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포스터
찬란
불 타며 침몰하는 자기를 향한 "축하해!"
흔히 오른 방향은 나아감이고, 왼 방향은 물러섬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이슬람을 제하고 대부분의 문화권이 글자를 가로쓰기해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읽어나가는 때문이다. 세로쓰기의 경우 좌철(책 왼쪽을 묶음)이 아닌 우철이 원칙이고, 일본은 우철해 세로읽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는 하지만, 가로쓰기의 경우엔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읽어나가는 게 일반적이다. 그로부터 사람들은 흔히 왼편이 시작이고 오른편으로 나아감을 자연스레 여긴다. 영상 문법 또한 이를 기준으로 짜이게 마련인데, 영화 속 렌코가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달릴 때 우리는 어딘지 퇴행적이며 도망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소마이 신지가 대부분의 달리기를 이처럼 연출한 데 분명한 의도가 있다 봐야하는 이유다.
영화 내내 도망치던 렌코, 그러나 아이는 마침내 현실과 마주할 밖에 없다. 아이뿐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모든 재난으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는 일이다. 렌코도 마침내 그 사실을 깨닫는다. 영화 후반부 축제신, 또 이어진 긴 방황과 초현실적 전환, 그리고 반복되는 소녀의 외침은 <이사>를 특별하게 하는 요소다. 렌코가 끝내 부모의 갈라섬이 어찌할 수 없는 현실임을 깨달은 이후, 아이는 그대로 내달려 어느 농촌마을의 축제 현장에 도착한다. 축제는 우리네 쥐불놀이처럼 짚단을 큰 불로 태우는데, 그 불길을 영화는 인상적으로 포착하는 것이다.
태우는 큰 불길은 그 자체로 소모이며 파괴이고 재앙이지만, 타는 짚단이며 논밭을 넘어 내년의 수확이란 순환의 삶 전체로 볼 때는 재생이고 진정이며 풍요로움의 발자국을 이루는 일이다. 렌코에게 닥친 부모의 불화 또한 그와 같아서, 애써 외면하고 도망치며 어떻게든 엮어보려는 헛된 수고 끝에 아이는 마침내 감내하고 감당하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저 바다 앞에서 부모와 제가 올라탄 배가 활활 불타는 모습을 바라보며 연신 "오메데토(おめでとう, 축하해)"라고 외치는 렌코의 모습이야말로, 저 자신의 오늘을 불태우고 다가올 내일을 인정키로 하는 아이의 전환을 상징하는 명장면이다.
그래서 <이사>는 참혹한 성장영화다. 저의 오늘을, 이제까지의 대처를, 희망과 기대를 모조리 불사르고서야 간신히 얻어내는 내일의 기약이고 희망이다. 그것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부모의 이혼일 수 있고, 또 다른 부정적 무엇일 수 있겠으나, 렌코가 더는 도망치지 않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점에서의 성장이기도 하다. 어쩌면 변한 것은 그저 마음가짐일 뿐, 모조리 불타 재만 남는 것이 아닌가 걱정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어떤 식물은 불 가운데 놓여야만 씨앗을 터뜨린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이다. 산불이 숲을 더 강건하게 하듯, 때로는 재난이 인간을 나아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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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