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거> 스틸.
넷플릭스코리아
비판과 쾌감의 역설
드라마 속 문백(김영광)이 "모든 사람이 총을 가지고 있으면 한국은 어떻게 될까?"라고 묻는 장면에서 드라마의 핵심이 드러난다. 이는 총기가 돌아다니는 한국사회를 단순히 가정한 게 아닌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폭로하는 실험이다. 문백은 총기를 배포하면서 사람들의 본성을 관찰한다. 그가 목격하는 것은 선량한 시민들이 순식간에 가해자로 변모하는 과정이다.
변모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간호사 집단의 태움문화에 시달리는 신입 간호사, 학교에서 집단 폭력과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 전세사기로 자식을 잃은 부모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강구해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총기는 그들에게 마지막 발언권을 제공한다. 그들이 총을 들자 처음으로 상대방이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인다. 하지만 이는 소통이 아니라 위협이다. 총구가 향하는 곳에서는 대화가 아니라 복종만이 존재한다.
권오승 감독이 총을 잡는 인물들이 평범한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게 중요했다고 밝힌 건 이들이 시스템의 피해자임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하는 순간, 누가 진짜 책임자인지 묻는 질문은 흐려진다. 드라마는 문백의 실험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그 실험이 만들어내는 장르적 스펙터클을 즐긴다. 총격전의 박진감, 복수의 쾌감, 피해자가 상대적 강자였던 가해자를 제압하는 권선징악의 통쾌함. 이야기 의도와 형식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순간이 여러 번 나온다. <트리거>의 의도는 분명 총기를 위시한 폭력을 해결책으로 삼는 상황에 대한 비판이지만, 그 폭력을 쾌감으로 소비하게끔 유도하는 모순적인 태도들이 종종 튀어나온다.
문제제기는 열심히, 해결책은 얼기설기
드라마의 마지막, 갈등의 클라이막스를 선보이고 얼기설기 이야기를 끝맺음하려는 것처럼 드라마가 제시하는 사회적 진단 이후의 처방은 없다. 나아가서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문백이라는 특정한 개인의 일탈 문제로 환원하는 것은 어쩌면 총기가 야기하는 공포보다 더 위험한 일일지도 모른다. 문제의 근원을 그대로 둔 채로 증상만 억누르려는 접근법은 결국 또 다른 폭발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트리거>는 총기를 통한 일시적 카타르시스, 즉각적이지만 순간적인 해소는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고 경고하지만, 정작 시청자에게는 총기를 통한 장르적 쾌감을 끊임없이 제공한다. 마치 마약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동시에 마약 복용 장면을 매혹적으로 연출하는 것과 같다. 분명 <트리거>는 스스로 방아쇠가 되어 사회적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 보자는 시발점이 되고자 했지만 작품이 경계하려는 일시적 쾌감을 작품 자체가 재생산해내는 아이러니에 직면한다.
"모든 사람이 총을 가지고 있으면 한국은 어떻게 될까?" 라는 상상은 분명 시도해 볼 만한 접근이다. 하지만 정작 많은 사람들이 보고 싶었던 것은 질문의 시각적 구현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을 테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아무도 총을 들고 싶어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그 답을 찾기까지는 상상을 넘어서는 깊은 사유가 필요할 것이다.
▲<트리거>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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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직 노동자 겸 플랫폼 노동자. 음악-영화-책 감상이 유일한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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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는 좋았지만... '트리거'의 위험한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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