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쥬라기 월드 : 새로운 시작>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공룡이 세상에 돌아온 지 32년이 지났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세인트 휴버트 섬에 있는 연구실험실이 등장한다. 공룡의 유전자를 조작하던 인젠 소유 시설이다. 극 중 17년 전인 2010년, 현실의 시간으로는 32년 전, 영화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첫 시작점이기도 하다. 비극적인 사고 이후 오랜 시간 폐쇄된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지열발전소가 작동하고, 저녁이 되면 자동으로 전기가 공급되는 모습. 이번 작품의 주인공들이 다시 한번 향하게 되는 장소다.
한편, 전작 <쥬라기 월드 : 도미니언>(2022)에서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현시대의 동물들과 교감할 수 있게 된 공룡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비춰진 바 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나는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동안 새로운 종(種)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많이 줄어 들었고, 환경적 변화로 인해 적도 부근 일부 지역에서만 서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랜 시간 공존(이라고 부르고 소유의 의미로 쓴다.)의 방법을 찾고자 한 인류의 입장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거대 제약 회사의 대리인인 마틴 크렙스(루퍼트 프렌드 분)가 용병인 조라 베넷(스칼렛 요한슨 분)에게 건네는 제안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인류의 20%가 심장병으로 사망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삶을 20년 연장할 수 있는 신약을 개발하고자 하는 계획. 이를 위해서는 거대 공룡의 유전자가 필요하다. 육해공 세 종 가운데 가장 큰 개체인 모사사우루스, 타이타노사우루스, 케칼코아틀루스의 혈액과 조직이다. 물론 산 채로 채취해야 한다.
02.
영화 <쥬라기 월드 : 새로운 시작>(이하 <쥬라기 월드 4>)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시리즈 전반에 대한 이해가 간략하게나마 필요할 것 같다.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야심 찬 도전으로 시작된 이 시리즈도 벌써 일곱 번째 작품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작품이 영화화되기 전부터 새로운 리부트 트릴로지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4편부터 6편까지 배우 크리스 프랫이 연기한 오웬 그래디가 중심이 된 <쥬라기 월드> 트릴로지가 막 끝나고, 이번 작품부터는 해당 역할을 스칼렛 요한슨이 이어받게 되었던 탓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중심이 되었던 초기 <쥬라기 공원> 3부작과 콜린 트러보로 감독이 리부트했던 <쥬라기 월드> 3부작까지. 각각의 서사가 3부작의 형태로 열리고 닫히는 모습을 보여왔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번 작품 < 쥬라기 월드 4 >는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영화는 맞지만, 새로운 프랜차이즈 시리즈의 리부트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영제의 부제로 리버스(Rebirth)를 자처하고 있는 만큼, 시리즈 전체를 움직여왔던 '공룡'과 '대결'이라는 소재는 계속해서 이어 나가고자 한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1편인 <쥬라기 공원>(1993)의 형태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고자 한다. 단순히 몇몇 장면을 오마주하고 있어서는 아니다.
▲영화 <쥬라기 월드 : 새로운 시작>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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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이젠 아무도 관심이 없어요."
이번 작품의 핵심은 그동안의 시리즈에서 공룡을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위해 통제해야 할 대상이 아닌, 신약 개발을 위해 이용해야 하는 대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부분이다. 영화 초반부에서 헨리 루미스 박사(조나단 베일리 분)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대중의 관심이 차갑게 식기 시작하면서 박물관이 문을 닫게 되었다는 설정이 제시된다.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는 것이 마틴 크렙스의 제안이다. 종을 어떻게든 지배하고 이용하며 수익화하겠다는 욕망은 그대로 남은 상태로 그 방식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욕망은 세 인물이 서 있는 동인(動因)의 축 위에서 서로 다르게 그려진다. 인간적인 면을 상실하면서까지 금전적 욕망을 갖는 마틴과 안정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금전적 욕망을 갖고 있지만 타인에 대한 마음까지 잃지는 않은 조라, 그리고 금전적인 부분이 아닌 실제 대자연 속의 공룡을 직접 마주하기 위해 프로젝트에 뛰어든 완전히 다른 욕망을 가진 루미스 박사다. 세 사람이 가진 동인의 차이는 이 영화를 끌어나가는 큰 동력 가운데 하나며, 결말을 완성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루미스 박사가 채취한 샘플을 파커 제닉스 사에 넘기는 일에 대한 문제를 처음 제기할 수 있게 되는 것 역시 다른 두 인물과 달리 금전적 욕구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서다.
04.
하지만 영화가 전면에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이런 욕망의 차이나 대상의 활용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과정에서 새롭게 파생되는 이야기의 전개가 아니라, 주어진 미션을 차례대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다. 모사 사우루스와 타이타노 사우루스, 케찰코아틀루스 순으로 이어지는 공룡과 인간의 대립은 욕망이 투영된 것이라기보다 러닝타임의 많은 부분을 액션으로 채우려는 방안처럼 여겨진다. 깊은 곳의 감정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얕은 곳의 단발적인 감정을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 사실 이런 방식의 전개는 지난 몇 번의 시리즈 중에서도 활용된 바 있고, 그때마다 혹평을 받게 만든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장면이 타이타노 사우루스의 교감을 지켜보던 인간의 모습을 가슴 벅차게 그려내고자 했던 부분이다. 수많은 작품에서 명성을 쌓아 온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감독의 음악이 깔리고 공룡을 구현하기 위한 애니메트로닉스와 CG가 화면 가득 채워지지만, 스칼렛 요한슨의 감동적인 표정에 마음이 조금도 가닿지 못한다. 세 마리 공룡의 DNA를 채취하기 위한 미션과 거대종과 생명에 대한 경외가 단순히 두 신의 연결로 이어질 수 있는 감정인지는 지금도 여전히 알기 어렵다. 한 인간의 위험과 죽음 앞에서도 냉정했던 인물(마틴 크렙스)의 탄성에는 더욱 그렇다. 이 문제는 영화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시나리오의 문제에 조금 더 가까워 보인다.
▲영화 <쥬라기 월드 : 새로운 시작>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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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영화에는 조라가 과거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꾸린 팀 외에 일반인 가족 무리가 하나 더 존재한다. 테리사(루나 블레이즈 분)와 벨라(오드리나 미란다 분) 자매의 가족으로, 이들은 방학을 맞이해 카리브해를 횡단하는 여행 도중 모사사우루스에 공격당했다가 조라 팀에 의해 구조된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을 동행시키지 않고 스플릿하며 서로 다른 여정에 집어넣은 뒤 교차 등장시킨다. 한쪽에서는 순수한 생존을 위한, 또다른 한쪽에서는 미션 달성을 위한 모습을 담아내는 것이다.
두 집단 사이의 목적이 다른 만큼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의 격차가 더 컸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형태로는 굳이 나눈 이유를 찾기 어렵다. 특별한 목적이 주어진 것도 아니고, 그 결과가 확연하게 달라진 것도 아니다. 두 무리는 결국 영화의 후반부에서 같은 공간에 도달하게 되고 다시 함께 생존을 도모하게 된다. 굳이 목적을 찾아보자면, 조금 더 다양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인데 여기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나가 더 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이들이 마주하게 되는 공룡이 영화의 처음에서 등장하는 돌연변이 실험으로 예상을 상회하는 지적 수준을 가진 것으로 설정한다. 애초에 영화의 바깥에 존재하는 다른 시리즈로부터 설정을 가져와 쓰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서 근본적인 물음이 생긴다. 대형 종으로부터 DNA를 산채로 추출해야 한다는 목적을 가진 팀이 이 상황을 몰랐다면 설정의 오류가 있음이, 알았다면 프로답지 못한 태도를 가졌음이 증명될 수 있어서다. 어느 쪽도 사실 납득하긴 어렵다.
▲영화 <쥬라기 월드 : 새로운 시작>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06.
"지구에 생존했던 종들 가운데 99.9%가 멸종됐어요. 생존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새 시리즈의 시작. 영화를 마주하기 전까지는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나, 막상 끝나고 나니 이 작품이 무엇을 위해 제작되었을까 하는 물음이 남는다. 다양한 공룡을 보여주었다기에는 그렇지도 못했고, 심지어 주요 대상도 뮤턴트에 가까운 형태로 이 영화를 가족 영화라고 부르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든다. 처음 <쥬라기 공원>이 나왔을 때만큼의 체험을 선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의 최종 스코어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2억 2천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붓고도 이 정도 스토리라인을 겨우 뽑아내는 수준이라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지구에 생존했던 종들 가운데 99.9%가 멸종되었다고 스스로 말했다. 역시 생존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 공룡도 편안히 잠들 수 있기를 바랄 뿐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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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라기 월드' 본 후 남은 질문, 꼭 이래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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