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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C 왕조 레전드→삼성맨→다시 KCC 사령탑, 산소남의 귀환

친정팀 부산 KCC의 사령탑으로 돌아온 '한국농구의 전설' 이상민,

25.05.20 08:30최종업데이트25.05.2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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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구의 전설' 이상민이 친정팀 부산 KCC의 사령탑으로 돌아왔다. KCC 구단은 지난 5월 19일 "이상민 감독을 구단의 6대 사령탑으로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계약기간은 2028년 5월까지 3년간이다.

이상민 감독은 '산소같은 남자' '컴퓨터 가드'로 불리우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프로농구 1세대 최고의 슈퍼스타다.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 서장훈, 문경은, 우지원 등과 함께 대학팀 최초의 농구대잔치 우승을 이끌었다. 프로에서는 KCC와 서울 삼성에서 활약하며 3회의 챔프전 우승과 2회의 정규리그 MVP를 달성했다. 국가대표로도 오랫동안 활약하며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는 중국을 꺾고 금메달 목에 걸었다.

이상민 감독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오빠부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만큼 인기 면에서도 역대 최고로 꼽힌다. 2001-2002시즌부터 2009-2010시즌까지 무려 9년 연속 올스타 팬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며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팬 투표 최다 1위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KCC는 이상민 감독에게 현역 시절 프로 데뷔부터 최전성기를 함께한 친정팀이다. 이상민 감독은 1995년 KCC의 전신인 실업 현대전자에 입단하여 팀명과 연고지가 대전 현대-전주 KCC 시절에 이르기까지 무려 12년을 함께 했다. 이상민 감독은 추승균-조성원-조니 맥도웰-찰스 민렌드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현대 왕조'의 전성기를 이끈 최고의 야전사령관이었다.

하지만 이상민 감독이 한때 KCC를 원치않게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기까지는, 길고 복잡한 '애증의 세월'을 거쳐야했다. 2007년 KCC는 전력보강을 위하여 FA 최대어였던 서장훈과 임재현을 한꺼번에 영입하는 과정에서 보호선수 명단을 지정해야 했다. 당시 규정상 보호선수 명단은 3인이었고, FA 영입선수는 무조건 보호선수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이상한 규정으로 인하여 KCC는 남은 한 자리에 이상민과 추승균, 두 프랜차이즈 스타중 누구를 넣느냐를 저울질해야 했다.

KCC는 당시 이미 노장의 반열에 접어든 데다 'KCC맨' 이미지가 강한 이상민을 지명할 확률이 낮다고 보고 고심 끝에 추승균을 명단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보호선수 지명권을 지닌 삼성은 리그 최고의 스타였던 이상민을 영입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KCC의 원클럽맨으로 남기 위하여 몸값까지 페이컷한 상태였던 이상민은 갑작스러운 이적 통보에 큰 배신감과 충격을 받았고 은퇴까지 심각하게 고민했으나, 삼성의 간곡한 설득으로 결국 마음을 돌렸다. 삼성 입단 기자회견 당시 이상민이 수척한 표정으로 눈물까지 글썽이던 모습은 지금도 전설로 회자된다. 당시 농구계에 큰 충격을 안겨준 이적 파동이었다.

결과적으로는 규정의 한계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벌어진 해프닝이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하여 KCC는 한동안 팀의 레전드를 배은망덕하게 토사구팽했다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KCC는 훗날 이상민이 은퇴한 이후 그의 등번호인 11번을 구단의 영구결번으로 지정하며 뒤늦게 예우했으나, 이상민은 결번식 행사에도 불참하며 KCC와 풀리지 않은 앙금을 드러냈다.

이상민은 이후 삼성에서 3시즌을 뛰고 은퇴했다. 이어 삼성 코치를 거쳐 2014년부터는 감독에 취임하여 완전한 '삼성맨'으로 변모했다. 이상민 감독은 삼성 구단 역사상 최장수 사령탑(2014-2022)이라는 기록을 세웠고, 특히 2016-17시즌에는 삼성의 마지막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이끌며 준우승이라는 업적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감독 이상민'의 커리어에는 혹독한 암흑기가 찾아왔다. 이상민 감독은 2016-17시즌 준우승을 끝으로 이후 5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2021-22시즌 중이던 2022년 1월 26일에는 당시 최하위를 전전하던 팀성적에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다.

이상민 감독 시대에 삼성은 리그 꼴찌만 무려 3번이나 기록했다. 이상민 감독의 통산 감독 승률은 .399(160승 241패)에 불과했다. 이는 역대 삼성 감독중 단 1시즌만에 사임한 김상준(13승 41패, 승률 241)을 제외하면 최악의 성적이다. 삼성은 이후 은희석-김효범 감독 체제를 거치는 동안 올시즌까지 4년 연속 리그 최하위라는 수모를 당했다. 이상민 감독 시대 8년간 신인선수 지명과 육성, 세대교체에 실패한 후유증으로 인하여 장기 암흑기에 접어드는 단초가 되었다는 혹평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스타 출신 감독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속설의 산 증인이 되며 잊혀지는 듯 했던 이상민은, 지난 2023년 6월 26일 돌연 자신의 친정팀인 KCC에 16년만에 코치로 전격 귀환했다. 감독 출신이 코치로 복귀한 것도 드문 일이지만, 지도자로서 워낙 크게 실패한 이미지가 강했던 이상민이었기에 KCC의 선택은 상당한 파격으로 비쳐졌다. 이상민은 코치로서 전창진 감독을 보좌하며 2023-24시즌 KCC가 부산으로 연고지 이전후 첫 시즌만에 챔프전 우승을 달성하는 순간을 함께 했다.

하지만 KCC는 2024-25시즌에는 9위(18승 36패)라는 부진한 성적에 그치며 플레이오프 진출조차 실패했다. 올시즌을 끝으로 계약기간이 만료된 전창진 감독이 팀을 떠나게 되면서, 코치 복귀 때부터 이미 유력한 차기 감독 후보로 꼽혀왔던 이상민이 예상대로 감독으로 승격하여 지휘봉을 물려받게 됐다 긴 우여곡절을 거치기는 했지만, KCC 팬들이 오랫동안 상상해왔던 'KCC 레전드 이상민의 감독 부임'이 돌고 돌아서 결국 현실이 된 셈이다.

이상민 감독의 귀환을 바라보는 농구팬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이상민 감독은 본인의 현역 시절 플레이스타일처럼 빠르고 공격적인 농구를 선호한다. 선수들의 개성과 자율을 존중하는 리더십으로 삼성 시절부터 선수들과의 관계도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정통 포인트가드와 빅맨이 없으면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떨어지고 수비전술이 허술하다는 약점도 뚜렷했다. 삼성에서는 매년 신인 드래프트 상위픽을 확보하고도 선수를 보는 안목이나 육성능력에서 모두 낙제점을 면하지 못했다.

KCC는 '윈나우'를 노려야 하는 팀이다. 최준용-송교창-허웅-이승현-이근휘 등 국내 선수들의 면면은 '슈퍼팀'으로 꼽힐 만큼 화려하다. 이상민 감독의 삼성 시절 중후반기에 허약한 선수층을 극복하지 못하고 고전했던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문제는 '건강 리스크'다. 리그 최고의 장신 포워드 듀오인 최준용과 송교창은 잦은 잔부상으로 인하여 꾸준히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2024-2025시즌에도 최준용이 17경기, 최준용은 8경기를 출장하는데 그쳤다. 스타 선수들이 한 팀에 모인 만큼 저마다 개성도 강하고, 사생활이나 SNS를 둘러싼 구설수도 종종 벌어지곤 했다. 스타들을 잘 아울러서 원 팀으로 녹여내는 것이 이상민 신임감독의 과제다.

이상민 감독에게도 KCC 감독직은 지도자로서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 최근 지도자들도 빠르게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KBL에서 한번 실패한 감독이 다시 기회를 얻는 일은 쉽지 않다. 이상민 감독에 앞서 KCC의 원클럽맨 출신으로 먼저 지휘봉을 잡았던 추승균 전 감독도 지도자로서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어느덧 KBL에서도 베테랑급 사령탑이 된 이상민 감독은 다음 시즌 조상현(LG), 전희철(SK), 양동근(현대모비스) 등 쟁쟁한 후배 감독들과 경쟁을 펼쳐야한다. 과연 '산소같은 남자'의 명예회복은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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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부산KCC 서울삼성 프로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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