 못하는 아이러니를 엿볼 수 있다. 애초에 사마귀는 주인공 감이 아니다. 타고난 천재이자 업계 1위 킬러로 설정된 이상, 그가 아무리 어려움을 겪고 고뇌에 빠졌다 해도 일반적인 청년의 고통을 공유하는 인물로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차라리 열등감에 발버둥 치는 재이가 감정적으로 이입하기 더 쉽다. 이처럼 주인공을 잘못 선정했으니, 한울이와 재이의 관계에도 재미가 붙기는 어렵다.
심지어 사마귀를 보여주는 방식도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다. 고급 차를 끌고 다니며, 파란 조명의 클럽에서 허세를 부리고,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인물. 이러한 묘사는 킬러들의 세계를 다루는 영화들에서 보이는 묘한 기시감만 짙게 만들 뿐이다. 결국 가장 쿨하고 트렌디하게 사마귀라는 인물을 소개하려는 의도와는 정반대로, <사마귀>는 가장 뻔한 방식으로 주인공을 그려내고 만다.
▲영화 <사마귀>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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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의 아성은 넘지 못하다
이에 더해 악역인 벤자민을 횔용하는 방식도 어설프다. 그는 능력주의 사회의 승자가 지닌 오만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재능의 유무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고, 그들을 사업 확장의 도구로만 대하며, 그 과정에서 상대방이 느낄 모욕감은 고려하지 않는다. 재이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고에게 목숨을 건 승부를 청하거나, 자기 회사 소속 킬러를 재이의 실력을 테스트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식이다.
그런데 정작 <사마귀>는 벤자민의 오만함과 무신경함이 아닌 잔인함만을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그는 성공한 IT 회사 CEO가 알고 보니 사이코패스 범죄자라는 클리셰에 갇혀 버린다. 더 나아가 그가 짜놓은 판 위에서 움직이는 한울과 재이의 감정선도 약화한다. 벤자민이라는 악역의 의미가 모호해지니, 그에게 놀아나는 주인공의 서사도 덩달아 의미를 잃는 것. 그 결과 <사마귀>의 의도와 메시지 또한 초점을 잃고 흐려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액션의 만족도도 낮으니 <사마귀> 단점은 더 눈에 잘 띈다. 전작인 <길복순>은 호불호가 갈려도 화려한 액션 시퀀스만큼은 호평받았다. 특히 차민규와의 대결에서 이기기 위해 길복이 온갖 수를 계산하는 과정을 파노라마로 보여준 연출만큼은 신선했다. 비록 자세히 뜯어보면 가이 리치나 매튜 본 감독의 연출에 비해 미흡한 장면도 있었지만,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설정과 연출이었기에 더 인상적이었다.
반면에 <사마귀>의 액션 연출은 특색이 없다. 사마귀와 독고가 각각 낫과 톤파를 사용하는 콘셉트는 독특하지만, 이를 유달리 강조한 연출은 보기 어렵다. 또 액션의 분량 자체가 적다 보니 역동적인 구도나 준수한 타격감도 빛을 보지 못한다. 그 결과 <사마귀>는 <길복순> 선배의 아성을 넘지 못한 스핀오프로 막을 내린다. 이야기의 재미가 제대로 안 전해지는 가운데, 의도도 모호해지고, 눈도 딱히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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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종교학 및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영화와 드라마를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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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이 있는데 왜 쓰지 못하니? '사마귀'가 넘지 못한 장르적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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