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피쉬> 스틸
롯데컬처웍스㈜롯데시네마
<빅 피쉬>는 팀 버튼의 영화다. 감독의 이름을 듣는 순간, 관객은 <배트맨>, <찰리와 초콜릿 공장>, <유령신부> 같은 인상적인 대표작 목록을 줄줄이 떠올릴 법하다. 어둠을 불러오는 도발적 상상력과 암흑동화 풍의 환상적인 분위기가 흘러넘치는 매혹적인 재담을 상상하며 현실을 벗어난 상상 속 세계로 여행이라도 떠나는 심정이 된다. 그런 감독의 경이롭고 초현실적인 작품 세계 속에서 비교적 의외에 속하지만, 또 다른 감독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게 <빅 피쉬>다.
아마 팀 버튼의 팬이라면 이 영화에서 감독의 다른 작업과 다소 이질감을 느낄 수 있겠다. 소외된 존재들을 향한 애정과 슬픔이 감돌면서도 은연중에 뿜어져 나오는 그로테스크함을 장기로 하는 감독이 자신의 필살기를 배제한 채 가족애라는 보편적 정서에 철저히 부합하는 이야길 풀기 때문이다. 물론 감독의 전매특허, 현실의 한계를 사뿐히 뛰어넘는 '판타지' 개성은 여전하다. 오히려 평범한 일상과 끝없는 교차를 통해 현실 도피에 그치지 않고 감성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누수 없이 교감을 끌어낸다. 장르가 그 자체로 형식화하는 게 아닌, 철저하게 작가의 제작 의도와 전달하고픈 주제에 충실하게 복무하는 자세다.
판타지 거장의 명확한 목적의식과 장인의 경지에 닿은 천지창조 급 테크닉에 힘입어 '에드워드 블룸' 씨의 믿을 수 없는 생애는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을 아주 조금 소박하게 20세기에 재연하는 것처럼 영화 내내 관객의 주목을 독식한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가족 드라마 구조를 취하지만, 도무지 한눈팔 틈을 찾기 힘들다. 1998년 출간되자마자 호평과 찬사를 획득했던 다니엘 윌러스의 매력 넘치는 원작 소설을 거장의 손길로 재구성한 <빅 피쉬>는 제목 그대로 우연히 처음 목격한 '큰 물고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아이의 심정으로 관객을 끌어들이고 만다.
아버지는 태어날 때부터 비범했다고 한다. 너무 우량아라 거인병에 걸려 몇 년을 병상에서 고생하고, 성장해선 작은 시골 마을 제일의 일꾼이자 해결사가 되었다. 그에겐 마을이 너무 좁았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마침 마을을 어지럽히던 거인을 설득해 함께 모험을 떠났다고 한다. 신화 속 수많은 영웅처럼 거인을 물리치는 영웅 서사의 재현 격이다. 그런 그의 운명은 이미 어릴 적 마을 외곽에서 담력 자랑 모험을 통해 만난 유리눈의 마녀로부터 점지된 예정이었다고 한다.
영웅의 성장을 막아서는 시련은 당연히 뒤따른다. 위험한 숲에서 거미 떼의 습격을 받기도 하고, 길손을 홀리는 유령마을에서 발목이 잡히기도 하지만,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젊은 시절의 아버지는 모험의 길을 멈추지 않았다. 첫눈에 반해버린 운명의 여인과 여러 난관을 극복하며 맺어지지만, 전쟁터로 끌려가 죽을 고비를 넘나든다. 이미 죽은 줄 알았던 연인에게 돌아가는 과정 역시 제임스 본드 뺨칠 정도다. 무일푼이지만 타고난 사교성과 호감으로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리고, 신세를 졌던 시골 마을을 재건하는 데 앞장서기도 한다. 그런 믿기지 않는 파란만장 성공담이 팀 버튼의 전매특허 초현실적 이미지로 화면 가득 넘쳐난다.
화면에는 내내 괴물 같은 전설의 물고기,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거인, 늑대인간, '프릭쇼'의 출연자들이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대개 혐오와 공포의 대상으로 소모되는 사용법과는 거리가 멀다. 아버지의 무용담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되지만, 세상이 흔히 그런 존재들에 갖는 차별과 배제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사용법이다. 오히려 그 존재들은 아버지를 돕거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며 '친구'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이는 팀 버튼의 판타지 세계에서 당연하게 강조되는 대안적 규범이기도 하다.
'착한 거짓말'의 경계를 탐구하는 사려 깊은 시선
▲<빅 피쉬>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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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불편할 뿐이다. 대체 어떤 이유에서일까? 윌은 말한다. 아버지는 산타클로스 같은 존재라고. 어릴 때 철석같이 존재를 의심치 않았건만, 그 존재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자각에 배신감을 느끼게 마련인 존재와 아버지를 같은 선상에 올린 것이다. 사실 윌은 아버지의 허풍을 누구보다 즐겁게 들으며 믿었던 착한 아들인 것이다. 그런 신뢰가 철이 들면서 무너지자 이젠 아버지를 사랑하면서도 온전히 신용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른 셈이다. 환상적인 이미지에 가려 있지만, 세상 적지 않은 가족이 보편적으로 겪는 문제다.
대개 초현실적 테마를 다루던 팀 버튼의 이런 지극히 현실적 주제는 영화 제작 직전 부친을 잃은 상실감에서 발현된 개인적인 가정사와 연결해 볼 만하다. 평범한 이들은 감히 상상조차 힘든 환상세계의 창조자 감독 역시 이 세상에 발 딛고 존재하는 자로서, 세상 누구나 갖는 인지상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렇게 예외적인 창작 동기가 감독이 구축한 판타지 월드와 결합하면서 풍성한 융합을 이룬 결과물을 관객은 마음껏 누리게 된다.
아버지는 외판원으로 내내 집을 비우고 떠도는 삶을 살았다. 집에 머무는 동안은 늘 자상하고 사랑 넘치는 아버지이자 남편이었지만, 그 시간은 절대적으론 너무 짧기만 했다. 이웃집 아빠들처럼 평범하게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퇴근하는 일상과는 비길 수 없는 찰나다. 한창 성장기의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삶이 원망스러웠을 테고, 잠시 머물며 들려주던 만담으론 어느새 극복하기 힘든 상실감이 쌓여만 갔을 게 분명하다.
아들은 한 번 신용을 잃은 아버지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가족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아버지가 애써 지어낸 환상적인 이야기가 오히려 장애물로 작동한다. 어쩌면 아버지의 거짓말은 단순히 자신의 삶을 미화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뭔가 감추기 위함은 아닐까? 막장 연속극처럼 가족은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비밀이 숨은 건 아닐까? 작은 의심은 금방 큰 의혹으로 번진다. 영화 속 부자가 직면한 난국의 본체다.
하지만 결국엔 그런 앙금은 해소되어야 마땅하다. 아들은 아버지의 허풍을 검증하고 규명할 기회를 얻는다. 그 여정의 끝에서 윌이 발견한 건 자신이 단정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진실'이다. 아버지와 언쟁을 벌이며 자신이 비유했던 '빙산의 일각'이 다른 의미로 자신에게도 해당하던 것이다.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맹신하고 불신하는 걸 넘어, 상대방에 관한 이해와 공감을 곧 또 다른 아버지가 될 아들은 거슬러 오르기 시작한다. 마치 아버지가 세상을 향한 두려움을 떨치고 용감하게 낯선 길을 떠나던 시절처럼.
그렇게 아버지가 그저 자신의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생을 미화하기 위해 허풍을 섞어 들려준 거라 단정하던 이야기는 단순한 거짓말이 아님을 서서히 깨닫는다. 물론 그 초현실적인 경이는 온전히 세상에 통하는 실제일 리는 없지만, 아버지가 그저 자신만을 돋보이고자 저지른 작은 사기 역시 아니라는 걸 윌은 마침내 이해하는 단계에 도달한다.
가족의 탄생과 새로운 출발점
▲<빅 피쉬>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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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큰 물고기'가 강을 거슬러 세계로 떠나는 모험은 일단락을 맺고, 새로운 이야기로 거듭나는 여정을 잇는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경이로운 이야기는 시대에 맞는 변화를 거치면서 끝이란 없이 전승될 운명이다.
영화라는 시각예술 매체는 언뜻 평범하기 짝이 없는 가족 드라마와 초현실적 모험의 일대기를 화려하게 변신시킨다. 수천 년 전부터 구전되던 전승이 현대 과학기술에 힘입어 형언할 수 없는 경이로운 풍경으로 펼쳐진다. 그야말로 현대의 '마법'인 셈이다.
오만가지 황홀경이 쉴 새 없이 관객의 시선을 빼앗아가지만, 결국 <빅 피쉬>는 극지방부터 적도에 이르기까지, 오대양 육대주 어디에서건 통할 인류 공통의 정서에 천착하는 이야기다. 바로 '가족'이란 원초적 공동체 내의 관계 말이다. 그래서 어쩔 도리 없이 영화의 결말에 이르면, 눈부신 시각적 경이에 정신없던 자신의 눈가가 촉촉해짐을 깨닫게 될 테다. 숫제 오열하더라도 절대로 부끄러울 일이 아니다. 알고 보니 정말 궁극의 이상적 '가족 영화'에 붙는 당연한 반응이니 말이다.
<작품정보>
빅 피쉬
Big Fish
2003|미국|드라마, 판타지, 로맨스
2025.06.11. (재)개봉|125분|12세 관람가
감독 팀 버튼
출연 이완 맥그리거, 알버트 피니, 앨리슨 로먼, 제시카 랭,
마리옹 꼬띠아르, 빌리 크루덥, 헬레나 본햄 카터,
로버트 귀욤,대니 드비토, 스티브 부세미
원작 다니엘 월러스, 소설 《큰 물고기》
음악 대니 엘프먼
수입/배급 롯데컬처웍스㈜롯데시네마
▲<빅 피쉬>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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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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