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키드 런치' 포스터
엣나인필름
영화에서 인터존은 버로스(윌리엄 리) 인생에 등장한 특정한 공간과 연결될 뿐만 아니라 다의적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인터존 명명은 단순한 줄임말이 아니라, '인터'를 통해 환각이나 무의식 등 현실 저편이나 현실과 뒤섞인 낯선 세계로 연결을 의미한다고 풀이할 수 있다. 또는 의식에 마련된 살인과 관련한 죄책의 공간일 수도 있다. 이 왜곡되고 뒤틀린 공간에서 인간화한 곤충, 타자기, 기관, 동성애자, 마약상 등이 출현한다. 인터존은 억압된 욕망, 성적 혼란, 정체성의 분열, 작가 정신의 맹아 등이 혼란스럽게 뒤섞인 정신의 본향으로 작가 탄생의 통과의례를 뜻한다고 해석될 수도 있다.
영화는 아내 살해 장면을 이야기의 앞과 끝에 배치하여 영화의 스토리 같지 않은 스토리가 살인의 기억을 둘러싼 심리적 순환의 여정임을 확고히 한다. 첫 번째 살해는 (영화와 버로스) 현실의 사건이며, 그 이후 인터존의 풍경은 윌리엄 리의 내면을 긁어대는 의식/무의식적 자기 해명 과정이다. 엔딩에서 윌리엄 텔 놀이가 반복되며 조앤이 다시 죽을 때 관객은 이 구성과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당황하겠지만, 또 조앤이 두 번 죽는 것인지 윌리엄 리가 두 여자를 죽이는 것인지 헷갈리겠지만, 크로넨버그 감독과 작가 버로스는 그것이 희생을 통한 글쓰기와 작가의 탄생이라는 유사 신화를 작성하게 된다.
살인의 기억
윌리엄 텔 놀이를 하며 아내를 죽였다는, 상상을 불허하는 경험은 실제로 버로스의 작가 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네이키드 런치>와 마찬가지로 영화로 만들어진 <퀴어> 서문에서 버로스는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나는 조앤의 죽음이 없었다면 내가 작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란 형편없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 나는 지속적인 강박의 위협과 함께 살았고,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그리고 통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속적인 필요와 함께 산다. 그리하여 조앤의 죽음은 나를 침략자, '추악한 영혼'과 접촉하게 했고, 나를 평생의 투쟁으로 이끌었으며, 그 안에서 나는 나의 길을 글로 써가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조앤의 죽음, 마약 중독, 동성애 등 영화에서 언급된 내용은 모두 작가 버로스의 실제 삶과 연결된다. 영화는 그의 실제 삶을 채용하면서도 실제 삶의 정조와 무관하게, 그로테스크하지만 발랄하고 또 흥미로운 시선으로 따뜻하게 그렸다. 영화는 소설 원작 제목을 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원작보다 더 강박적이고 고통스럽게 버로스의 사람됨과 작가됨을 포착한다.
여기서 번역으론 잘 드러나지 않는 '추악한 영혼'은 'the Ugly Spirit'으로 성령(the Holy Spirit)을 패러디했다. 추악한 영혼(the Ugly Spirit)에도 버로스의 전매특허 '컷-앤-페이스트' 기법이 초보적으로 반영된 셈이다. 성령의 대적자 사탄에 사로잡힌 비트 세대의 유명 작가를 삶과 소설, 픽션과 메타픽션, 문학과 영화를 짜깁기하는 참신한 방법론으로 영화화한 것이 크로넨버그의 <네이키드 런치)>이다.
▲네이키드 런치 스틸사진
엣나인필름
'컷-앤-페이스트(cut-and-paste)'는 버로스 등의 실험적 작가들이 시도한 글쓰기 방법. 기존 문장을 잘라내고 그것을 물리적으로 또는 개념적으로 재배열함으로써 새로운 텍스트를 생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줄여서 '컷-업(cut-up)'이라고도 한다.
이미 쓰인 텍스트를 물리적으로 자르고(cut), 순서를 바꾸거나 임의로 조합(paste)하거나 재배열(rearrange)한다는 우연 기반의 문학 실험은 언어의 질서 자체를 무너뜨리는 전면적인 저항을 뜻한다. 영화는 소설 자체를 기반으로 하지 않았지만, 작가를 소재로 소설의 컷-앤-페이스트 기법을 시도했다고 볼 수 있으며, 그렇게 하여 버로스가 주창한 전복적이고 의외인 텍스트 생성을 달성한다. 묘한 방식으로 원작에 충실한 영화인 셈이다. '추악한 영혼'이 결국 성령을 드러내는 우회로였다고 한다면 너무 의미를 단순화했다고 크로넨버그 감독이 이의를 제기할지 모르겠으나, 그런 측면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카프카 하이(Kafka High)
영화엔 기괴하지만 귀엽기도 한 벌레들이 등장한다. 주인공이 애초에 벌레를 죽이는 자였다가 벌레와 소통하고 친구가 되는 변신이 일어난다. 초반에 이 영화가 프란츠 카프카를 오마주했음을 분명히 밝힌다. 초반 조앤의 대사 중에 번역이 어려운 "카프카 하이(Kafka High)"란 말이 등장한다. 카프카적인 중독이라고 해도 좋고, 카프카에 중독됐다고 봐도 좋으나 영화가 카프카의 대표작을 염두에 뒀음을 적시한다.
▲네이키드 런치 스틸사진
엣나인필름
마라톤 한다는 사람이 느낀다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떠올려보자. 러너스 하이가 장시간 달려서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이지만 갑자기 고통이 줄어들고, 정신적으로 맑아지며, 기분이 고양되는 현상이라고 할 때 '카프카 하이' 또한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카프카의 <변신>과 크로넨버그의 <네이키드 런치>는 모두 존재론적 불안과 자아의 해체를 표명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결말은 상이하다. <변신>이 존재론적 불안을 극복하지 못하고 불안의 심화와 나선형 상승을 겪다가 자아가 좌초하는 그레고르의 모습을 그렸다면 <네이키드 런치>는 윌리엄 리의 비정상적 존재로 추락을 시종일관 추적하다가 마지막에 기사회생하여 새로운 존재, 즉 작가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자의적이긴 하지만, '카프카 하이'가 카프카 <변신>의 결말을 상향, 즉 '하이'로 변경했다는 뜻일 수 있다.
엔딩에서 윌리엄 텔 놀이를 다시 하며 조앤의 죽음의 기억을 소환한 것 또한 '하이'와 직결된다. 그 놀이는 작가 윌리엄 S. 버로스, 그의 필명이자 영화 주인공 윌리엄 리에 공통으로 들어간 '윌리엄'이 마침내 말(Tell)한다는, 작가로 고양된다는 장치로 해석돼야 한다. 엔딩의 윌리엄 텔 놀이와 조앤의 사망은 희생 제의이자 나름의 추모로 이해될 수 있다. 추모인 듯한데, 아주 기괴한 추모이며 그것도 타인을 통한 추모라는 점이 더 기괴하지만, 그래서 더 진정성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안치용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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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영화 등 예술을 평론하고, 다음 세상을 사유한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세계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나이 들어 신학을 공부했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ESG연구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영화평론가협회/국제영화비평가연맹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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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실치사 후 아내를 추모한 작가... 이 영화가 조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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