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공룡 '넷플릭스'에 버거운 한국의 미디어 생태계현재의 미디어 영상업구조, 국내 양대 OTT 플랫폼이 공룡의 몸집을 가진 넷플릭스를 버겁게 막고 있는데 더 큰 문제는 세계시장에서 이미 검증된 한국 콘텐츠의 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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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영상콘텐츠 산업의 위기를 논하며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을 해법으로 제시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상파 방송사를 비롯한 기존 미디어 기업들은 시청률 하락과 광고 투자 위축에 신음하며, 거대 자본을 앞세운 넷플릭스의 독주를 이 위기의 주범으로 지목한다. 이 논의를 어느 정도 구체성 있게 결론 내리느냐는 현재 진행 중인 새 정부의 미디어 거버넌스 개편 이슈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과연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가?
나는 지금의 논의가 '위기'와 '활성화'라는 모호한 개념에 갇혀, 엉뚱한 해법에 매달리는 것처럼 보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잘못된 인식과 잘못된 목표 아래 도출되는 어떠한 추진안도, 어떠한 미디어 거버넌스도 성공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가 지금 논하고 있는 '위기'는 무엇이며, 이 모호한 개념들을 명확히 하기 위해 어떤 단계의 논의가 필요한지 짚어보고자 한다.
'산업'의 범위를 재정의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방송사 중심의 생태계가 무너지는 현상을 전체 '산업의 위기'로 확대 해석하고 있다. 이는 넷플릭스의 등장이 가져온 변화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다. 넷플릭스는 기존의 방송사 중심 수익 모델을 흔들었을 뿐, 오히려 콘텐츠를 만드는 '제작 시장'에는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방송사가 기획과 투자를 주도하고 제작사는 외주 용역을 제공하던 과거의 수직적 구조는, 이제 OTT 플랫폼과 제작사가 대등하게 협력하거나 제작사가 직접 IP를 보유하고 유통하는 수평적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려면, '영상콘텐츠 산업'을 방송사(플랫폼/유통) 영역과 제작사(콘텐츠 창작) 영역으로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 지상파 방송사와 티빙/웨이브가 겪는 위기는 플랫폼/유통 영역의 문제다. 이들은 광고 수익 감소와 유료 가입자 확보 경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면, <오징어 게임>을 만든 싸이런픽쳐스나 <더 글로리>를 제작한 스튜디오드래곤 같은 제작사들은 넷플릭스와의 협력을 통해 오히려 막대한 자본을 투자받고, 제작 규모를 키우며, 글로벌 시장으로 직접 진출하는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그들은 더 이상 방송사의 외주비에 의존하지 않고,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 세계 시청자를 대상으로 수익을 창출한다. 결국, 위기의 주체와 원인이 명확히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논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한쪽의 위기를 전체 산업의 위기로 호도해서는 안 된다.
'활성화'의 목표를 재정립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산업의 활성화라는 목표를 내세우지만, 그 내용이 매우 모호하다. 과연 '산업 활성화'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방송사의 광고 매출 증대? 티빙과 웨이브의 유료 가입자 수 확대? 아니면 제작사의 수익 증대와 글로벌 시장 진출? 지금까지의 논의는 주로 국내 플랫폼/유통 영역의 경쟁력 강화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마치 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논하면서 엔진 기술 발전보다는 정비소의 규모 확대에만 매달리는 것과 같다.
하지만 한국 영상콘텐츠 산업의 핵심 경쟁력은 제작에 있다. 전 세계 시청자를 사로잡은 <오징어 게임> <더 글로리> 그리고 수많은 K-POP 콘텐츠들은 모두 탁월한 창의력과 제작 역량에서 나왔다. 플랫폼은 그저 콘텐츠를 담아내는 그릇일 뿐이다. 그릇의 크기를 키우는 데에만 집중하다 보면, 정작 그 안에 담길 콘텐츠의 질적 성장을 놓칠 수 있다. 오히려 독과점적 지위를 갖게 된 국내 플랫폼이 제작비 인하를 압박하거나 불공정한 계약을 강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산업 활성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창의적인 제작 생태계가 지속 가능하게 발전하는 것에 두어야 한다. 단순히 플랫폼의 규모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제작사들이 양질의 콘텐츠를 안정적으로 만들고, 그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받으며, IP를 활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IP는 콘텐츠의 생명줄이자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핵심 자산이다. 제작사가 IP를 온전히 소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창작 동기를 부여하고 장기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길이다.
논의의 단계를 전환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넷플릭스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만 갇혀 있다. 이는 마치 휴대폰 시장에서 삼성과 애플을 따라잡겠다고 자본력만 믿고 뛰어드는 것과 같다. 이 단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먼저, 방송 중심의 생태계가 해체되고 있다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는 '위기'가 아니라 산업 구조의 '재편'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다음으로, '영상콘텐츠 산업'을 플랫폼/유통 영역과 제작/창작 영역으로 나누고, 각각의 위기와 활성화 목표를 명확히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산업 활성화'의 최종 목표를 플랫폼 경쟁력 확보가 아닌,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창작 생태계 구축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이러한 단계별 논의를 거치지 않고서는, 우리의 해법은 계속해서 겉돌 수밖에 없다. IP 확보나 해외 진출 지원 같은 기존의 정책들이 충분한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도, 우리가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OTT 플랫폼 산업을 포기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같은 글로벌 공룡들과 정면으로 경쟁하는 것은 자본력 싸움이기에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드라마나 K-POP처럼 이미 세계 시장에서 높은 상품력을 입증한 콘텐츠를 무기로 삼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티빙과 웨이브가 국내 시장 수성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한류의 인기가 높은 동남아시아 같은 특정 지역에 진출해 넷플릭스와는 차별화된 전략을 펼치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구독료를 올릴 때, 우리는 낮은 가격으로 한류 콘텐츠를 무기로 해외 소비자들의 마음을 공략할 수 있다. 넷플릭스의 독점은 또 다른 시장 균열의 가능성을 높이는 기회이기도 하다.
성장통을 넘어, 'K-콘텐츠'의 길을 묻다
결론적으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는 한국 영상콘텐츠 산업이 오랜 방송 중심의 틀을 깨고 글로벌 시장을 향해 나아가는 성장통에 가깝다. 거대 자본을 내세운 넷플릭스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국내 OTT의 덩치 키우기에만 몰두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채 근시안적인 해법에만 매달리는 것과 같다. 한국 콘텐츠 산업의 진정한 활성화는 OTT 플랫폼의 규모가 아니라, 세계가 열광하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 창작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달려 있다.
한국의 콘텐츠가 강해지면 국내 OTT의 글로벌화는 훨씬 용이해진다. 지금 넷플릭스나 디즈니 같은 글로벌 OTT의 급성장 배경에도 결국 미국이라는 국가의 콘텐츠 파워가 존재하지 않았는가? 플랫폼은 강력한 콘텐츠를 기반으로만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이는 특정 기업의 생존을 넘어, 한국 콘텐츠가 글로벌 문화의 주류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여는 일이다. 지금이야말로 '위기'라는 호들갑을 멈추고, 우리의 진짜 강점을 직시하며 미래를 위한 전략적 로드맵을 그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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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