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닝 스틸컷.
워너브라더스
고등학생 시절, 이 영화를 집에서 보다가 얼마나 많이 재생을 멈추었는지 생생히 기억한다. 겨울이면 폭설로 고립되는 외딴 호텔을 관리해 달란 요청을 받고 가족들과 호텔로 들어간 한 사내가 미쳐버리는 이야기. 소설을 쓰는 이 사내가 완전히 돌아서는 제 아내를 죽이려 도끼로 문을 부수는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장면이 되었다. 호텔 벽에서 붉은 피가 범람하는 장면은 또 하나의 원형이 돼 수많은 작품이 오마주하기도 했다. 호텔 밖에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이동 중에도 흔들림을 방지하기 위해 고안된 스테디캠을 최초로 사용한 작품이라 불리는 것도 유명한 이야기다.
스탠리 큐브릭은 영화사 가운데 빼어나다 할 수 있는 아주 소수의 인물 가운데 하나다. 그의 재능 가운데 각별히 빛나는 게 공포다. 그는 SF에서도, 드라마에서도, 제가 공포를 다룰 줄 안단 걸 관객에게 분명히 인식케 한다. 하물며 정통 공포를 표방한 작품에서야. 미국이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자행한 일을, 그 위에 쌓은 제국의 망각을 그는 <샤이닝> 가운데 공포로써 일깨운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셜리 듀발의 이야기 또한 언급해야 한다.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승승장구하던 셜리 듀발이 큐브릭과 만난 건 불행한 일이었을까. 셜리 듀발 스스로도 대단한 모습을 보였고, 영화 또한 세기의 걸작이란 평을 받았으나 <샤이닝>은 그녀에게 결코 유쾌한 작품이 되지 못했다. 큐브릭이 셜리 듀발의 공황상태를 극대화하고자 지속적으로 괴롭혔다는 이야기가 이제는 널리 알려졌다.
셜리 듀발은 영화 개봉 뒤 인터뷰를 통해 촬영 기간 하루에 12시간씩 울었다며 가학적인 촬영장의 환경을 문제 삼았다. 영화 속 미친 남편이 도끼로 아내가 숨은 문을 부수는 장면 하나를 3일 동안 60여 차례 재촬영해 찍었다고 했다. 그녀가 야구방망이를 들고 맞서는 후반부 장면은 무려 127회나 다시 찍었다. 당시 영화계의 평균적인 촬영 방식에 크게 벗어나는 일이었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아는 바다. 이 장면들은 대단한 명장면이 됐다. 셜리 듀발의 연기 또한 지극히 현실적으로 담겼다. 그러나 배우로서 셜리 듀발은 이후 다시는 훌륭함에 이르지 못했고, 2002년엔 할리우드 생활을 접고 은퇴에 이르렀다.
<샤이닝>은 여러모로 인간과 세상 가운데 알려지지 않고 망각되는 두려운 것들을 상기하게 한다. 유쾌하지 못한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샤이닝>이 대단한 작품이다. 기묘함을 넘어 두렵고 무섭게 한다. 인간 안의 집념과 광기가 어떻게 인간성을 망칠 수 있는지 작품 안팎으로 보여준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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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