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영화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멜로디 소동>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2012년 프랑스에서 동명의 동화책을 바탕으로 내놓은 애니메이션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이 2년 뒤 한국에도 상륙했다. 서로를 부정하기 바쁜 곰과 쥐, 와중에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은 서로의 존재 자체를 인정한다. 10년 뒤 2022년에 후속 편이 프랑스에서 개봉했고 3년 뒤 한국에 상륙했다.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멜로디 소동>이라는 제목으로.
이번 작품의 키워드는 부제에서 엿볼 수 있듯 '멜로디'다. 멜로디 자체를 철저히 부정하는 어네스트의 고향 샤라비. 그 이유는 오롯이 어네스트에게 있으니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걸 극구 꺼려한 이유가 있었다. 이유는 그렇다 치고, 사람이 모여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규칙'과 '법'을 이용해 통제하려는 술수는 악랄하다.
규칙과 법은 그 자체로 목적이어야 한다. 작품에서처럼 '왜'가 빠지고 '원래부터 그랬다'는 식으로 법을 다루고 대하다 보면 사회는 일순간 경직되어 활동성을 잃는다. 생각을 정지하고 현상이 본질인 것처럼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그야말로 죽은 사회다. 극 중 샤라비는 죽은 사회다. 그럼에도 미파솔이 수시로 출몰해 멜로디를 퍼뜨리며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나아가 그가 이끄는 음악 되찾기 운동도 지하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빙퉁그러진 법치주의, 전체주의, 권위주의에 맞서 자유를 되찾고자 안전과 안정을 내던지는 것이다.
귀여운 외형, 결코 녹록지 않은 작품
▲애니메이션 영화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멜로디 소동>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이쯤 되면 아무리 동화적인 그림체로 아기자기하고 아름답게 그려냈다고 해도 세계관과 이야기, 메시지 등은 어른스럽기 이를 데 없다. 정치적이고 철학적이며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짚어내기까지 하니 각 잡고 들여다보면 어렵게 느껴질 수 있겠다.
다분히 인간의 본성을 거스른다. 본성이라 하면 동물적인 감각이 가장 먼저 떠오를 텐데, 장 자크 루소가 말했듯 인간은 본래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공동체 의식을 가진 존재였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불평등이 생겨나고 자유롭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런 만큼 작품 속 샤라비의 모습을 보면, 인간 세계가 갖춰야 할 이성적 체계를 완벽히 구축한 것처럼 보이나 실상 인간 세계가 지양해야 할 반인륜적 체계를 구축했다고 보는 게 맞다.
녹록지 않은 작품이다. 곰과 쥐가 주인공으로 나올 뿐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그 자체라고 해도 틀리지 않으니 더욱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예전과 지금이 별반 다르지 않은 것처럼 지금과 나중이 별반 다르지 않을까? 오랜 세월이 흐른 뒤 3편이 나와도 찾아볼 것 같다. 그런데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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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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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금지한 도시가 배경, 동화가 주는 공포감 대단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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