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딸> 스틸.
(주)NEW
모순과 마법 모두를 만들어내는 공동체, '가족'
동명의 웹툰 원작은 연재 당시 팬데믹 시기를 통과하는 중이었다. 이를 미루어 보았을 때 <좀비딸>이 품고 있는 사회적 메시지는 팬데믹을 경험한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가족을 숨기고 보호하려는 정환의 모습은 감염자를 배제하려는 사회와 달리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조건 없는 사랑과 보호가 가능한 마지막 공간처럼 보인다. 집단을 위한다면 마땅히 정부에 신고해야 하지만 정환은 자신의 딸과 소통하고 좀비 기질을 변화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가족이라는 관계에서만 해낼 수 있는 모순이자 마법이다.
영화는 가족에서만 작동하는 특별한 논리를 보여준다. 할머니에게 좀비가 된 수아는 위험한 감염체가 아니라 그저 '말 안 듣는 손녀'일 뿐이다. 효자손으로 타이르고, 밥을 먹이고, 잠자리를 챙기는 일상적 돌봄의 연속 속에서 좀비라는 정체성은 희석된다. 이는 사회적 합리성을 뛰어넘는 가족만의 논리다. 객관적으로는 위험한 존재이지만 가족에게는 조건 없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비합리적이면서도 숭고한 믿음. 정환이 딸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화는 이런 가족애의 맹목성을 비판하지도, 찬양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담담히 기록할 뿐이다.
<좀비딸>은 상업영화로서의 미덕을 충실히 하면서도 원작 팬들을 위해 핵심 서사는 보존한다. 전 연령층이 볼 수 있는 가족 영화라는 측면에서 정말 '안전한' 영화다. 가족애라는 보편적 정서에 집중하면서 좀비물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들, 예를 들어 개인의 선택이 공동체에 미칠 수 있는 파급효과, 소수자 보호와 다수의 안전 사이의 긴장 같은 딜레마들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어쩌면 이런 안전함이야말로 이 영화의 존재 이유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단순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다. 무더운 여름 가족들이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영화로서 <좀비딸>은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혁신적이지는 않지만 성실하고, 깊이감은 부족하지만 진정성 있는 영화다. 조정석이라는 든든한 버팀목과 웹툰 원작이 제공하는 탄탄한 서사 위에서 가족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다시 한번 재확인시킨다. 침체된 한국영화계에도,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을 가족들에게도 따뜻한 은신처가 될 만한 영화다.
▲<좀비딸> 스틸.
(주)NEW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일용직 노동자 겸 플랫폼 노동자. 음악-영화-책 감상이 유일한 취미.
공유하기
예상대로 웃기고 생각 외로 따스한 '좀비딸'의 매력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밴드
- e메일
-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