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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SBS 살린 '40대 아재들'

[드라마 보는 아재] 40대 친구 4인방의 이야기를 그린 <신사의 품격>

25.09.29 11:54최종업데이트25.09.2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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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드라마가 크게 위축된 현재의 기준에서 보면 아주 먼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같은 글로벌 OTT 서비스는 그 개념조차 모호했다. 여기에 케이블이나 종편에서도 드라마에 많은 제작비를 투입하던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주로 지상파를 통해 드라마를 소비했고 이 때문에 최고 시청률 20%를 넘긴 인기 드라마가 꾸준히 등장했다.

KBS는 2012년 주말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과 <내 딸 서영이>로 시청률 40%의 벽을 넘었고 허영만 만화 원작의 <각시탈>과 1TV의 일일드라마 <별도 달도 따줄게>,<힘내요, 미스터 김!>도 각각 시청률 20%를 가볍게 돌파했다. MBC에서도 연초 신드롬을 일으켰던 <해를 품은 달>을 시작으로 일일드라마 <오자룡이 간다>, 주말드라마 <메이퀸>, 메디컬 사극 <마의> 등이 시청률 20%를 넘겼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드라마에서 강세를 보였던 SBS는 2012년 <샐러리맨 초한지>와 <추적자 THE CHASER>를 제외하면 인기 드라마를 배출하지 못했다. 그렇게 우울 한 해를 보내던 시기, 최고 시청률 24.4%를 기록하며 SBS 드라마의 자존심을 지켜준 작품이 있었다(닐슨코리아 시청률 기준). <시크릿가든>을 집필했던 김은숙 작가의 신작이자 장동건이 12년 만에 출연한 드라마 <신사의 품격>이었다.

 <신사의 품격>은 최고 시청률 24.4%를 기록하며 부진했던 2012년 SBS 드라마의 체면을 세웠다.
<신사의 품격>은 최고 시청률 24.4%를 기록하며 부진했던 2012년 SBS 드라마의 체면을 세웠다.<신사의 품격> 홈페이지

'중년' 장동건이 12년 만에 선택한 드라마

1992년 김원희, 박주미 등과 함께 MBC 공채 21기 탤런트로 데뷔한 장동건은 데뷔와 동시에 캠퍼스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2>에서 주연을 맡으며 단숨에 청춘 스타로 떠올랐다. 1993년 <일지매>에 출연한 장동건은 1994년 초 인기드라마 <마지막 승부>에서 재수 끝에 특기생이 아닌 일반 전형으로 대학에 들어가 한영대 농구부를 농구대잔치 우승으로 이끄는 윤철준 역을 맡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장동건은 1997년 <의가형제>와 <모델>, 1998년 <사랑>, 2000년 <이브의 모든 것> 등을 높은 시청률로 이끌며 최고의 스타배우로 군림했다. 하지만 장동건은 드라마의 인기에 비해 영화에서 상대적으로 힘을 쓰지 못했고 2000년대부터 영화 활동에 주력했다. 그 결과 2001년에 출연한 <친구>가 <쉬리>, <공동경비구역JSA>를 제치고 한국영화 최다 관객 신기록을 세우며 영화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그리고 장동건은 2004년 원빈과 함께 한국전쟁 배경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 출연해 전국 1174만 관객을 동원하며 또 한 번 한국영화 최고 흥행기록을 갈아 치웠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하지만 장동건은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태풍>과 <무극>, <굿모닝 프레지던트>, <워리어스 웨이>, <마이 웨이> 등 주연을 맡은 영화들이 차례로 기대한 만큼 높은 흥행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그렇게 '왕년에 대단했던' 스타 배우로 전성기가 지난 듯 했던 장동건은 2012년 <신사의 품격>을 통해 <이브의 모든 것> 이후 12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했다. 오랜 친구 사이로 출연한 김민종, 김수로, 이종혁은 물론이고 상대역이었던 김하늘과도 뛰어난 연기 호흡을 보여준 장동건은 <신사의 품격>을 최고 시청률 24.4%로 이끌면서 그 해 SBS 연기대상에서 10대 스타상과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건재를 보여줬다.

<산사의 품격> 이후 다시 영화 활동에 전념한 장동건은 <우는 남자>와 <브이아이피>, <7년의 밤>, <창궐>이 차례로 흥행에 실패했다. <미생>과 <시그널>, <나의 아저씨>의 김원석 감독이 연출한 대작 <아스달 연대기>, <아라문의 검> 역시 높았던 기대에 비하면 결과가 썩 좋지 않았다. 작년 허진호 감독의 <보통의 가족>에 출연한 장동건은 우도환, 이혜리와 범죄 스릴러 영화 <열대야> 촬영을 마쳤다.

40대까지 친분을 유지하는 네 친구의 이야기

 <신사의 품격>은 특정 주인공이 아닌 네 친구의 이야기를 고루 배분하는 진행으로 호평을 받았다.
<신사의 품격>은 특정 주인공이 아닌 네 친구의 이야기를 고루 배분하는 진행으로 호평을 받았다.SBS 화면 캡처

김은숙 작가는 <파리의 연인>을 시작으로 <시크릿 가든>, <태양의 후예>,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더 글로리> 등 다수의 히트작을 집필한 현존하는 최고의 스타 작가다. 뛰어나고 감각적인 필력도 대단하지만 김은숙 작가의 최대 장점 중 하나는 바로 부지런함이다. 실제로 김은숙 작가는 2004년 <파리의 연인>부터 2013년 <상속자들>까지 10년 동안 무려 8편의 드라마 각본을 쓰는 성실함을 보여줬다.

<신사의 품격>은 2011년1월에 종영한 <시크릿 가든> 이후 1년4개월 만에 선보인 김은숙 작가의 신작이다. 물론 <신사의 품격>은 최고 시청률 24.4%로 김은숙 작가의 2010년대 지상파 대표작이었던 <시크릿 가든>(35.2%), <태양의 후예>(38.8%)보다 상대적으로 시청률이 낮았다. 하지만 <신사의 품격>은 동 시간대에 경쟁한 MBC의 <닥터진>을 여유 있게 제치며 부진했던 2012년 SBS 드라마의 체면을 세웠다.

사람들은 흔히 '학창 시절 친구들이 평생 간다'고 이야기하지만 사회생활과 결혼 등 각자 여러 이유들로 인해 학창 시절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을 중년 이후까지 꾸준히 만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신사의 품격>에 나오는 네 주인공은 고등학교 때 만나 불혹의 나이까지 20년 넘게 단짝 친구로 지낸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대부분의 드라마들은 주인공 중심으로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조연들의 이야기는 드라마 중·후반으로 넘어가면서 뒷전으로 밀리는 경우가 많다. <신사의 품격> 역시 중반 이후 '콜린(이종현 분)의 생부찾기'가 전면에 등장하며 시청자들을 집중 시킨다. 하지만 김은숙 작가는 김도진(장동건 분)과 서이수(김하늘 분)의 이야기 뿐 아니라 네 명의 친구들 이야기를 적절히 분배하며 방영 기간 내내 꾸준한 재미를 유지했다.

연초에 방송된 <샐러리맨 초한지>가 스토리와 큰 관련이 없는 에필로그 영상으로 웃음을 줬다면 <신사의 품격>에서는 드라마 시작에 앞서 프롤로그 영상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선사했다. 나이를 속이고 클럽에 간 네 친구가 고등학교 동창의 딸을 만나기도 하고 김도진이 고교 시절 선생님(김광규 카메오 출연)으로부터 "니 부산에서 내 본 적 없나?"라는 소리를 듣는 식의 에피소드다.

'거리'를 소유하고 있는 차원이 다른 부자

 김정난은 건물이 아닌 ''거리(street)'를 보유하고 있는 차원이 다른 부자 박민숙을 연기했다.
김정난은 건물이 아닌 ''거리(street)'를 보유하고 있는 차원이 다른 부자 박민숙을 연기했다.SBS 화면 캡처

12년 만에 출연한 드라마에서 연기가 다소 딱딱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던 장동건과 달리 김하늘은 비슷한 분의기의 로맨스물에 많이 출연했던 배우답게 서이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김하늘은 <신사의 품격>으로 SBS 연기대상 최우수상을 포함해 3개의 상을 휩쓸었다.

1990년대 가수와 배우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장동건 못지 않게 큰 사랑을 받았던 김민종은 <신사의 품격>에서 네 친구들 중 가장 공부를 잘했던 변호사 최윤 역을 맡았다. 불혹의 나이에도 꽃미모를 유지하고 있는 최윤은 아내와 사별한 후에도 꾸준히 처가를 챙기는 착한 사위다. 친구의 동생 임메아리(윤진이 분)로부터 오랜 기간 짝사랑을 받던 최윤은 무려 17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메아리와 결혼했다.

<신사의 품격>에는 멋지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이 나오지만 시청자들에게 '가장 친해지고 싶은 <신사의 품격> 캐릭터가 누구인가'라고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김정난이 연기했던 박민숙을 꼽을 것이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거리'가 있을 정도로 차원이 다른 부자인 박민숙은 주인공 4명이 모두 그녀에게 신세를 지고 있을 정도로 <신사의 품격> 세계관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매우 큰 인물이다.
덧붙이는 글 <드라마 보는 아재>는 추석 연휴로 10월6일 한 주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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