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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친구, K라면이 전 세계를 사로잡은 비결

[리뷰] tvN <벌거벗은 세계사>

25.07.09 14:15최종업데이트25.07.09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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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은 오늘날 인류의 '소울푸드'로 불린다. 특히 현재 전세계 라면 트렌드의 중심에 있는 대한민국은 2024년 기준 연간 라면 소비량 세계 2위를 기록했으며 연간 130여개국과 연결된 최대의 라면 수출국이기도 하다.

어쩌면 인류 최고의 음식 발명품으로까지 꼽히는 라면은 어떻게 탄생했으며, 오늘날 세계인의 입맛까지 사로잡게 되었을까. 8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는 '밀가루는 어떻게 K-라면이 되었나'편을 조명했다.

라면의 유래

 tvN <벌거벗은 세계사> 중 한 장면
tvN <벌거벗은 세계사> 중 한 장면TVN

라면이라는 단어는 본래 중국의 '라미엔(拉麵. 납면, 길게 늘인 면)에서 유래했고, 일본에서 이를 '라멘'으로 발음한 것이 다시 한국으로 전파되면서 '라면'으로 굳어졌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튀르키예의 디야르바키르 지역은 인류 최초의 밀 재배지로 꼽힌다. 라면의 주원료인 밀가루는 바로 밀을 가공하여 만들어진다. 알곡 형태의 밀은 본래 인류사 초기만 해도 먹기도 키우기도 힘든 곡물이었지만, '제분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인류의 주식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인류가 본격적으로 밀을 활용하여 만든 대표적인 음식은 빵이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밀 특유의 풍부한 글루텐 효소를 활용하여 다양한 빵을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또한 중국은 고대부터 나쁜 수질과 추위로 인하여 음식을 삶거나 끓여서 먹는 식문화가 유행했고, 밀가루를 활용한 탕병(국수, 수제비), 증병(만두) 요리들도 발전하게 된다. 6세기경에는 문헌상 인류 최초의 국수조리법인 '수인병'이 등장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밀가루가 귀했기에 국수는 황실에서나 먹을 수 있는 고급 음식으로 분류됐다.

기다란 국수를 뜻하는 '면(麵)'이라는 용어가 보편화되기 시작한 것은 송나라 시대부터였다. 물레방아의 전국적인 보급과 제분기술의 발전으로 밀가루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면 요리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린다. 다양한 형태의 면 요리가 등장하여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중국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또한 발달된 면 요리 기술은 이웃 나라로도 전파되기에 이른다. 특히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오늘날 세계적인 면 요리의 강국으로 불리는 일본이다. 우동과 소바 등은 중국을 통하여 일본으로 건너와 현지화된 면 요리로 정착한 사례들이다.

1910년 도쿄에 개업한 '라이라이켄' 가게에서 중국식 소바를 일본인의 입맛에 맞춰서 간장베이스 육수를 사용하고, 고명으로 차슈, 죽순, 파 등을 넣어 든든한 한끼로 재구성한 메뉴는 오늘날 라면의 시초로 꼽힌다. 급격한 일본의 근대화로 인하여 도시로 몰려든 노동자들 사이에서 빠르고 저렴하면서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라이라이켄 라면은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일본 전역에 라면이 전파된 까닭

 tvN <벌거벗은 세계사>중 한 장면
tvN <벌거벗은 세계사>중 한 장면TVN

1923년 일본을 대흔든 관동대지진은, 역설적으로 라면을 일본 전역으로 전파하는 계기가 됐다. 많고 이재민들이 도쿄를 떠나 오사카, 삿포로, 규슈 등으로 이동했고, 생계를 위하여 소자본으로 간단하게 시작할수 있는 포장마차 사업에 뛰어들면서 덩달아 대표 메뉴인 라면의 인기가 확산되기에 이른다. 이후 라면은 일본 각지의 음식문화와 결합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지역 라면으로 발전하게 된다. 미소, 돈코츠, 쇼유는 일본을 대표하는 3대 라면으로 자리 잡았다.

라면은 2차대전 당시 식량난에 직면한 일본 정부의 밀가루 및 식량통제로 한동안 사라질 뻔한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후 1946년부터 미국이 일본에 대규모 식량 원조를 단행하면서 다시 밀가루 요리가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이때부터 다시 살아난 일본의 라면은, 노동자들의 패스트푸드에서 서민의 소울푸드로 새롭게 진화하기에 이른다.

대만계 일본인 기업인 안도 모모후쿠(닛신식품의 창업주)는 '인스턴트 라면'의 창시자로 불린다. 안도는 2차대전 패전 이후 암시장에서 추운 날씨에 라면 한 그릇을 먹기 위하여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누구나 간편하게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라면 개발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안도는 면을 튀기면 수분이 증발하고 유통기한이 늘어나 오래 보관할 수 있으며, 뜨거운 물만 부으면 면이 다시 탱글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러한 튀김의 원리에 따라 1958년 닭고기 육수를 베이스로 한 유탕면을 선보이며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해 내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TV광고 효과까지 더해지며 라면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다.

1960년대는 일본 인스턴트 식품 시장이 약진한 첫 전성기로 꼽힌다. 1961년에만 해도 70개에 불과했던 인스턴트 라면 업체는 불과 4년 만에 360개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라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가격이 하락하고 경영난에 시달린 일본 라면업체들은 점차 해외로 눈을 돌린다.

미국 진출을 타진하던 닛신식품은 일본식 국물 면요리에 생소하여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붓거나, 젓가락질이 서툴러서 헤매는 미국인들의 모습에서 오히려 '컵라면'이라는 신제품 개발의 영감을 얻었다. 1971년 9월, 세계 최초의 컵라면인 '컵누들'이 탄생한다. 초기에는 생소하고 가격도 비싼 컵라면에 대한 일본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하지만 1972년 일본 전역에 TV로 생중계된 '아사마 산장 인질극 사건'당시 열악한 현장에서 비상식량인 컵라면으로 허기를 때우는 기동대원의 모습이 큰 이슈가 되면서 컵라면이 뜻밖의 유명세를 탄다. 1971년 연간 62억에 규모에 불과했던 컵라면 판매량은 생중계 효과 이후 1년 사이에 약 2천억까지 33배나 폭증했다.

일본 내에서 컵라면의 뜨거운 인기는 '컵라면 자판기'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또한 컵라면은 미국으로도 진출하여 현지화 전략에 통하여 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새로운 시장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 일본에서 시작된 라면 열풍은 이제 전세계로 퍼지면서 지구촌 각지에서는 이제 어디를 가든지 다양한 형태의 라면을 접할 수 있게 됐다.

오늘날 이러한 라면 열풍에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주역이 대한민국이다. 삼양식품의 창업주 전중윤은 1950년 한국전쟁의 여파로 인하여 식량난에 시달리며 사람들이 '꿀꿀이죽' 한 그릇에 연명해야 하는 고국의 참상을 지켜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에서 맛본 인스턴트 라면에서 영감을 얻은 전중윤은, 일본으로 건너가 최초의 라면수프 분말을 개발한 묘조 식품으로부터 기술 개발 노하우를 전수받고 한국식 라면 개발에 착수했다.

당초 묘조식품 측은 회사 기밀인 스프 제조법만큼은 절대 공유할 수 없다며 끝까지 거부했다고 한다. 낙담한 전중윤은 귀국길에 올랐는데, 그의 진심에 감명받은 묘조의 사장이 비행기를 타기 직전 몰래 편지를 보내 "한국의 라면 개발을 응원한다"는 격려의 메시지와 함께 라면수프 배합표를 전해줬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삼양라면의 탄생

이렇게 탄생한 것이 1963년 한국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삼양라면'이다.초기에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아직 생소한 인스턴트 라면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으나 1966년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고춧가루를 첨가한 수프가 만들어지면서 점차 큰 호응을 얻는다.

당시 라면을 종종 즐겼던 박정희 대통령이, 고춧가루를 넣어먹던 본인의 경험담에서 영감을 얻어 라면 회사들에 개발법을 연구해보라고 추천해줬다는 뒷이야기도 전한다. 또한 1986년에는 국민 라면으로 불리는 농심의 '신라면'이 탄생한다. 이때부터 한국 라면은 칼칼하고 매콤한 '깊은 매운맛'을 트레이드 마크로 하게 되어 일본의 라면과는 또 다른 독자적인 차별화에 성공한다.

당시 한국의 1960-70년대는 쌀 부족에 대처하기 위하여 보리와 밀 소비를 장려하는 '혼분식 장려운동'이 정부 주도로 펼쳐지던 시기이기도 했다. 라면은 이 당시만 해도 인스턴트 식품이라기보다는 영양가가 풍부한 한 끼 식사로 강조됐다. 1966년 240만 개가 판매되었던 라면은 3년 후인 1969년에는 무려 1500만 개가 판매되며 약 6배로 급성장한다.

현대에 접어들며 한국 라면은, 케이팝과 한국드라마 등 한류열풍에 힘입어 전세계적으로 노출되면서 글로벌한 인기를 누리는 식품으로 성장했다. 영화 <꽃보다 남자>, <별에서 온 그대> 영화 <내부자들>, <기생충> 등의 화제작에서 주인공들이 라면을 먹는 모습을 본 해외 팬들 사이에서는 '양은냄비 라면' '짜파구리' 등 한국식 라면이 덩달아 큰 관심을 끌었다.

오늘날 한국 라면은 고유의 한국적인 매운맛은 물론이고, 세계 각지로 전파되며 현지화에도 성공하면서 꾸준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2023년 기준 세계 라면 시장에서 한국 라면이 약 20%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되며 당당히 글로벌 1위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2024년 한국의 라면 수출액은 12억 5천만 달러, 한화 1조 7천억 원에 이른다.

'새로운 요리의 발견은 새로운 별의 발견보다도 인류의 행복에 더 공헌한다' 프랑스의 미식 평론가 앙텔름 브리야사바랭의 격언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외국인에게 알려진 한국 음식은 비빔밥이나 불고기 정도였지만, 이제는 라면이 한국을 대표하는 또 다른 글로벌 대표음식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평범한 밀가루가 오늘날 세계적인 히트상품인 한국 라면의 신화로 거듭나기까지 수많은 역사와 사연을 거쳐야 했듯이, 앞으로도 새로운 이야기를 계속해서 만들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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