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모래시계>가 없었다면 SBS가 자리 잡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 모른다.
SBS
1990년대 초·중반 지배했던 '영원한 터프가이'
1960~70년대 은막의 스타이자 제13대 국회의원을 지낸 고 최무룡의 아들 최민수는 대를 이어 연기자로 활동했던 많은 배우들 중 2대가 모두 톱스타로 군림했던 흔치 않은 사례로 남아 있다. 데뷔 초까지만 해도 여느 2세 배우들처럼 아버지의 그늘을 벗지 못하던 최민수는 1990년 영화 <남부군>으로 주목 받기 시작했고 1991년 가족 드라마 <무동이네 집>을 통해 대중들에게 익숙한 배우로 알려졌다.
그리고 최민수는 1991년 11월 자신의 운명을 바꿔 놓은 MBC 주말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를 만났다. <사랑이 뭐길래>에서 이순재 배우와 김혜자 배우 사이에서 태어나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란 이대발을 연기한 최민수는 평소 터프한 이미지와 다른 코믹한 연기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최민수는 이후 MBC에서 <엄마의 바다>와 <걸어서 하늘까지>에 차례로 출연하며 최고의 스타 배우로 떠올랐다.
1994년 <남부군>을 연출했던 정지영 감독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 출연한 최민수는 차기작으로 SBS의 <모래시계>를 선택했다. <모래시계>에서 정치 깡패 박태수 역을 맡아 시청률 64.5%를 이끈 최민수는 같은 해 영화 <테러리스트>에 출연하며 SBS 연기대상과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휩쓸며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배우에 등극했다(닐슨코리아 시청률 기준).
1990년대 초·중반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최민수는 영화 <피아노맨>과 <인샬라>,<블랙잭> 등의 흥행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1998년 김종학 PD의 신작이자 심은하, 이병헌, 이정재 등이 출연했던 <백야3.98>도 30%가 넘는 시청률로 시작했다가 한 자리 수로 막을 내리는 '용두사미'의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최민수는 2001년 <리베라 메>로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최민수는 2000년대 이후 이야기 전체를 이끌어가는 주연을 고집하지 않고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색깔의 캐릭터를 연기했다. 비닐우산을 쓰고 지강혁(이성재 분)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 <홀리데이>가 대표적이다. 1962년생으로 환갑을 훌쩍 넘긴 최민수는 더 이상 과거처럼 활발한 활동을 하진 않지만 중·장년층에게는 여전히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원한 터프가이'로 기억되고 있다.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흥미롭게 재구성
▲"나 떨고 있냐?"라는 대사로 대표되는 박태수(왼쪽)와 강우석의 사형 집행장 대면은 한국 드라마 역사에서 손꼽히는 명장면이다.
SBS 화면 캡처
SBS에게 <모래시계>는 그야말로 방송국의 '사활을 걸고' 만든 드라마였다. 최고의 걸작을 만들었던 스타PD와 작가, 높은 시청률을 보장하는 배우들을 모아 만든 <모래시계>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4회 방송'이라는 파격적인 편성을 단행했다.
드라마국의 운명을 걸었던 SBS의 파격적인 모험은 결과적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주4회 편성의 <모래시계>는 평균 46%, 최종회 시청률 64.5%를 기록하며 그야말로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는 역대 드라마 중에서 <첫사랑>과 <사랑이 뭐길래>,<허준>에 이어 4번째로 높은 시청률이었다. <모래시계>는 신생 채널 SBS가 시청자들에게 친숙한 방송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해준 일등공신이었다.
실제로 <모래시계>는 단순한 인기 드라마가 아닌 하나의 '사회현상'에 가까웠다. 평소 드라마의 주요 시청층과는 거리가 멀었던 남성 직장인들이 <모래시계>를 보기 위해 귀가를 서둘렀다 하여 '귀가시계'라는 별칭이 붙었을 정도. 그리고 <모래시계>가 방송되던 1995년에는 수도권에만 SBS 가 송 출됐는데 지방의 비디오 대여점에서는 <모래시계> 테이프가 대작 영화를 제치고 대여순위 상위권을 차지했다.
<모래시계>는 유신시대부터 6공화국 탄생까지를 배경으로 세 주인공이 대한민국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실제로 'YH여공 신민당사 점거 농성사건'과 '서울의 봄', '삼청교육대' 같은 1970~80년대의 사건들이 드라마 속에 등장한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을 드라마에서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으로 김종학PD는 실제 자료 화면과 촬영 장면을 교차 편집해 당시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최전성기에서 은퇴를 선택한 여성 배우
▲고현정은 <모래시계>를 통해 정점에 오른 상태에서 결혼과 함께 연예계 은퇴를 선택했다.
SBS 화면 캡처
1989년 미스코리아 선 출신의 고현정은 1992년 <두려움 없는 사랑>과 1993년 <엄마의 바다>를 통해 스타 배우로 성장했다. 그리고 1995년 <모래시계>에서 카지노 재벌의 후계자 윤혜린을 연기하면서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하지만 고현정은 <모래시계>가 끝나자마자 결혼을 하면서 연예계를 은퇴해 대중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고현정은 2005년 <봄날>로 돌아오기까지 10년의 긴 공백기를 가졌다.
모델 출신으로 1993년 데뷔한 이정재는 드라마 <공룡선생>,<느낌>,영화 <젊은 남자> 등에 출연했다가 <모래시계>에서 혜린의 보디가드 백재희를 연기했다. 이정재는 <모래시계>가 낳은 최고의 라이징 스타로 등극했다.
1982년 MBC 공채 15기 탤런트로 데뷔한 정성모는 <겨울나그네>와 <여명의 눈동자>, <서울의 달> 등 굵직한 작품들에 출연하다가 <모래시계>에서 '빌런' 이종도 역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종도는 납치 당한 혜린을 구하러 온 백재희를 살해했고 박태수를 사형수로 만든 인물이다. <모래시계>로 악역 이미지가 각인된 정성모는 <제빵왕 김탁구>와 <펜트하우스> 등에서도 악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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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적인 '주4회 편성', 방송국의 운명을 건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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