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거> 스틸.
넷플릭스코리아
그런데 회를 거듭할수록 묘한 불편함이 스며든다. 총격 장면이 난무하는 드라마는 사실 낯설지 않은데도, 이 드라마에서는 유독 더 조심스럽고 무거운 감정이 따라붙는다. 왜일까. 이 불편함은 단순한 폭력성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도 현실적인 설정이 우리 사회를 찌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불편함은 어쩌면, 우리가 믿고 있던 '절대 불가능'이라는 전제의 균열에서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지난해 12월, 계엄 내란 시도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우리는 실제로 겪었다. "그런 일이 다시는 벌어질 리 없어"라고 믿어왔던 일이다.
민주화 이후 계엄령은 교과서 속에나 있는 단어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처럼 확신의 영역이 무너지는 경험은 단지 과거의 해프닝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얼마나 불안정한 세상 위에 서 있는지를 말해준다. 그 불안이 '트리거'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만든다.
계엄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생각해 볼 때 '총기 자유화' 못지않은 충격과 공포감이 아닐 수 없다. 그릇된 권력은 군대를 움직여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눴다. 넓은 의미로 확장해 보면 사실상 이미 한 개인이 총기를 사유화한 것과 다를 바 없다.
1화에서 첫 총기 난사의 가해자인 장수생이 정신과 의사와 나누는 대화. 의사는 말한다. "누구나 마음속에 트리거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간다"고. 이 대사야말로,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문장이었다.
총을 빼고 이 작품을 다시 보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드라마적 요소를 살리고자 과장된 부분도 분명 존재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갈등 요소의 묘사는 상당히 구체적이면서 사실적이다. 층간소음, 노동착취, 성범죄, 학교폭력, 전세사기 등. 언제 당겨져도 이상하지 않을 트리거투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는 단순히 디스토피아적인 세상을 그린 허무맹랑한 SF가 아니다. 오히려 심리적인 사회 드라마 장르로 보아야 한다. 진짜 트리거는 총의 방아쇠가 아니라 개인이 가진 트라우마인 것이다.
방아쇠를 당기는 행위 이전에 무고한 죽음을 낳게 하는 건 누구나 가지고 살아가는 분노, 상처, 외로움일 수 있다. 극단적인 분열 양상으로 소위 갈라 치기가 팽배해 있는 지금. 무엇보다 트리거의 트리거라 할 수 있는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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