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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수단으로 쓰던 '워킹 데드', 이렇게 변하다니...

[김성호의 씨네만세 1136] AMC <워킹 데드> 시즌11

25.08.14 10:17최종업데이트25.08.14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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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내부 전면에 설치된 안내전광판을 보면 옛 생각이 떠오른다. 기자로 일하던 시절, 것도 스스로를 꽤나 역량 있는 기자라고 여기던 시절 이야기다. 기사로 크고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 일이 꽤나 즐겁게 다가왔다. 세상엔 알려지지 않은 문제가 널려 있고, 기자란 그 문제에 다가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일이라 여겼다. 법이며 조례가 만들어지는 데 영향을 주기도 했고, 각종 기관과 업체가 변화하도록 이끄는 기사도 써냈다. 진심으로 누구에게 감사를 받는 일이란 얼마나 매력적인가. 자신감 사이로 자만이 똬리를 틀고 있단 걸 그땐 미처 몰랐다.

신입으로 들어온 후배를 데리고 다니란 명령이 떨어졌다. 신입들이 각 부서를 일주일씩 도는데 사회부에선 내가 맡으란 얘기였다. 가뜩이나 바쁜 일정에 웬 짐덩이란 말인가. 자유롭게 풀어두고 기사가 될 만한 걸 가져오라 말했다.

아직 기자를 하고 있으니 A라 해야겠다. A는 신입들 가운데서도 가장 마음에 차지 않는 얘기를 들고 왔다. 경찰서처럼 정해진 기관에 박아두지 않고 며칠을 자유롭게 풀어두었는데, 기껏 가져온 것이 버스 안내전광판에 대한 것이었다. 서울시가 노후화된 버스 대신 저상버스를 전격 도입하는 와중에 전광판 자리에 광고를 실을 수 있는 TV를 설치하고 있단 이야기. 저상버스 말고도 모든 버스에 TV가 설치되고 전광판이 제거되는 작업이 순차적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기삿거리를 가져온 녀석은 TV에 안내문구가 아예 들어가지 않거나, 정차 직전에만 잠깐 떠서 불편하다고 했다. 어디서 내릴지 초행길엔 알 수 없다는 얘기다. 어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광고를 받아 재정적자를 메우려는 고육책, 가뜩이나 경영이 어려운 대중교통 운영사와 그를 지원하는 시로서는 반길 밖에 없는 일이 아닌가. 세상에 크고 심각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너는 네게 주어진 하나의 기사를 이런 일로 쓰려는 거냐. 그런 생각이 불쑥 머리를 치켜들었다. 그래, 애써 가져왔으니 취재라도 한번 해보자.

워킹 데드 스틸컷
워킹 데드스틸컷AMC

장애를 소외시키는 세상, 이대로는 안 돼!

거의 하루가 지나서야 문제를 알아챘다. 처음엔 그저 불편이었던 조치가 누군가에겐 불편을 넘어서는 문제란 걸 말이다. 우리는 보강 취재과정에서야 외국인들이 전광판이 사라지는 데 민감하단 사실을 알았다. 위성 기반 인터넷 지도 어플이 아직은 완전하지 않던 때다. 영어안내가 나오지 않는 버스에선 한국말을 모르는 이가 의지할 건 전광판뿐이었다. 그제야 청각장애인에 생각이 닿았다. 알아보니 과연 그러했다.

시와 위탁받은 운영업체, 버스회사에 이르기까지, 저상버스 도입과 TV설치 안건을 논의하는 모든 과정에서 청각장애는 고려된 적 없었다. 장애인을 포함한 교통약자가 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도입하는 저상버스에서 청각장애인이 전보다 열악한 상황에 처해져서야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이를 논의하는 모두가 나와 마찬가지로 문제를 인식조차 못하고 있었다. 장애가 맞닥뜨리는 커다란 어려움은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여서 아예 고려하지 않는단 것.

이제껏 다룬 <워킹 데드> 모두 10개의 시즌 가운데 3개 시즌에 대한 평에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했다. 하나는 가볍게 지나가듯 다루었으나, 둘은 전면적으로 이 시리즈는 물론 미디어 속 장애에 대해서까지 이야기했다. 미국에서만 5000만 명이 넘어 한국 전체 인구보다 많은 장애인이 어째서 작품 가운데선 등장하지 않는지를, 어쩌다 등장하여도 그 삶 자체가 아니라 장애를 극적으로 활용키 위한 수단으로서만 나오는지를 비판하였다. 여성과 성소수자, 흑인을 적극 또 긍정적으로 그려내는 도전적 작품들이 어째서 장애는 박대하는지를, 촬영현장에서의 어려움을 포함해 그 현실적 이유가 어떤 것인지를 또한 다루었다.

워킹 데드 스틸컷
워킹 데드스틸컷AMC

전설적 작품이 시즌을 거듭하며 몰락한 이유

그 근간엔 장애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예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무관심이 자리한다는 사실을, PC주의(Political Correctness) 경향에 따른 소수자 우대정책(아카데미시상식 작품상 후보가 되기 위한 소수자 기준 요건 등) 속에서 여성이며 성소수자, 흑인과 경쟁하고 대개 밀리기만 하는 부조리한 상황에 대해서도 말하였다. (관련 기사 : 소수자 강조한 드라마, 장애는 어디에?)

<워킹 데드>가 무려 9년 만인 시즌9에 이르러 처음으로 장애인 캐릭터에 이름을 주었단 사실 뒤엔 이러한 사연들이 깔려 있다. 그래서 코니(로런 리들로프 분)의 등장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녀의 장애가 스릴러적 연출을 극대화하는 장르적 수단으로만 활용되다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마침내는 극에서 빠졌던 일까지도 그러하다. 내가 버스 안내전광판을 보고서 청각장애인을 떠올리지 못하였듯, 장애에 무지하고 무심한 이들이 작가와 제작자, 언론과 평단, 일반 관객에 이르기까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 결과가 코니는 물론, 콘텐츠 가운데 장애가 설 자리를 앗아갔던 일이다.

<워킹 데드> 시리즈는 정점을 찍었던 시즌6를 지나 추락을 거듭한다. PC주의가 비평은 물론 대중적 반응에 있어서까지 긍정적으로 작용하던 시절엔 상승하였고, 그 반감이 누적된 뒤엔 추락했단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초창기 인기를 주도했던 좀비와의 박진감 넘치는 혈투, 그를 표현한 액션의 맛과 멋은 남성캐릭터가 하나둘 자리를 비우고 여성캐릭터들이 소위 주력 전투원의 자리를 대체하며 상당 부분 소실된다.

촬영만으론 기본적인 액션연출에 한계가 있고, 너무 많은 남성 캐릭터의 대체는 시도할 수 있는 액션연출을 제한적으로 하고 만 것이다. 지난 '씨네만세'에서 밝혔듯 여성을 적극적으로 기용해 편견을 깨는 파격적 시도에 긍정적인 필자지만, 그 결정이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초래할 밖에 없단 것도 인정할 밖에 없다.

워킹 데드 스틸컷
워킹 데드스틸컷AMC

특장점 소실된 작품의 쓸쓸한 최후

주역 가운데 다수가 여성이 되어 성별균형이 심각하게 무너진 시점부터는 수시로 액션연출에 제약이 걸린다. 이는 감안하고 시도한 선택이니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대신 작품은 단순한 상황 연출을 넘어 드라마적 재미를 강조하기 시작한다. 정치적인 문제, 관계와 가치의 이야기를 보다 적극 드러내는 것이다. 문제는 <워킹 데드>의 이 같은 시도가 꼭 성공하지만은 않았다는 데 있다. 액션을 대충 연출하다보니 좀비는 점점 더 무섭지 않아지고, 인간 사이의 이야기로 균형추가 옮겨가며 통상의 다른 드라마와 차별점 또한 사라져간다.

결정적으로 시즌을 오래 거듭하며 주연 배우가 하차하는 문제까지 빚어진다. 주인공이던 릭 그라임스(앤드류 링컨 분)가 시즌9에서 하차한 게 대표적이다.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주인공 세력의 중추인 힐톱을 이끌던 매기(로렌 코헨 분)와 지저스(톰 페인 분)도 시즌9에서 하차한다. 그 뒤 알렉산드리아를 이끌던 릭의 애인 미숀(다나이 구리라 분)도 시즌10을 마지막으로 하차한다. 이야기가 원작과 달리 나아가는 점, 그로 인한 비중과 표현의 불만족, 인기저하, 타 작품 출연결정 등 하차의 이유는 각기 다르지만 근본적으로 작품에 대한 실망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이 같은 이유로 <워킹 데드> 후반 시즌은 전반부에 벌어둔 자산을 깎아먹으며 전진한다. 각본가며 제작진이 반쯤은 포기한 듯 액션과 드라마를 대충 연출한다거나 서둘러 무리한 전환을 시도하는 대목도 한둘이 아니다. '위스퍼러'처럼 주인공 일행을 전멸시킬 수 있을 정도의 강함을 보이던 무리가 일기토를 방불케 하는 1대 1 대결 이후 와해된다거나, 마지막 시즌의 배경인 도시 커먼웰스가 멸망의 위기에 치닫는 과정까지가 지극히 작위적이며 대충 그려지는 부분 등이 그렇다.

이쯤이면 이야기를 빨리 끝내려는 게 목적이 아닌가 싶어질 만큼 무리한 연출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작품이 시즌을 거듭할 때마다 시청률과 시청자수가 반토막났으니 제작진이 12년 여의 여정을 마무리할 밖에 없었던 것이다.

워킹 데드 포스터
워킹 데드포스터AMC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할 만한 전환

그러나 바로 그러한 덕분에 나는 시리즈 뒷부분 몇 시즌을 장애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할 수 있었다. 이 드라마를 작품으로 대할 가치가 거의 소실된 때문에, 그것이 놓치고 실패한 주요한 부분에 주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코니는 마지막인 시즌11 가운데 돌아와 전보다 훨씬 나은 역할을 맡는다. 원작에선 청각장애인이 아니었던 그녀를 장애인으로 설정한 것이 그저 장애를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는 걸 시리즈의 추락 직전에야 입증해낸다.

코니는 좀비 출몰 전의 직업이었다는 기자의 역할을 커먼웰스 안에서 수행한다. 커먼웰스의 비리와 추문을 추적하는 과정에선 누구도 그녀의 장애를 지목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녀는 수화를 하는 통역사를 데리고 취재하는 기자일 뿐이다. 드디어 이 드라마가 장애를 제 세계 안에 받아들이는 순간이다.

<워킹 데드>는 미국 드라마 역사상, 특히 베이직케이블 채널 사상 손꼽는 성공작이다. 여성과 성소수자, 흑인이란 특정 요소만 집중적으로 부각했다는 비판을 할 수 있겠으나, 어찌됐든 드물 만큼 소수자를 긍정적으로 노출한 용감한 작품이다. 고정관념을 깨고서 남성보다 훨씬 많은 리더를 여성으로 그렸고, 남성보다 여성이 전투원으로 유용한 세계를 빚었다. 심지어 좀비물인데 말이다. 이런 작품도 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이 시리즈가 그 끝에서 시행착오를 거쳐 고정관념을 벗어나 장애인을 그리는 법까지 터득했단 건 긍정적으로 볼 밖에 없다. 그리하여 나는 이 드라마의 추락에도 기꺼이 박수를 보낸다.

버스 내부 전면에 설치됐던 TV를 떼는 데 상당한 비용이 소요됐다고 했다. 기 설치된 수천 대를 떼는 비용을 부담하고 TV로 얻을 수 있었던 광고비용까지 재조정해야 했던 업체는 다분히 짜증스러울 밖에 없었을 테다. 그러나 덕분에 수많은 이들이 전광판에 큼직하게 쓰이는 정류장 안내에 도움을 받았다. 그중에선 자막이 간절한 청각장애인들도 있었다. 최근 그 위치가 재조정돼 다시 전광판 자리에 달리기 시작한 TV는 그때와는 달리 하차안내를 자막으로 분명히 드러낸다. 버스에 타서 이 자리를 볼 때면 내 의식의 지평 안에 아예 존재하지 않던 이들의 존재를, 그와 같은 이가 얼마든지 더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 오만과 무지를 생각한다. 영화평론가로 일하는 동안 수시로 장애를, 작품 가운데 배제되고 소실되는 장애인들의 존재를 생각하는 건 오로지 이 덕분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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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