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스틸
매치컷(주)
<안경>은 그동안 선보인 감독의 작품 세계 집대성이라 해도 좋을 작품이다. 그만큼 군더더기란 없이, 작가의 의도를 충실히 반영해 기본 골격만 튼튼하게 갖춘 형식과 이미지를 선보인다. 현실에 바탕을 두지만, 뭔가 다른 차원과 평행을 이루듯 기묘한 형상과 배경이 상영시간 내내 화면을 채운다.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이라면 당연히 예상할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 특수효과와 3D 비주얼은 찾을 데 없는 화면에는 오로지 장인의 수공예 작업으로 그려나간 연필 드로잉의 2차원 풍경만 넘실거린다. 15분짜리 단편이지만, 그런 깊이 덕분에 왠만한 장편 보는 체감이다. 물론 지루할 틈은 없다.
익명의 주인공은 자신의 안경을 무심코 밟았다. 안경 한쪽이 깨졌기에 수리해야 한다. 안경점에 들른 그는 누구나 그렇듯 시력 검사를 받기 시작한다. 익숙한 시력 검사에 이어 양쪽 눈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정밀 검사에 들어간다. 경험자라면 다 알 법한, 그림 같은 작은 집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어느 틈에 주인공은 그 집으로 성큼 들어가기 시작한다.
마치 인형의 집처럼,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선 집은 아기자기하게 근사하지만 비밀에 쌓인 듯하다. 거실에서 다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다른 방이 나오고, 그 방의 문을 열면 다시 거실로 나오게 되는, 무한히 반복되는 순환의 우주다. 그저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원히 계속 이어지는 순환에 갇혀버린 걸까? 하지만 그런 패러독스를 전시하는 게 감독의 본령은 아니다.
주인공은 계속 연결되는 방에서 자신의 내면에 도사린 어떤 불안과 공포, 두려움이 형상화한 것만 같은 또 다른 '나'들과 거듭 대면한다. 그들은 주인공의 분신일 수도, 어쩌면 그림자일 수도 있다. 자신의 망상이 만들어낸 환영이라도 무방하다. 그런 상대와 만나며 교감을 시도하는 주인공의 필사의 노력은 곧 사회가 바라는 이상화한 자신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찾으려는 도전인 동시에 진정한 자아 실현을 위한 분투의 기록으로 전달된다.
어쩌면 정유미 감독의 작업은 그 자체가 하나의 소우주일지도 모른다. 감독은 지난 20년 간 꾸준히 일관된 주제를 변주해 왔다. 하지만 이를 답습이라 부를 수 있을까? 현대사회에 조응하는 예술가로서 감독이 진행해 온 대응은 몇 줄 글로 형언하기엔 온당치 않아 보인다. 그저 보고 느끼며 판단할 영역이다. 다만 극장에서 관객이 직접 체험하고 확인하는 데 이 졸문이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품정보>
안경
Glasses
2025|한국|2D Drawing 애니메이션
2025.06.11. 개봉(메가박스 단독)|15분|
감독·각본 정유미
프로듀서 김기현
제작지원 김해김(KIMHĒKIM), KOCCA, BIAF
제작 매치컷(주)
파라노이드 키드
Paranoid Kid
|한국|2D Drawing + 3D CGI 애니메이션
2025.06.11. 개봉(메가박스 단독)|7분|
내레이션 배두나
감독·각본 정유미
프로듀서 김기현
제작 매치컷(주)
제작지원 KOCCA, BI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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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