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드롭아웃>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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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롭아웃>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본작은 엘리자베스의 홈스가 저지른 사기극이 그의 관점에서 필연적이었음을 보여 준다. 성공에 대한 강박과 여성 지도자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그를 '마케팅의 갑옷을 두른' 고립된 인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므로 엘리자베스 홈스의 사기극이 정당화되는 거냐는 물음에, <드롭아웃>은 단호히 '아니'라고 답한다. 바로 대안적 인물을 통해서다.
<드롭아웃>은 실제 테라노스 사건의 내부고발자로 알려진 '에리카 청(캠린 킴 분)'의 캐릭터를 작품 후반부에 가서야 등장시킨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정의만을 좇는 투사'의 이미지로 그려지지 않는다. 작중의 에리카 청은 테라노스를 미국 보건복지부에 고발할까 고민하면서도, 어렵게 얻은 직장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회사의 내규를 어기고 폭로를 이어갔을 때 실추될 자신의 명예를 걱정하기도 하며, 침묵을 지키고 사회적인 성공을 쟁취할까 갈등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은 작품의 초반 '여성 과학자'로서 무언가를 이뤄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던 엘리자베스 홈스와 평행선을 그리며 대조된다.
본작 속 에리카 청은 엘리자베스 홈스의 안티테제다. 홈스와 청은 각각 '입체적인 악인'과 '입체적인 선인'의 옷을 입고 나타나, 갖은 시련을 겪더라도 한 인물이 어떤 방향으로 성장할지는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음을 보여 준다. 홈스와 비슷한 장애물을 마주하면서도 내부고발이라는 정의로운 선택을 하는 에리카 청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엘리자베스 홈스의 모든 범죄가 엄연한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며 작품의 주제 의식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처럼, <드롭아웃>은 희대의 의료 사기극을 실행에 옮긴 엘리자베스 홈스를 '선천적인 사이코패스'나 '마녀' 혹은 '괴물'로 그려내지 않는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홈스의 선택으로 인해 고통받는 주변 인물들을 통해, 또 홈스와 대립되는 인물인 에리카 청을 통해 홈스가 막연한 '시대의 피해자'로 그려지는 것을 저지한다. 이처럼 섬세하고 사려 깊으면서도 과감한 인물 묘사는 범죄자를 '인간이 아닌 무언가' 혹은 '알고 보면 불쌍한 피해자'라는 두 극단으로만 그려내던 실화 기반 범죄 드라마들에 경종을 울린다.
여성 범죄자를 다루면서도 흔해빠진 '여성혐오 레토릭'으로 빠져들지 않는 작품을 보고 싶다면, 그런 윤리적 세심함을 갖추면서도 수준급의 화면 연출과 극적 긴장감 조성으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드라마를 보고 싶다면 디즈니+에서 <드롭아웃>을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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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픽션 신봉자. 이야기가 가지는 힘을 믿고 글을 씁니다.