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쩔수가없다> 장면
CJ ENM
만수와 미리의 고군분투는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영화 속 그들이 겪는 비극은 우리 사회에서 무수히 반복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대체로 알지 못한다. 혹은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기계의 등장, 인터넷의 도래, 스마트폰의 확산. 우리는 늘 편리함의 기억만을 간직했을 뿐, 그 과정에서 사라져간 노동자들의 삶에는 무관심했다.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때 무슨 일이 있었다고 추정할 뿐, 대부분은 관심없이 현생에 집중한다.
영화는 이 무관심을 집요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마지막에 묻는다. 언젠가 당신이 그 자리에 선다면, 사회는 당신의 절박한 외침을 들어줄 것인가? 우리는 그 질문 앞에서 답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은 그런 상황에 놓이지 않을 것이고, 단지 소비자로서 편리한 기술을 사용하면서 개개인의 삶은 나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과연 누가 만수 같은 노동자에게 신경을 쓰게 될까. 여전히 우리는 그 무관심의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박찬욱이 전하는 서늘한 사회의 단면
박찬욱 감독은 이번에도 불편한 사회적 진실을 예리하게 끄집어낸다. 노동자끼리 서로를 제거하며 생존을 꾀하는 설정은 냉혹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처한 현실을 거울처럼 비춘다. 기술 발전으로 사라지는 직업군의 절망은 영화적 장치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사회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만수가 중얼거리는 '어쩔수가없다'는 말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폭력에 맞닥뜨린 개인의 절규로 다가온다.
연기 또한 탁월하다. 이병헌은 절박함과 광기, 그리고 겉으로 웃으며 내부가 무너지는 인간의 모습을 섬세하게 구현했다. 손예진은 초조하지만 굳세고, 사랑하지만 현실적인 미리의 내면을 깊이 있게 표현했다. 이성민과 차승원, 그리고 범모의 아내를 연기한 염혜란의 존재감 역시 인상적이었다. 특히 염혜란은 평소에 보여주지 못했던 관능적인 얼굴을 보여주면서, 영화의 무게를 한층 더 깊게 만들었다.
촬영과 미장센 역시 주목할 만하다. 햇빛이 만수의 얼굴을 집요하게 비추는 장치는 사회적 변화라는 거대한 자연현상을 은유한다.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빛, 그러나 잠시 아들이 아버지의 얼굴 위 햇빛을 가려주는 순간은 가족이라는 작은 울타리가 어떻게 삶을 지탱할 수 있는지를 상징한다. 이는 영화가 단순히 절망만을 말하지 않고, 그 속에서도 미약한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시선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물론 영화는 무겁고, 불편하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 때문에 우리는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무관심 속에 사라져간 수많은 노동자들, 그리고 언젠가 그 자리에 설지도 모를 우리 자신의 얼굴을. 사회는 늘 변화를 맞이했지만, 그 변화의 대가를 누가 치렀는지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었던가.
박찬욱은 이번 영화로 다시금 묻는다.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일까? 혹은 다른 길은 없었을까?' 이 질문은 단지 만수에게 던져진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전해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가슴 속에 남는다.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노동자 개인의 절박함, 가족의 초조함, 사회의 무관심이라는 세 축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본질을 집요하게 드러낸다. 편리함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가, 동시에 얼마나 많은 것을 외면하며 살아왔는지를 묻는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떠한가. 언젠가 자신이 만수의 자리에 선다면, 과연 '어쩔수없다'는 말로 모든 것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길을 찾기 위해 발버둥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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