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2학기스틸컷
JIFF
보지 않으려던 이 영화, 결국은 보고만 까닭
이란희 감독의 <3학년 2학기>를 이번 영화제에선 보지 말기로 내심 결심했었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선 유달리 훌륭한 작품이 많았고, 외국에서 들여온 작품 대부분은 다시는 한국에서 만날 수 없을 운명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3학년 2학기>는 지난해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 등 여러 부문을 수상하며 상당한 주목을 받았던 터다. 그 여파로 올해 개봉까지 예정돼 있으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이를 본다는 건 남보다 조금 일찍 영화를 만난단 것, 그 이상이 될 수는 없는 터였다.
그러나 나는 끝내 합리적일 수가 없었다. 우리 시대, 우리 세대, 우리 공동체의 유효한 고민을 이 영화가 어찌 다뤄내고 있는지 어서 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가 한국사회에 실존하지만 흔히 다뤄지지 않는, 그보다는 외면되고 무시당해온 것이란 걸 알고 있었던 때문이었다. 우리의 언론이, 예술이, 그리고 영화가 그를 충실히 다루지 못했단 걸 인정하는 때문이었다. 이 영화는 다르기를 바란 때문이었다.
<3학년 2학기>를 두고 2023년 개봉한 <다음 소희>를 떠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두 영화는 마치 암수 기와며 막새처럼 한 쌍으로 대응한다. 주지하다시피 <다음 소희>는 2017년 발생한 홍수연 양 실화에서 모티프를 얻은 작품으로, 마이스터고 졸업반 학생 소희(김시은 분)가 한국통신 산하 업체 콜센터에 파견을 나가 겪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최근 KS한국고용정보 해킹사태에서 전현직 임직원인 피해자들이 원청에 책임을 묻지 못한 채로 콜센터하청업체의 조치만을 기다리듯, 소희 또한 제가 종일 업무를 처리하는 대기업의 소속이 될 수 없음을 뒤늦게 실감한다. 영화는 현장실습 고등학생이 최하층 노동자나 다름없이 소모되고, 구조가 그를 방조하고 나아가 착취하고 있단 걸 효과적으로 부각한다.
▲3학년 2학기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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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희>에 대응하는 실습생의 현실
<3학년 2학기>는 <다음 소희>의 남학생 편으로 보아야 할까. 소희가 콜센터 여직원이었다면, <3학년 2학기>의 주인공 창우(유이하 분)는 중소기업 공장에서 실습생이란 이름으로 현장노동에 투입된다. 둘 모두 이름만 화려한 직업학교 출신 3학년이며, 현장실습을 통해 사실상의 취업을 하였단 점이 꼭 같다.
다른 점이라면 신체건강한 창우는 징집대상으로, 실습 평가에 취업과 대학진학은 물론, 군 대체복무까지 걸려있단 점이랄까. 극중 창우의 엄마가 말하는 것처럼 "어떤 회사가 남자를 우대하지 않느냐"는 편한 시각으로는 닿지 못하는 진실이 반영돼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 시대 소위 중후장대며 해운 등의 남초 산업현장 이야기가 매체에 과소대표되듯이 말이다.
처지가 다르면 죽었다 깨나도 모를 일이 많단 걸, 이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입증해간다. 취업률에만 신경 쓰는 교사는 분명히 나쁘지 않은, 그보다도 사람 좋은 이에 가깝게 보이지만, 창우가 처한 어려움을 거의 해소해주지 못한다.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무엇이 필요한지 알지 못해서다. 회사를 찾은 근로감독관 또한 마찬가지. 안내에 따라 작업장을 휘 둘러보는 것만으론 정말로 필요한 것을, 해야 할 일을 알아챌 수 없는 일이다.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선 곳이 달라 낮은 곳에 선 이의 시야가 보이지 않아서다.
▲3학년 2학기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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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기를
창우는 여러모로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 느리고 둔하다. 머리도 빠르지 못하여 직업계 고등학교에 온 것이 꼭 집안사정 때문이라고만 말할 수도 없을 듯하다. 단 며칠 실습 만에 사수로부터 에이스가 못된다고 판정되는데, 그를 부연하는 '폐급은 아니'란 말이 꼭 "사람은 착혀" 쯤으로 들리는 건 왜일까. 곁에 함께 일하는 야무진 친구에 비하여서 창우는 제가 하는 일도, 저를 둘러싼 구조도, 제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는 일에도 도무지 능하지가 못하다. 아니 상당히 부족하다.
그러나 그것이 창우가 마주한 모든 부조리를 감내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부족하다는 이유로 욕을 먹고, 위험에 내몰리며, 부당함을 감수하기를 강요받아선 안 되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과연 어떠한가. 스스로를 루저라고 낙인찍고, 모든 부조리를 감내하라고, 그것이 다 네가 못난 탓이라고 비난하고 있지는 않은가. 가스라이팅이란 말이 이보다 적절하게 쓰이는 경우를 나는 익히 보지 못하였다.
<3학년 2학기>가 아주 빼어난 작품이라고는 차마 말할 수가 없겠다. 몇몇 장면은 작위적이고, 현실 깊이 충분히 파고들어서 내밀한 부조리며 그 구조를 효과적으로 포착해내는 순간도 턱없이 부족한 때문이다. 더 나아질 수 있었던 선택들,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으나 그렇지 못하였던 순간들이 눈에 밟히는 건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전주국제영화제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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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지 않는 선택이 되리라고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가 이 시대 한국에 유효한 작품이라 여긴다. 영화가 다루는 문제가 한국에 실재하기 때문이며, 이를 이 정도나마 다룬 작품이 채 한 줌에 지나지 않는 탓이고, 그를 다루려는 의지와 노력, 수고를 감당하려는 자세가 엿보이는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3학년 2학기> 속 아이들과 같은 이들이 한국사회에서 스스로를 긍정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는 점, 기성세대가 구조의 개선 대신 개개인의 탈출만을 권장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3학년 2학기>는 어떤 각도에서 보아도 필요할 때 나타난 필요한 목소리인 것이다. 그렇다면 귀하지 아니한가.
나는 이 영화를 고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영화와 내가 만나야 할 때 만났다고 믿는다. 이 글에 온 마음을 싣는 것은 이야기 속 아이들이 우리 시대의 얼굴이 될 것을 알기 때문이며, 내 시선이 거의 그에 머무르지 못하였음을 뉘우치기 때문이다. 영화가 나 아닌 관객에게 주는 감상 또한 그와 같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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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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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으로 실습 나간 고등학생의 현실, 우리가 놓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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