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발레리나> 스틸컷
판씨네마
그 반석 위에서 <발레리나>는 유려하고 화려한 액션을 선보인다. 의장과 컬트 집단에 대한 묘사와 설명을 최소화한 단순한 서사 덕분에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주인공에게 집중된다. 자연히 액션 연출에 있어서도 모든 초점이 그녀에게 집중되고 빌런들은 그저 리액션 대상으로 전락한다. 즉, 이브라는 캐릭터의 상황과 특성을 온전히 반영하면서 <발레리나>만의 개성과 장점을 꽃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셈이다.
실제로 <발레리나>는 이브가 이제 막 킬러들의 세계에 발을 내디딘 새내기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일례로 그녀는 공간과 상황을 제때 파악하지 못한 나머지 격투를 펼치기 전후로 쉽게 기습당하고 함정에 빠진다. 이는 베테랑 킬러답게 불필요한 움직임 없이 효율적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변수에 능숙하게 대처하는 존 윅과는 다른 이브만의 액션 스타일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브의 액션은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과감함'이다. < 007 노 타임 투 다이 >에서 아나 데 아르마스가 연기한 '팔로마'와도 비슷하다. 그녀는 경험 많은 존 윅이나 제임스 본드라면 생각조차 안 할 무모한 임기응변을 자주 보여준다. 레스토랑에서 기습당한 순간, 권총 손잡이에 식칼을 이어 붙여서 앞에 있는 적을 찌름과 동시에 다가오는 적을 겨냥해 쏘면서 무기와 숫자의 열세를 극복하는 대처법이 대표적이다.
수류탄 액션 시퀀스는 그 정점이다. 무기 상점에서 미처 총기를 구매하기도 전에 습격당한 그녀는 폐쇄된 실내라는 점을 적극 활용한다. 문과 벽을 방패 삼아 10여 개의 수류탄을 한 번에 투척해 적들을 제압하는 식이다. 수류탄을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한 액션 연출이 많지도 않을뿐더러, 원숙함을 갖추지 못한 초보 킬러의 막무가내 액션을 볼 수 있다 보니 이 순간의 쾌감은 <존 윅> 본편마저도 앞서는 듯하다.
액션이 만족스러울수록 상대적으로 서사의 아쉬움은 커진다. 액션에 들인 공에 비하면 전개가 지나치게 편의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발레리나>에는 눈에 잘 띄는 메타포가 있다. 바로 이브다. 하와라고도 불리는 이브는 성경에 등장하는 첫 여성이자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그의 짝이다. 천주교에서는 선악과를 먹고 신의 명령을 어긴 나머지 인간의 원죄에 책임이 있는 존재로 여겨지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발레리나>는 성경 속 이브의 이미지와는 반대되는 이미지를 극 중 이브에게 선사하려 한다. 성경에서 신은 이브에게 아담과 같이 에덴동산을 떠나고, 평생 노동과 출산에 시달려야 하는 영속적인 벌을 내린다. 이러한 신과 이브의 관계는 오히려 영화 속 의장과 그 추종자들의 관계와 유사하다. 신이 인간에게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벌을 주듯이, 그 역시 자기 명령을 어긴 추종자를 끝까지 추적해서 죽음으로써 응징한다.
반면에 극 중 이브는 성경 속 원죄를 저지른 이브와는 정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컬트 집단 내에서 신이나 다름없는 의장을 향한 복수를 꿈꾸는 그녀는 구원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다니엘 부녀에게 새로운 삶을 선사하는 그녀는 억압적인 구조로부터 다른 피해자들을 구해내는 영웅인 셈이다. 프로이트적으로 본다면 '아버지 신'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억압적인 초자아의 표상을 파괴하고 자아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주체라고 할 수도 있다.
이처럼 이브라는 이름은 해석의 여지가 큰 종교적 메타포다. 즉, 성경 속 이브에게 부여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전복하는 또 다른 이브를 일종의 아이콘으로 구상했다고 봐도 어색하지 않다. 아버지에 대한 복수와 집단에서의 탈출과 해방 서사가 렌 와이즈먼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특유의 작품세계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메타포가 의도된 상징이라는 점은 더 명확해진다.
잘라버린 '고르디우스의 매듭'
▲영화 <발레리나> 스틸컷
판씨네마
그런데 <발레리나>는 이 매력적인 메타포를 애써 무시하고 부정한다. 이브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를 비웃는 대사를 집어넣는 식으로 메타포의 함의를 억누른다. 한 마을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무장 집단이라는 것 외에는 알 수 없을 정도로 의장이 이끄는 컬트 집단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브라는 메타포가 존 윅 시리즈와의 접점을 강조하는 데 장애물이어서다.
<발레리나>는 독립된 작품으로서는 이브의 캐릭터성을 강조해야 하고, 존 윅 시리즈의 부품으로서는 존 윅과의 접점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자기모순이 노출된다. 존 윅이 이브를 도와주고 그녀의 멘토처럼 묘사되는 결정적인 장면이 많으면 많을수록 '아버지 신'이라는 표상에 도전하는 이브의 캐릭터성이 약화해서다.
이에 <발레리나>는 이브라는 상징을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취급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복잡하게 묶인 매듭을 푸는 대신 단칼에 잘라버렸듯이, <발레리나>도 메타포에 담긴 이야기는 최대한 잘라낸다. 그 대신 본편과의 접점을 최대한 강조한다. 예를 들어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도로 이브와 상대방이 서로 화염방사기를 쏘는 순간을 촬영한 장면은 < 존 윅 4 >에서 드래곤 브레스 탄을 활용해 펼쳐졌던 전투를 직접적으로 연상시킨다.
그 외의 장면도 시리즈로서의 연결고리를 부각하는 데 도움을 준다. 편마다 한 번씩은 등장한 클럽에서의 격투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예상보다 존 윅에게 할애한 비중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브와 일 대 일로 격투를 벌이는 장면에서는 이브가 대적조차 할 수 없는 압도적인 우위를 뽐내면서 그를 그리워하는 팬들에 기다림에 보답한다.
<발레리나>는 여러모로 '존 윅' 시리즈다운 스핀오프 작품으로서 관객을 만날 수 있다. 그렇기에 스핀오프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우선시한 선택도 잘못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시리즈 일부로서 몰입도를 높이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하나의 독립된 작품으로서 완결성을 갖추지 못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매듭을 잘라 버린 대가가 영화 곳곳에 흩뿌려져 있어서다. 따라서 <발레리나> 스토리텔링이 지나치게 편의적이라는 비판을 결코 피할 수 없다. 명백한 상징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는 소심함이 액션신을 구상하고 연출할 때의 과감함과 대비를 이루고, 또 강조된다. <발레리나>는 쾌감만큼 크고 진한 아쉬움을 함께 남긴다. 본편에 절대 뒤처지지 않고, 때때로 본편보다 뛰어났던 액션만큼 서사에도 공을 들였다면 더 뛰어난 작품을 만날 수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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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종교학 및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영화와 드라마를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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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한 액션 좋은데 '발레리나'에 딱 하나 아쉬운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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